김관선 목사(주필)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를 지어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칼이든 총이든 당당히 받아라. 이 어미 밤새 네 수의 지으며 결코 울지 않았다.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 그보다 더한 영광 없을지어니 비굴치 말고 왜놈 순사를 호령하며 생을 마감하라. … 빛 찾은 조국의 푸른 하늘 푸른 새되어 다시 만나자. … 나의 사랑하는 아들 중근아”

매년 역사탐방을 하는 우리 교회는 지난 10월 초,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22명의 교인들과 함께 하얼빈을 찾았다. 거기서 일제의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를 돌아보며 그 만행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안중근의 흔적을 더듬기 위해 하얼빈역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돌아보았다. 그 곳에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글이 전시되어 있다. 앞에 소개한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가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편지대로 항소를 포기한 채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서른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항소를 포기하고 죽으라는 어머니,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는 편지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떤 어머니가 아들에게 수의를 지어 보내면서 이런 모진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어머니 말씀대로 항소를 포기한 채 사형을 받아들이며 구국의 길을 간 아들. 중국인조차 이런 조선인이 있음을 부러워했다.

부끄럽다. 의를 위해 살고 죽은 분들이 우리를 이만큼 살게 했고, 목사인 내가 목회할 수 있는 세상을 선물했는데. 살려고 바둥거리기만 하는 것 같아 부끄럽고, 좀 더 편안하게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을 들킬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다.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란 찬양을 흥얼거리지만 과연 내 의식이 살아있기는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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