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1905년, 미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 있다. 그 조약은 우리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강제지배의 길을 열었다. ‘가쓰라-데프트 조약’(Katsura-Taft agreement)이라 불린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데프트가 필리핀에 가는 중 일본에 들러 가쓰라와 맺은 조약이다.

핵심 내용은 미국이 필리핀에서, 일본은 조선에서 얻는 이익에 대해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것이다. 남의 나라를 놓고 자기들끼리 협약을 하다니. 구체적 협약 내용에 드러난 양국의 생각은 이러했다. 친일적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는 것이 일본에 유리하며,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한국에서 패권을 행사하는 것이 미국에 불리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는 것을 양해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이들은 일본이 한국을 보호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왜 우리에게 일본의 보호가 필요한가? 힘을 가지고 남의 나라를 수탈하고자 하는 생각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일 뿐이다. 루스벨트는 러일전쟁 당시 “1900년 이래 한국은 자치할 능력이 없으므로 미국은 한국에 대해 책임을 져서는 안 되며,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여 한국인에게 불가능했던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능률있게 통치한다면 만인을 위해 보다 좋은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굴욕스러운 을사늑약을 강요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가 왜 오랫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1924년까지 우리에게는 매우 비극적인 조약을 두 나라가 비밀에 붙였던 까닭이리라. 다행스럽게 이제는 이런 역사에 주목하는 한국인이 많이 늘었다.

우리가 일제에 굴하지 않고 독립을 쟁취했기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을 어찌 꿈꿀 수 있었겠는가? 힘을 가진 나라들이 남의 나라의 운명을 놓고 서로 흥정하는 일들은 역사 속에 많이 있었다. 그렇게 자기 힘으로 타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자들의 결말은 다 같았다는 역사적 교훈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아픈 역사를 더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누가 과연 변함없는 내 편일 수 있을까? 언제든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남의 나라를 짓밟을 수 있는 것이 주변국들이다. 영원한 동맹 또는 혈맹은 없다. 따라서 변함없는 내 편이란 오직 주님뿐이다. 교인들도 같은 듯. 그것을 알면서도 당장은 내 편이라 생각되는 그들이 더 든든해 보이는 것은 나의 믿음 없는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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