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러시아를 여행하며 크렘린 궁에 전시된 대포들을 볼 수 있었다. 나폴레옹이 패하면서 남겨진 대포들이다.

나폴레옹 군대의 1812년 6월 러시아 원정은 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유럽 최강 나폴레옹 군대는 러시아 정벌로 유럽 전체를 손아귀에 넣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쿠투조프 러시아군 총사령관은 후퇴만 했다. 나폴레옹 군대는 진격만 하다가 어느새 너무 멀리 갔다. 보급은 끊겼고 무더위와 굶주림으로 병사들은 쓰러졌다. 모스크바까지 진격하면 러시아가 항복하고 전리품을 챙길 것이라는 나폴레옹의 오판이 부른 참사였다. 텅 빈 모스크바에서 한 달이 넘도록 항복을 기다렸지만, 넓은 영토를 가진 러시아군은 후퇴만 했다.

그 해 10월, 나폴레옹은 퇴각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돌아갈 길이 까마득. 12월, 영하 38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으로 대포는 얼었고, 프랑스 병사들의 군복에서 빛나던 은색 주석단추들은 기온의 급강하로 부서졌다. 여름 군복으로 원정을 시작한 그들의 전투력은 바닥이었다. 상상도 못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병사들은 약탈을 하고, 서로 죽이고, 또 이탈까지 했다.

60만명이 넘는 병력으로 시작한 러시아 원정은 겨우 4만명만 살아 돌아왔다. 그 중에 다시 전투에 나갈 만큼 온전한 병사는 1000명 뿐. 추위를 고려하지 못했고, 또 원정 싸움에 필수인 보급이 실패한 결과였다.

이 전쟁을 담은 장엄한 관현악 소품이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다. 전쟁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 작품으로 종소리와 대포소리가 돋보인다. 톨스토이가 쓴 명작 <전쟁과 평화> 역시 이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 나폴레옹의 패배는 러시아의 민족혼을 일깨운 셈이다.

다 이긴 것 같은데 왜 패했을까? 추위도 견디기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너무 멀리 갔던 것이다. 보급을 확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먼 원정이라도 보급만 제대로 되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그것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잘 풀린다고, 힘이 생겼다고, 또 모두가 내 앞에 굽실거린다고 막 나가다가는 위험해질 수 있다. 땅에서 아무리 큰 힘을 자랑해도 하늘로부터 보급이 끊긴다면 언젠가는 텅 빈 주머니를 보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40년 광야 생활에서 하늘의 보급로가 끊기지 않았음을 생각나게 한다. 세상에서 우쭐대다 보면 언젠가 닥칠 인생의 맹추위 앞에 쩔쩔매게 될 것이다. 하늘이 통로가 끊기고, 또 돌아갈 길도 너무 멀어 막막해질 수 있다.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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