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용 목사(대전중부교회)

의미 있는 일 준비하는 영원한 청년, 어른이 되십시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삼상 8:9)

조상용 목사(대전중부교회)
조상용 목사(대전중부교회)

인생은 배움의 연속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학습을 하고, 이를 통해 성장합니다. “나는 이미 다 배웠다”, “나는 이제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하고, 성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성공적인 노년기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어르신은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에게 더욱 존경을 받으며 좋은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이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합니다. 심지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골칫거리로 전락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잠언 16장 31절에서는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늙은이가 영광스럽게 되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런 노년의 삶은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두 종류의 청중을 염두하고 준비했습니다. 첫째는, 이미 노년에 들어서신 분들입니다. 이 분들이 말씀을 통해 진정으로 보람 있고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아직 노년에 이르지 않은 중장년입니다. 오늘 말씀이 중장년에게도 매우 필요한 말씀이라고 확신합니다. 노년의 삶은 일찍 준비할수록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노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무엘 선지자는 성공적인 노년을 맞이한 인물입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 세 가지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늙어가는 현실에 적응하십시오.

“사무엘이 늙으매”(1절) 본문은 ‘늙었다’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영원히 이스라엘 지도자로 있을 것만 같았던 사무엘도 결국은 늙은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의 삶에 이전과는 다른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이제 자신이 하던 일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이른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도 사무엘이 늙었음을 인정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4~5절) 백성의 대표인 장로들이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와 한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의 후임으로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합니다. 한마디로 늙은 당신은 더 이상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노년기에 찾아오는 냉혹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 중 다수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실입니다. 나이가 들면 하던 일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것을 붙들고 여전히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게 되고, 자신은 섭섭함을 느낍니다. 이는 결국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관계가 악화됩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후임자를 세웠습니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고”(삼상 12:1~2) 노년을 위한 최고의 준비는 ‘내려놓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가 누렸던 것을 누리지 못할지라도 감사하는 게 내려놓음입니다. 손에 쥐고 있던 것이나, 하고 있던 일을 내어놓는 것 역시 내려놓음 중 하나입니다. 어떤 책임이나 직책에서 때가 되면 물러나는 것도 내려놓음입니다.

어느 숲 속에 사이좋은 사자와 여우가 있었습니다. 여우는 사자의 등에 올라타 숲속을 거닐었습니다. 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동물들은 모두 엎드려 절했습니다. 여우는 이 광경을 볼 때마다 우쭐대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여우를 보고 인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자리 때문에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회와 교회에서 참 많은 일을 했지만, 언젠가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옵니다. 이때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 마음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이것이 노년의 삶을 위한 첫 번째 준비입니다.

둘째, 노인이 되지 말고, 어른이 되십시오.

노인이 되지 말고 어른이 되라는 말은 얼마 전 은퇴하신 이재철 목사님의 저서 <지성과 영성의 만남>이란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책에 따르면 나이가 드신 분들 가운데는, 노인이 있고 어른이 있습니다. 노인과 어른이 갈라지는 분기점은 무엇일까요? ‘나’를 더 생각하는지, ‘남’을 더 생각하는 지입니다. 나이가 들면 나를 더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결정할 때 내 기준, 내 중심, 내 방식으로 하는 경향이 짙어집니다. 그래서 ‘고집이 센 노인네’, ‘완고한 노인네’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남을 위한 마음을 키우고 여는 사람이 된다면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인생의 경험이 많은 만큼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방법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과거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하면서 쉽게 흥분했다면, 이제는 “허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여유를 갖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마음이 넓은 것이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요?

어떤 노인이 자신의 지난 삶을 반추하면서 세 가지를 후회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신앙의 필요성을 나중에 깨달아 뒤늦게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둘째는 아내에게 잘 해주지 못하며 존중하지 않고 대한 것입니다. 셋째는 남에게 베풀지 않고, 인색하게 살아온 것입니다. 참 훌륭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을 넓히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노년에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6~7절)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했을 때, 사무엘이 기뻐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속상해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최고의 어른이시요, 진정한 아버지이십니다. 그 자식들이 당신을 버리는데도, 그들을 거절하지 않고, 이해하시며 받아들여 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돼야 하겠습니다.

셋째, 노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십시오.

노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돈이나 건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회학자들은 행복한 노년의 삶을 위해서는 ‘의미 있는 일’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회봉사를 한다든지, 교회봉사를 한다든지, 문화 활동에 참여한다든지, 노인대학이나 평생교육기관에서 꾸준히 배우는 등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이 늙어서 처하게 된 현실을 보십시오. 그는 어릴 때부터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드렸고, 젊었을 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노인이 되자 백성들이 자기가 한 일들은 하나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늙었고,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만 못하고, 우리에게는 왕이 없으니 왕을 세워달라”고 보챕니다. 이것이 노년에 찾아오는 섭섭함이 아닐까요?

그러나 사무엘은 자신의 섭섭함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신세를 한탄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나이에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삼상 12:23) 늙어서 현역처럼 백성들을 이끌 수는 없지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왕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기로 결심합니다.

사무엘은 기도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쌓은 경험과 지식을 다음세대에게 전수하기로 결심합니다. 선지학교를 세워 운영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피한 곳은 ‘라마 나욧’이란 곳입니다. 그곳에 선지학교가 있었습니다. “선지자의 무리가 예언하는 곳이고 그들의 수령이 사무엘이었더라”(삼상 19:20) 요즘 말로 하자면 신학교를 세워 학장으로서 후진들을 양성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무엘은 노년의 삶을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에 드렸습니다. 사무엘처럼 내 가족, 내 교인, 내 이웃들에게 인생의 경험과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부지런히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은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입니다.

연세가 드신 분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 나이에 내가 하리?”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말해봅시다. “이 나이에 내가 하자!” “내가 하리?”를 “내가 하자!”로 바꾸어 말하면, 노년에도 할 수 일을 찾게 되고, 가치있고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은퇴는 영어로 ‘retire’입니다. 다시 타이어를 갈아 끼운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새롭게 달리는 게 노년의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노년이라는 건 무조건 노인이 됨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영원한 청년이 될 수 있습니다. 늙어가는 현실에 적응하십시오. 노인이 아닌 어른이 되십시오. 노년에도 의미 있는 일을 찾으십시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