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세계 곳곳에서 끔찍한 사고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혹시 테러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기이한 현상은 이슬람 일부 과격세력이나 테러단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평범한 일반인들에 의한 범죄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테러를 분석한 끝에 가해자들을 ‘자생적 테러리스트’라는 의미의 ‘외로운 늑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회적 외톨이로 전락하여 세상을 불안하게 하는 범죄자를 일컫는 용어가 된 것이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범죄에서부터 세계적 관심을 끄는 테러에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로 인한 불특정 다수의 피해는 점점 늘어갈 뿐 아니라 안전을 위한 사회적 비용 또한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주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무차별 살육 사고도 그 중 하나다. 피해망상에 빠진 한 남자의 감정폭발로 인명 피해가 일어났다. 이런 유형의 범죄가 빈발하는 형국이다.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임을 앞에서 밝혔다. 지난 2017년 11월, 59명이 숨지고 527명이 다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도 그런 것인데 범행 동기조차 뚜렷하지 않다. 또 2018년 11월,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사이풀로 사이포브도 같은 유형의 범죄자다. 트럭으로 자전거 도로를 질주하여 8명이 죽고 11명이 다쳤다.

이런 자들을 ‘외로운 늑대’라고 부르는 이유는 배후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테러를 모방하거나 그 테러집단과 한 편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지만 그냥 외톨이들이다. 경제적 풍요 속에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가운데 소외되어 힘든 사람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누구와도 친구할 수 없는 폐쇄된 삶을 사는 이들이다. 그것을 방치하면서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불안요소가 되었다.

예방 차원의 감시 강화나 처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또 기도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왜 존재할까? ‘외로운 늑대’로 전락할 이웃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이셨다. 그래서 웃음을 찾아주셨고 세상이 살만하다는 희망을 안겼으며 결국 새로운 세상도 열어주셨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가 과연 그런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주님께서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당만을 기뻐하실까? 오히려 그 예배당 곁에 방치된 채 외로움에 눈물짓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시지 않을까? 어느새 교회가 누군가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만의 천국”은 아닐지. ‘외로운 늑대’의 섬뜩하면서도 처량한 부르짖음이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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