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를 사랑해서 트로이로 데려온다. 이것이 전쟁이 된다. 트로이는 스파르타의 공격 앞에 성문을 굳게 닫고 지루한 대치를 한다. 굳게 닫힌 성문을 열기 위해 스파르타는 계략을 세운다. 후퇴한 것처럼 모든 군대를 숨기고 목마를 만들어 성 앞에 두었다. 밤사이 스파르타가 퇴각했다고 판단한 트로이는 성문 앞에 놓인 목마를 논쟁 끝에 성안에 들이게 된다. 그 목마 속에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스파르타의 전사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트로이가 승리에 도취한 그날 밤, 목마 속에 전사들은 성문을 열고 트로이를 짓밟는다. 트로이는 그렇게 멸망했다.

지금, 한국교회는 적이 숨어있는 목마를 성안에 들인 트로이 같은 모양새가 아닐지. 오늘날의 목마는 무엇일까? 현대사회에서 ‘인권’은 최고의 가치다. 인간존중은 계몽사상 이후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군주에게 집중된 권력이 국민에게로 돌아갔고 노예제 등 인권을 짓밟는 제도도 사라졌다. 그렇게 성장한 ‘인권’이 어느새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앉았다. ‘인권’이라는 이름하에 동성애가 들어오고 낙태도 합법화 되고 있다. ‘인권’이라는 목마 속에 성경적 가치관을 파괴할 온갖 전사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들이 우리가 굳게 믿던 가치관을 붕괴시키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가치관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긴장해야 한다. 성경적 세계관이 인본주의적 인권 개념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앞마당까지 내주고 우리가 설 자리조차 없는 현실을 뒤늦게 후회한들 소용없을 것이다. 열린 성문을 닫는다고 이미 자리 잡은 반성경적 가치관을 몰아낼 수 있을까? 처음부터 열어서는 안 될 문을 열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의 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 판결을 앞두고 발표된 총회장의 담화문이 있었다. 그러나 성명만 하고 있을 수 없다. 교회의 목소리는 세상의 아우성에 덮이고 있다. 헌재의 두 재판관의 낙태죄 합헌 의견이 소수의견이 되고 말았듯이 성경적 가치관을 좇는 길은 찾는 이가 적은 형편이다. 이런 소수의견조차 사라지기 전에 영향력 있는 인재를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헌재든 대법원이든 그리고 인권위원회든 영향력이 큰 곳곳에 건전한 인재들이 들어가게 해야 한다. 호텔방마다 성경책이 비치되어 있지만 서랍 속에 잠자는 모습이듯 오늘의 성경적 가치관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제 교회의 건강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교회의 전투력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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