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오딧세이>(Odyssey, Homeros)에 나오는 이야기다. 트로이전쟁을 마친 율리시즈는 귀향길에서 ‘사이렌’이라는 요정이 사는 바다를 지나게 된다. 사이렌의 목소리는 매우 아름다워 그 노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미치거나 홀려 바다로 뛰어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율리시즈는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기 몸은 돛대에 묶었다. 그렇게 해서 율리시즈는 매혹적인 소리를 들으면서도 무사히 그곳을 통과한다.

이 ‘사이렌’ 요정을 로고로 하는 세계적 프랜차이즈 기업이 바로 스타벅스 커피다. 로고 사용의 의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 커피의 유혹에 끌린 젊은이들이 커피의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시급 8000~9000원을 가지고 고민하는 20~30대 젊은이, 특히 여성들이 시급에 버금가는 커피를 마시는 주고객이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스타벅스는 1999년에 여학생들의 로망이었던 이화여대 앞에서 시작했다. 그것이 2018년, 1203개로 늘었다. 그 점포들을 통해 2017년 영업이익 1144억 원을 달성했다. 점포당 1억 원 꼴이다.

왜 이런 ‘신화’ 같은 일이 일어날까? 소비 패턴의 변화다. 커피 주소비자인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커피가 아닌 브랜드를 마시고 있다. 스타벅스 로고가 선명한 컵이나 텀블러를 손에 든 젊은이들이 당당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은 선입견 때문일까?

어디 커피뿐이랴? 모든 소비 패턴에 브랜드의 힘이 보인다. 브랜드 파워! 그것에 끌리는 젊은이들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있는 그 브랜드를 나도 쥐고 싶어, 힘든 알바를 통해 모은 피 같은 재화를 ‘올인’하기도 한다. 젊음 그 하나만으로도 당당해야 할 그들이 손에 든 브랜드로 억지스러운 가치를 드러내려는 것 같아 안쓰럽다.

이런 소비 패턴은 비단 시장의 현상만이 아니다. 영적 소비(?)에서도 그렇다. 교회도 브랜드화 했다. 커피나 가방을 소비하듯 영적 소비자들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브랜드 교회에 끌린다. 내용이나 가치보다 브랜드 선호사상이 가져온 결과다. 커피 시장에서처럼 영적 시장에서도 젊은이들의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더 이상 부모의 교회에 매이려 하지도 않는다. 영적 시장에서도 브랜드 파워가 나타나는 것이다. 거기에 가면 뭔가 있을 것 같고 자신도 그 브랜드와 같은 가치를 갖게 된다는 환상에 빠진다. 영적 소비자(spiritual consumer)로 전락한 일부 교인들의 모습이겠지만, 교회에까지 ‘훅’ 들어와 버린 이런 소비풍조에 어느새 익숙해지며 더 이상 고민도 하지 않는 우리 자신이 더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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