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하던 중 1942년에 쓴 작품 <쉽게 씌어진 시>의 일부다. 3·1운동 100주년을 보내면서 일본 후쿠오카에서 아프게 생을 마감한 윤동주를 다시 꺼내보다가 내 가슴에 쑥 들어오는 이 시구가 가슴을 떨리게 한다. 어떤 글이 이처럼 나를 아프게 한 적이 있었는가 싶다.

윤동주는 이 시를 통해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뒤로한 채 일본 땅에서 유학하는 자기 자신을 깊이 돌아보며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다짐했을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 중 하나인 1941년에 쓴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원했고, 같은 해 <서시> 보다 앞서 쓴 <십자가>에서는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서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로 마무리 했다.

시대의 아픔을 짊어진 젊은이의 고뇌와 다짐이 이 시들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리고 그 시처럼 살다가 스물일곱 청춘을 마감했다. 그 시들을 읽으면 ‘목사 아닌 그가 목사인 나보다 더 목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물일곱이면 내 딸의 나이다.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 나이에 이런 고뇌를 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게 살기는 더욱 어려웠을 텐데.

난 27년의 두 배를 넘기고도 10년은 더 살았다. 그런 내가 윤동주를 마주 대하니 난 너무 쉽게 목회하고 내 설교는 너무 ‘쉽게 씌어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난 윤동주 같은 고뇌의 밤을 얼마나 보냈으며 나와의 씨름을 얼마나 힘겹도록 해보았는지.

내 설교를 듣고 또 내 목회를 통해 힘을 얻어야 할 성도들이, 얼마나 힘겹게 사는지 알면서도 쉽게 쓴 나의 설교를 깊은 고민 없이 너무 쉽게 외쳐온 것은 아닐까? ‘왜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냐’며 쉽게 질책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이제 고민하는 시간을 좀 더 늘려야겠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무거운 입술로 성도들의 가슴에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입술에 무게가 더해 갈수록 성도들의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잖아도 짊어진 짐이 많은 성도들의 어깨에 공연히 그 무게만 더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이제 나의 설교쓰기가 좀 더 어려워지고 내 어깨에 짊어질 목회의 짐이 좀 더 무거워져서 성도들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다. 우리 성도들이, 쉽지 않은 삶을 조금은 쉽게 살아가게 하고픈 마음을 윤동주가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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