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적 패권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1917년 우드로 윌슨은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한다. 그에 힘입어 1919년 3ㆍ1만세운동, 이어서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강대국에 의해 약소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흐름은 지금도 이어지지만 쉽지는 않다. 완전한 독립이 불가능한 ‘세계화’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의 강압에 허덕이던 민족을 살리기 위한 독립만세운동은 교회가 주도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목사, 장로를 비롯한 기독교 인사들이 당시 만세운동의 주도적 위치에 있었다. 만세운동에서 희생된 어린 소년소녀들까지 대부분은 선교사와 기독교에 의해 세워진 학교 학생들이었다.

그런 역사적 자긍심을 지닌 교회. 그런데 그 교회는 지금 과연 독립적인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복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를 움직이는 거대한 자본이나 사상, 트렌드로부터는 독립되어 있는가?

교회는 3ㆍ1운동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흥했고 규모도 켜졌다. 그러나 어느새 교회 안에 들어온 자본의 힘이 그 위세를 드러내는 듯하다. 그리고 일부겠지만 중세교회도 아닌데 교회가 세상 권력 앞에 자발적으로 엎드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본의 지배를 받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만든 영화나 대중음악을 ‘독립영화’ 또 ‘인디밴드’라고 부른다. 그들은 수준도 뛰어나고 시대정신까지 담은 감동적 작품을 만들고, 텔레비전 화면에 요란하게 등장하지 않지만 그 가치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자주적 정신을 가진 젊은이들이 레드오션에서도 독립적 창조활동을 하며 살아남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그만 못할 수는 없다. 우리는 머리이신 주님의 다스림만 받는다. 그 누구도 돈이 많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대주주 행사를 할 수 없으며, 교회가 세상의 권력 앞에 자발적으로 무릎 꿇어서도 안된다.

다니엘에게서 보듯 그것이 권력이든 돈이든 세상의 어떤 힘도 우리를 무릎 꿇릴 수 없으며, 오히려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미쳐 그 흐름을 바꿀 가치를 드러내야 한다. 고레스 왕이 다니엘에게 그랬듯이 세상은 그런 흔들리지 않는 멋진 가치와 아름다운 힘 앞에 오히려 고개를 숙일 것이기 마련이다.

‘3ㆍ1운동 100주년의 해’임에도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9년의 교회, 세상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위한 몸부림이 필요할 때다. 교회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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