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과 공허를 반복하던 제가
교회서 감사의 시간을 보내요”

정죄 대상으로 보면 교회 거부감 커 … 참 사랑 느끼게 도와야

이요나 목사가 대표로 있는 서울 갈보리채플에서 황성경 씨(가명·남 29세)를 만났다. 하얀 피부에 커다란 눈, 늘씬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 첫 눈에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 씨는 현재 1년째 집을 떠나 갈보리채플에서 숙식을 하며 이요나 목사에게 성경을 배우고 있다. 근처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가는 일 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에 머물면서 기도하고 공부하거나 신앙공동체 지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그 흔한 스마트폰도 없고 페이스북을 비롯한 어떠한 SNS 계정도 남아있지 않다. 외부와의 접촉을 극히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이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동성애의 유혹에 빠지게 될 까봐 염려해서입니다. 동성애자들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또 그들에게 연락이 오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성경 씨가 동성애를 접촉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였다. 경제활동을 하느라 부모들이 집을 비운 동안 성경 씨는 무료한 시간을 동영상을 보면서 흘려보냈다. 처음에는 초등학생이라면 볼 수 있는 평범한 영상으로 시작했으나 차츰 포르노를 찾았고 포르노 영상 리스트 가운데 끼어있는 게이포르노를 열어보기에 이르렀다. 동성애 동영상을 보던 중 자신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같은 반 남성 친구를 짝사랑했다. 성경 씨는 졸업할 무렵 큰 마음을 먹고 그에게 고백했으나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지금 볼 때 성경 씨는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당시 자신감이 없던 성경씨는 외모 때문에 ‘차였다’고 생각했고 큰 상처를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자 성경 씨는 본격적으로 동성애 대상자를 찾아나섰다. 주로 인터넷 카페나 핸드폰 어플을 통해 접촉이 이뤄졌다. 그렇게 만나서 술을 마시고 대화했으며 마음에 드는 상대와 모텔로 가서 관계를 맺었다. 부모들에게는 친구를 만나서 자고 온다고 거짓말을 했다.

성경 씨가 20대 초반이던 당시 그의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었다. 어머니는 낮에는 일했고 퇴근해서는 남편의 병수발을 하느라 힘겨워했다. 낮에는 아버지 혼자 있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성경 씨는 부친의 간호를 하는 것보다 동성 친구들을 찾아다니는데 더 열을 올렸다. 그에게 동성애는 중독이었고 답답한 현실을 도피하는 출구였다. 순간순간 후회가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한순간의 정욕 때문에 만났지만 정욕을 채우고 나면 이후의 시간이 공허했습니다. 한번 만나 관계를 맺은 친구와 오랜 기간 연락을 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만난 뒤 헤어지면 끝이었고, 또다시 새로운 사람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러던 중 생활에 전환점이 생겼다. 암으로 고생하던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 어머니와 단둘이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을 때 그는 어머니에게 ‘커밍아웃(coming out)’을 했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색해졌으나 어머니는 이미 동성애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또 정말 좋아해서 오랫동안 만났던 파트너에게 이별의 통보를 받고 낙심하게 됐다. 1년 6개월 가량을 사귀었는데 그만 만나자는 말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별의 충격에 1주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을 정도였다.

아들의 동성애 사실을 알고 염려하던 어머니는 이모와 상의했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기도하다가 서울 갈보리채플의 이요나 목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성경 씨를 설득해서 교회로 인도했다. 성경 씨는 일단 상담을 받아보라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이 목사를 만나보게 되었는데 이요나 목사가 동성애 경험이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처음 만나는 사이같지 않게 친근함을 느꼈다고 한다.

성경씨는 갈보리채플에서 실시하는 성경대학에 입학해서 주중에는 등하교를 하고 토요일에는 교회에 와서 공부한 뒤 자고 주일예배를 드리는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성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성경공부 내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교회 밖으로 나오면 과거처럼 동성 파트너들을 찾아 만나는 일도 간간히 반복했다. 그러나 성경을 배워나가면서 결국 결단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고 그는 지난해 집을 떠나 갈보리채플로 거처를 아예 옮겼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비롯한 외부와의 연락 수단을 일체 차단했다.

“1년 동안 저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외형적으로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회에 오기 전에 저는 화장을 아주 짙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섭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조금 하는 정도이고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려했는데 이런 대인기피증도 사라졌습니다.”

성경 씨는 “그러나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제가 성경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힘들고 답답할 때 동성 친구들을 찾았으나 지금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주변에 신앙의 친구들과 선배들이 있어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말씀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놀랍게도 성경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동성애자로 살면서도 예배에 참여했고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좋은 형이고 선생이었다.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때 죄책감도 들었지만 그는 교회와 동성애, 어느 쪽도 버릴 수 없었다.

성경 씨는 “동성애자들을 질병유발자나 변태성욕자로 보는 태도는 동성애자들에게 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한다”면서 “동성애는 사랑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보이신 사랑이 참 사랑임을 동성애자들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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