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철 목사(대구 대흥교회)

‘작은 예수’ 만드는 사역에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립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19)

▲ 정명철 목사(대구 대흥교회)

2015년 주일 오후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일 오후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예배당 로비에 서 있었습니다. 예배가 마쳤는데도 성도들은 이동하지 않고 자리에 서 있더니 조금 지나자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을 하는 것처럼 꽃 아치를 세우고, 카페트를 깔더니 성도 몇 분이 오셔서 저와 아내의 손을 잡고 아치 앞에 세우고 입장준비를 시켰습니다. 축복의 찬양이 울리고 예배당 스크린에는 성도들의 축하영상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제자훈련 30주년 감사 영상이었습니다. 어느새 강단에는 축하 꽃다발과 성도들이 전해준 편지와 선물들로 쌓였습니다. 성도들로부터 진심어린 축하를 받았습니다.

감격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새가족들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이렇게 담임목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르는 교회인 걸 보니 더욱 신뢰가 갑니다”라고 말입니다. 교회가 가장 어렵던 시절에 청년 몇 명을 데리고 제자훈련을 시작했고, 올해로 33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때 그 청년들은 이제 교회의 중심이 되어 저와 함께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가 장성해서 다시 제자훈련을 받고 교회를 사랑하며 섬김의 대를 이어갑니다.

한국교회가 이구동성으로 다음세대를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다음세대를 어떻게 준비시켜야 할까요? 성도 한 명 한 명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겠다는 불타는 사명이 목회자에게 넘쳐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성도 개개인을 영적으로 낳는 해산의 수고를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을 계속해 갈 때 건강한 다음세대도 동시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1. 제자 삼는 것은 목회자의 본질 사역입니다

하나님이 목회자를 세우신 이유를 에베소서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목회자의 역할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서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본문에 있는 ‘목사’와 ‘교사’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직분이 아닙니다. 1인2역으로 목사이면서, 교사라는 말입니다. 부름 받은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독의 역할을 말하면서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딤전 3:2)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하신 중심사역 중에 하나는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복음서는 랍비 혹은 선생이라는 칭호를 50번 이상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치는 일에 가장 탁월한 선생이었고, 얼굴을 맞대고 가르치는 교육의 힘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신 천재적인 교사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언변도 없고, 잘 가르치는 재능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에 순종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이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딤후 2:24)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능력이 부족해도, 현실과 상황이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가르쳤습니다. 목회를 시작한 지 40여 년이 지나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 누구보다 가르치는 사역을 많이 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소그룹으로 가르치는 사역은 지금도 일주일에 5~6그룹을 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며 제자를 키우는 훈련 사역을 지금까지 잘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고(故) 옥한흠 목사님은 CAL세미나 첫 시간에서 광인론(狂人論)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제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미쳐야 감당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목사가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서 제자를 삼는 일에 미치지 않으면, 부수적인 여러 가지 사역으로 인해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능력이 되지 못해도, 상황이 어려워도, 성도들을 복음으로 가르치면 반드시 예수 제자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2. 사역자의 본이 된 삶으로 제자 삼는 사역을 합니다

중국 연변의 용정에 가면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습니다. 거기에 윤동주 시인의 외삼촌이었던 규암 김약연 선생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그분은 명동교회와 학교를 세워서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낸 민족의 지도자이자, 교육자였습니다. 그 곳에 김약연 선생께서 돌아가실 때 제자들에게 하신 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행동이 유언이다.”

가르치는 자는 항상 본이 된 삶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을 본받으려고 끊임없이 애쓰고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자신이 먼저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는 말씀에서 보듯, 바울처럼 철저하게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온 몸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사역을 오래하다 보면 삶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와 성도들은 가르치는 대로 살지 않고, 보는 대로 삽니다. 그래서 ‘모델링’이 최고의 교육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역자는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부족한 사람이고 모자란 삶이지만, 가르치는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죄에서 멀리하게 하고, 경건에 힘쓰며, 가르치는 대로 사는 자가 되게 합니다.

3. 제자삼은 사역은 동역자와 함께 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충성된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사역을 부탁하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자 삼는 사역은 담임목회자가 해야 하지만, 동시에 함께 사역할 수 있는 동역자를 키워야 합니다. 저희 교회의 특징은 저를 포함한 모든 교역자가 우리 교회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평신도 시절부터 제자훈련을 받아 왔고, 그러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목회자가 되어 함께 제자 삼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평신도들 또한 가르치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목장’이라 불리는 소그룹에서 평신도 사역자들이 영혼을 돌보며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일대일과 소그룹으로 양육하고 가르치는 일도 평신도들이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음세대를 키우기 위한 핵심사역인 ‘대흥에듀센터’ 사역을 힘있게 펼칠 수 있는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제자훈련으로 세워진 평신도 동역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듀센터는 대흥교회에서 운영하는 다음세대를 위한 기관의 총칭입니다. 2개의 어린이집과 영수학원, 피아노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평일에도 다음세대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제자비전 아카데미’는 초중고 대안교육 프로그램입니다. 200여 명의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경건과 실력, 체력과 인격을 배우며 다음 시대의 선교사로 자라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역이 교회를 통해 꾸준히 훈련되고 헌신된 충성스런 평신도 교사들과 함께 하기에 가능합니다. 다음세대를 예수의 제자로 키우는 사역에 함께 동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기도함과 동시에 실제로 추수할 일꾼을 잘 키워서 동역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한 영혼을 예수의 제자로 삼고 작은 예수를 만들기 위해서 가르치는 사역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세대를 거듭할수록 그 열매는 더욱 부흥케 될 것입니다. 그 귀한 열매들이 주님의 지상 명령을 감당하게 될 날이 속히 올 것입니다.

이사야 60장 22절 말씀입니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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