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은 주기철 목사 순교 80주기를 맞는 날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는 지난 주일, 주 목사님을 추모하는 예배를 드렸다. 서울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서다. 그곳에는 그분이 쓰시던 성경책과 옥중에서 덮으시던 담요가 묻혀있다. 그분의 시신은 평양 돌박산에 모셔졌는데 평양에 가서 여러 차례 그 자리를 찾으려 애썼으나 찾지 못했다. 그래서 늘 아쉬운 마음이다.그래도 그분의 신앙을 기릴 수 있는 공간이 여기 대한민국의 가장 고귀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하다. 산정현교회 입장에서는 한 분 목사님은 애국
올해 안식월은 나눠서 갖기로 했다. 그래서 1차로 지난 주간 6일을 쉬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모든 것을 놓고 ‘쉼’의 가치를 깨달았다. 목회를 내려놓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쉼’을 알다니 참 아쉬웠다. 진작 ‘쉼’을 알았다면 좀 더 역동적인 사역을 했을 텐데. 그러나 이제라도 깨달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대만으로 날아가 그곳에 머물며 진정한 쉼을 누렸다. 남들이 맛있고 유명하다면서 차 타고 먹으러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내가, 먹기 위해 차를 탔다. 그리고 좋으면 또 찾았다. 그야말로 N차 방문이다.입에 콱 꽂힌 ‘패션후르
나는 소위 ‘잘나가는’ 목사다. 그래서 스스로 잘나간다고 말하듯 자아도취에 빠질 위험은 늘 있다. 나보다 더 잘나가는 목사도 많다. 그렇게 잘나간다면 누구나 조심해야 한다. 바로 ‘나르시시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나르시시즘’(narcissism), 자아도취라고도 하는 정신분석학적 용어는 자기 외모나 능력 등을 지나치게 뛰어나다고 믿는 태도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중심성이거나 잘난 체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것을 인격적 장애 증상으로도 본다.이 용어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이다. 그는 물에 비친 자기
같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그렇게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이를 ‘장인’ 또는 ‘숙련공’이라고도 부른다. 산정현교회에서 30년째 사역하는 나는 모든 것에 익숙하다. 그러므로 난 숙련된 목사 또는 장인일까? 그렇지 않다. 단순히 익숙해지기만 했다면 난 뒤처진 사역자다. 시간의 흐름으로 익숙해지기만 할 수 없다. 어떤 면에서든 성숙해가야 한다. ‘익숙’해지기보다 ‘성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성숙하다보니, 익숙해질 시간조차 없어야 건강한 삶일 것이다.그렇게 난 ‘성숙’을 지향했다. 10년 동안 익숙해지고 또 20년,
제주도 사모세미나에서 어느 강사가 소개한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를 접했다. 집에 돌아와 도종환 시인을 음미했다. 마치 성경의 교훈 중 하나를 요약한 것이라고나 할까?“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이걸 누가 모르겠나? 그런데 시인은 이 어렵지 않은 진리를 그의
난 18층 아파트의 17층에 거주하고 있다.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오르고 내릴 때마다 엘리베이터에 머무는 시간은 불과 몇십 초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문명의 편리함을 느끼지만, 때로는 짧은 그 시간의 지루함과 답답함으로 힘들 때가 있다. 대개 같은 통로에 사는 이웃들과 마주할 때다. 17층이라 피할 수 없는 이웃이 많다. 그들을 만나면 늘 웃으며 인사를 하곤 한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좁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시간은 매우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웃으면 인사와 대화를 나누는 이웃을 만나면 그 시간이 짧
나가사키라고 하면 짬뽕을 떠올리지만 ‘카스텔라’는 잘 알지 못한다. 포르투갈 선교사가 일본에 전해준 카스텔라가 일본의 유명상품이 됐다. 나가사키 카스텔라의 역사는 16세기 서양 상인들이 나가사키 항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상인과 함께 발을 디딘 포르투갈의 예수회 소속 선교사에 의해 카스텔라가 전해진 것이다. 카스텔라를 설탕물에 튀긴 카스도스는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해서 긴 시간 항해해야 했던 선원들이 즐겨 먹었다고 한다. 이 카스도스 역시 규슈지역의 특산물이 됐다. 카스텔라라는 이름은 스페인의 카스티야(Castilla) 지역명에서
지난 주간, 우리 교회 교역자들과 일본에서 수련회를 했다. ‘나라현’에 위치한 선교사를 통해 세운 교회에서 진행했다. 그런데 함께 자유로운 대화를 하는 중에 아내가 “당신은 나의 로또”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다 아는 이 조크를 알지 못하는 선교사는 “사모님 참 스윗하다”고 반응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다시 “당신은 나와 평생 안 맞아”라고 응수했다. 그제야 ‘로또’의 뜻을 알고 폭소했다. 그렇다. 우리는 참 안 맞는 사람이다. 서로 다른 사람인데 맞는다는 것이 오히려 기적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지만 행복하게 잘 사는 이유는 서로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과연 ‘진리’는 무엇일까?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훈은 라틴어 베리타스(Veritas), 즉 진리다. 하버드만은 아니다. 명문 대학 대부분이 내거는 가치가 진리다. 미국 건국과 함께 세워진 대학은 진리 추구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진리란 예수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버드는 돈과 권력에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학문의 전당으로 인류사회 진보에 크게 기여했어야만 했다.그런데 신은정 다큐멘터리 감독이 (시대의창)이란 책에서 ‘진리보다는 돈과 권력을 좇느라 여념이 없었던 하버드’
설날을 앞두고 자녀들을 돌아보니 내가 새삼스럽게 아버지임을 느꼈다. 연습도, 공부도 해 본 적이 없이 어쩌다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니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해왔을까를 생각하면서 미소만 지을 수 없었다. 이미 장성한 아이들, 결혼해 가정을 꾸리거나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열심인 그들을 보면서, 난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며 고민에도 빠져 보았다.그렇다. 난 아버지다. 누구도 대체 할 수 없는 그 자리에, 주님께서 앉히셨다. 거부할 수도 없는 부르심이었다. 주님 탓하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그러기에 더 신중하고 기도하고 노력했
‘서른 즈음에’란 제목의 1994년에 나온 가요를 즐겨 들었던 적이 있다. 젊은 나이에 쓰러진 김광석의 매우 감성적인 노래다. 곡도 곡이지만 강승원이 쓴 노랫말이 참 마음에 와닿는다. 2007년 음악평론가들이 선정한 최고의 노랫말이라고도 하니, 내 마음이 그 노래에 끌리는 것이 유난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새해를 맞으며 돌아본다. 최선을 다했는지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그런데 열심히 산 것 같아 뿌듯하다. 스스로 좋은 점수를 주었다.난 일을 좋아한다. 일이 많을수록 더 즐겁다. 때로는 워크홀릭(workaholic)이 아닌가 싶다. 대학원을 마치고 정훈장교에 지원 및 합격해 중위로 임관했다. 그리고 꼬박 3년, 열심이었다. 시키지 않아도 할 일 찾아 해 소속 부대가 내가 맡은 분야에서 1등도 했다.서른아홉 살, 목사 안수 1년 만에 설립 89년의 산정현교회 담임이라는 일을 맡기셨다.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죽기 살기’로 일했다. 보람도
몇 년 전 성탄절을 앞둔 춥고 어두운 날,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갔다. 들어서려는데 입구에서 김밥을 파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해 함께간 아들에게 인터미션 때 김밥을 사자고 했다. 그리고 1부 끝난 후 할머니를 찾았으나 그분은 거기 없었다. 연주가 시작되니 그 할머니도 떠난 것이다. 2부 연주 내내 할머니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기회’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지난해 성탄절 직후 병원을 다녀오던 길에서 겪은 일이 생각난다. 눈 때문에 미끄러운 길을 걷는 중,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아내가 종종 아파트 관리인들이나 단골 목욕탕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선물을 건넨다. 그러면 매우 고마워하며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가 선물을 손에 쥐어줄 때 그들의 한결같은 반응이 있다. 그때마다 “나 같은 사람까지 챙길 필요 없는데”라며 매우 고마워하고 또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반응이 나온다.그리고 “몇 호에 사냐?”고 묻는다. 그 이유는 집 앞을 조금이라도 더 깨끗하게 청소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내는 그럴 필요 없다며 “내가 잘 할게요”라며 대화를 맺는다. 이런 얘기를 아내에게 들으며 한 가
21만원에 팔아넘긴 ‘나무 가면’이 경매에서 60억원에 낙찰됐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아프리카 가봉에서 만들어진 그 가면을 헐값에 팔아버린 한 노인은 그것을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 귀한 것을 잊고 지내다가 다락방에서 찾아낸 후 고물상에 팔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비싼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되찾고 싶어 소송까지 한 모양이지만 돌려받기는 힘들 것이다. 21만원과 60억원,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다. 가치를 알지 못하면 보물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가치를 바르게 판단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