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주필

기독교가 그 뿌리요 열매였던 중세 기독교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 기초한 구원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유사성을 이루어 같은 종류가 되는 (like is known by like) 방법론의 사상이었다. 이 사상은 완벽한 하나님과 비슷한 일들을 행함으로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중세 천년 동안 구원이란 인간이 선행을 통해 신과 유사해지는 노력이며 성취였다. 그럼에도 루터는 인간이 갖는 내적 공포와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이 영적 번민에 대한 해답을 찾은 성경이 로마서 1장 17절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였다.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 of God)는 중세를 사는 모든 이들이 도달해야 할 기준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기준에 이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실존임을 젊은 수도사 루터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의를 얻는 것이 기쁜 소식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선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루터는 그 선물이 바로 ‘은혜’임을 알게 된다. 이렇게 ‘의로움’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그동안 이를 성취하려고 했던 중세 선행(Bona opera)들인 자선, 독신, 순례, 유물, 십자군, 면죄부, 교황에 대한 복종은 부차적인 것들이 된다는 것 아닌가!

삶의 모든 의미와 행복은 인간이 쌓는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사랑과 용서에 대한 확신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루터의 생각이었다. 루터의 이 발견은 중세 천년의 전통을 뿌리 채 흔드는 대 사건으로 나타난다. 루터는 아무런 헌신도 없이 구입하는 면죄부로 구원 받는다는 가짜 기독교에 대하여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 교회의 문인 테제의 문에 게재한다. “사면장으로 구원을 판매한 이들은 그 가르친 이들과 함께 저주를 받을지어다.”(32조) “교황은 어떤 대 부호보다도 더 부유하다. 그런데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지을 때 왜 자신의 돈을 쓰지 않고 가난한 신자들의 돈을 쓰는가.”(86조) “면죄부라는 거짓된 확신이 아니라 많은 고난을 통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다.”(95조)

95개조 반박문 사건은 종교개혁의 시작이었고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역사의 종소리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다리가 되었다. 그리고 95개조 반박문은 당시 루터가 사제로 있던 마인쯔의 대주교 알브레히트에게 보내지면서 대변혁의 서막을 열고 있었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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