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섭 목사(대대교회)

▲ 1980년대 순천만 대대포구의 가난하고 한적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태고적 신비가 훼손되지 않고 잘 간직되었기에 지금은 생태관광 1번지가 되었다.

경외로운 창조세계, 겸허하게 사랑하다
생태계의 보고 순천만은 하나님의 숨결을 사모하는 자들을 위한 곳이다

 

2010년 유엔환경기구(UNEP)는 순천시에 ‘세계 살기 좋은 도시’ 은상을 수여했다. 이 때 금상을 받은 도시는 미국의 마이애미비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나니 언젠가 해외여행을 많이 하신 분으로부터 들었던 말씀이 생각났다. “세계 어디를 가보아도 순천만처럼 아름다운 곳은 보지 못했다.” 그 때만 해도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말이었다. 단순히 열악한 어촌환경에서 목회하는 나를 위로하려는 말로만 여겼을 따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순천 일대에서 가장 오지를 들라하면 내가 사는 순천만이 1, 2위를 다투었기 때문이다.

순천만을 품고 있는 우리 마을 이름은 큰 터라는 뜻을 가진 ‘대대’이다. 예부터 우리 마을은 300여 가옥이 한 곳에 모여 있어 큰 마을에 속했다. 인구가 많을 땐 우리 마을 아이들만 해도 초등학교 각 학년마다 한 학급씩을 이룰 정도였다. 하지만 농토도 적은데다 홍수피해와 바닷물 만조로 인한 침수까지 잦아서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해 가난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초가집이 남아 있을 정도로 낙후된 마을이었다.

그러던 마을이 지금은 세계 5대 연안습지가 되었다. 람사르협약에 가입하였고, 국가지정 명승지가 되었다. 최근에는 ‘아시아 경관’ 대상을 받았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200만 명이 넘는 국내외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생태관광 1번지가 되었다.

이제 너무 많은 방문객들로 인하여 훼손을 염려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주차 시설도 많이 줄였고 방문객 수효를 제한하기 위해 예약제를 실행 중이다. 한편으로 순천만의 보존을 위하여 도시팽창을 막고, 방문객 분산을 위해 순천만정원을 만들기도 했다. 작년에는 순천만정원이 대한민국 국가정원 1호로 지정을 받는 개가를 올렸다. 이제 순천만습지와 순천만 국가정원이 한데 어우러져 명실공이 우리나라 최고의 힐링 코스가 되었다.

언제부터 무명의 마을이 유명한 마을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이 마을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온 내게도 뜬금없는 일이다. 우리 마을이 우리나라 최고의 명소가 되기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다. 얼마나 많이 변했으면 오랜 만에 고향을 방문하는 분들은 친척집을 찾지 못하고, 교회에 오시는 분들도 한참 헤매다가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본래부터 순천만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다만 꽁꽁 숨겨져 있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순천만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순천시가 순천만 일원에 골재채취사업을 허가하자,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해 결국 허가가 취소되었다. 하지만 2000년에 들어서 ‘동천하도정비’라는 다른 이름으로 사업이 재개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시민단체들은 사업의 취지가 홍수피해 방지보다는 모래채취에 목적이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주민감사청구를 통해 하도정비 사업은 중지됐고, 이를 기폭제로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졌다. 태고의 신비에 쌓여 있던 순천만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산업사회로 들어서고, 급속한 도시화로 인하여 사람들마다 순수한 자연을 그리워하던 차였다. 때마침 사람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순천만이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다. 순천만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의 간섭 없이 그대로 두었을 뿐이다. 그랬더니 보물이 된 것이다.

하지만 순천만에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비로움에 묻혀 있던 순천만이 바깥세상으로 알려지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만인들에게 벌거숭이처럼 드러났고, 무수한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더럽혀지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환경파괴를 막자고 시작한 일이 도리어 순천만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 1980년대 순천만 대대포구의 가난하고 한적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태고적 신비가 훼손되지 않고 잘 간직되었기에 지금은 생태관광 1번지가 되었다.

무엇이든 감추어진 부분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신비로움 때문에 가치를 더하게 되고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법이다. 순천만은 감추어진 신비로움을 아무에게나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경외의 마음과 자연에 대한 겸허함을 갖추어야 한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이용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는 갑과 을이 아니다. 자연은 사람에게 먼저 화를 내거나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거만하게 대하면 자연은 반드시 보응한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지혜를 드러낸다. 생태계의 보고인 순천만은 단순한 유흥의 장소가 아니다. 창조주의 솜씨를 느끼며, 하나님의 숨결을 사모하는 자들을 위한 곳이다. 산이든 바다이든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많은 것이 보인다. 그래야 남이 보지 못한 것도 볼 수 있다.

순천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힐링의 최적지다. 글과 사진으로 충분히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우선 지면에 소개하는 순천만 이야기를 통해 미리 만나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언제든 순천만 방문을 계획하는 분들은 하나님이 만든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방문지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를 부탁한다. 나의 힐링을 위해 타인에게 고통을 남기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이 방문자의 진정한 예의다.

▲ 생태관광지로 본격적인 관심을 받기 전 순천만 일대의 옛 모습. 이제는 빛바래고 낡은 사진 속 기억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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