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주필

800년 12월 25일 로마의 대성당에서는 교황 레오3세가 샤를마뉴의 머리에 금관을 씌워준다. “그대는 이제 로마의 황제입니다” 샤를마뉴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 준 교황 레오3세(Leo Ⅲ d 816)는 800년 중순 반대파의 공격을 받고 한 눈이 실명한 채 심한 부상을 당한다. 당시 평민출신이었던 레오3세는 기득권 세력들에 의하여 제거의 대상이었다. 레오3세는 자신들의 정적을 피하여 로마를 탈출한다. 그리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파더보른에 있는 샤를마뉴에게 찾아간다.

어릴 때 교황 스테판 2세에게 안수를 받았던 샤를마뉴는 교황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새 교황이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나타난 것이었다. 800년 12월 이에 분개한 샤를마뉴대왕은 군대를 이끌고 교황과 함께 로마로 내려간다. 샤를마뉴는 전쟁영웅답게 교황의 반대파를 제거하고 교황 레오3세를 복위시킨다. 며칠 후인 12월 25일 레오3세는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성탄예배에 참석하여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는 샤를마뉴에게 황제의 관을 씌운 것이었다.

당시 레오는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 때 사용 된 못이 박혔다는 금관을 샤를마뉴의 머리에 씌워 준 것이었다. 사실 당시의 샤를마뉴는 사라진 서로마제국의 옛 영광을 훌륭히 복원한 황제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존경스러운 황제였다. 황제의 칭호를 받은 샤를마뉴는 비잔틴 로마제국의 황제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게 된다.

샤를마뉴가 받은 황제(Augustus Imperator) 칭호에 대하여 신성로마제국 황제라고 하는 것은 역사의 오류이다.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은 962년 오토대제가 다스린 동프랑크 즉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한 국명이다. 당시 동로마는 고아출신의 여황제 이레네가 통치하고 있었다. 당시 이레네의 지위를 황제로 지칭하기를 꺼려했던 교황은 자신을 도운 샤를마뉴를 황제로 인정하므로 서로마 황제의 위가 전해졌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대관식은 황제와 교황 사이를 경쟁과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게 한다.

교황은 황제가 자신에게 복속되는 것으로 믿었고 황제는 자신이 교회의 수호자라고 믿었다. 교황은 제국 정치에 관여하려 했고 황제는 교회를 장악하려 했다. 결국 이 사건은 1077년 황제와 교황의 충돌인 카놋사의 굴욕을 낳게 한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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