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목사(빛과진리교회)

충성된 ‘영적 4세대’의 주역이 됩시다
절제하는 병사로 법대로 경기하며 수고하는 농부가 되어야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딤후 2:7)

오늘 내용은 영적 4세대에 대한 것입니다. 부흥하고 건강한 교회라는 뜻은 양적인 증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4세대 이상 뿌리를 깊이 내리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래야만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열매를 맺고 시련이 와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딤후 2장 1~7절은 특별히 제자훈련 하는 분들이나 건강한 교회를 꿈꾸는 분들에게 훈련의 근거가 되는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디모데후서를 기록했습니다. 디모데는 당시 에베소 교회의 담임목사로 있었는데 바울은 영적 제자인 그를 향해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육체적인 가족관계를 초월한 우주적인 가족 관계로서 영적 지도자와 성도 간의 신뢰 관계를 의미하는데, 이 신뢰 관계가 영적 4세대의 출발입니다. 호칭에서부터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절절한 사랑이 묻어나지 않습니까?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딤후 2:1) 바울 그 자신이 먼저 은혜 속에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영적 4세대를 이루는 첫 단추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선발하거나 평가할 때, 은혜 속에 강한 인물인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그 사람은 영적 성장을 멈추게 됩니다.

‘강하다’는 말은 지속적으로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힘을 말하는데, 일시적인 열정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꾸준히 한 발짝씩 진보해 가는 이런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죄의 종으로 살던 자신을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생명을 살리는 가치 있는 삶으로 불러 주셨다는 놀라운 은혜를 평생 잊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이 감격도 함께 커져 가는데, 이렇게 나를 불러 주신 그 분에게 무엇으로 보답할까? 지옥으로 가고 있는 나를 빛 된 삶으로 구원해 주신 그 분께 어떻게 하면 은혜를 갚을까? 이런 마음이 은혜 속에 강하다는 말입니다. 이 은혜를 모르는 사람과는 상종하기가 어렵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줬더니 내 보따리 어디 있냐고, 나는 내 길 가겠다고, 또는 조금 헌신하고 생색내는 사람들은 소중한 영적 4세대를 이어가기 어렵습니다. 은혜 속에 강한 사람들끼리 영적으로 2세대까지 가야 그 모임은 든든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영향력 있는 팀이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영적 4세대까지 이루게 되는데 2절에서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많은 증인’은 바울의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당시 바울이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훈련시켰는데 디모데만이 영적 2세대가 될 만큼 자랐습니다(빌 2:19~22). 그런 디모데에게 자신이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하는데 ‘부탁한다’는 말 속에는 ‘찾아서 전수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도 1세대로서 디모데와 같은 충성된 2세대의 사람을 찾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오더라도 영적 4세대를 이룰 만한 다음 세대의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그 모임은 얼마 못 갑니다. 2세대 디모데와 같은 사람들은 3세대 충성된 사람들을 찾아서 자신이 받은 것들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이 진리가 그대로 3세대까지 가게 되면 그 위력은 더 커져서 4세대를 형성하는데 좀 더 용이해 집니다. ‘또 다른 세대’인 4세대는 온 인류를 가리킵니다.

그러면 충성된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처럼 충성스러운 사람을 병사, 경기하는 자, 농부 이렇게 세 가지 은유로 표현했습니다. 7절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이 세 가지 은유를 계속 묵상하고 삶에서 경험한다면 자기 자신이 먼저 충성된 사람이 되고, 또 통찰력 있는 사람이 되어 다른 충성된 사람들을 찾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딤후 2:3~6)

오늘 본문에서 충성된 사람으로 비유된 ‘병사’는 명령에 절대 순종하여 절제된 삶을 살아갑니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고난은 자기 생활을 가지고 싶은 것입니다. 주님의 병사는 사탄이라는 최강 부대와 싸우기 위해 강력한 팀워크를 이루고, 우주적인 전쟁에 의미를 부여하며 “내가 싸우지 않으면 온 인류가 멸망하겠구나”라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전에 가치 있게 여겼던 것들을 버리고, 죄 짓는 것을 절제하고, 그것을 절제한다고 억울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병사는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제자 훈련을 받는 중에 감정에 싸여 기분 나빠하고 훈련에서 이탈하려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충성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기 생활에 얽매이게 된다면 병사를 모집한 총사령관인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주를 위해서 자기의 소중한 것을 버리고 절제하는 사람을 볼 때 주님께서 얼마나 감격스러워 하실까요.

본문에서 충성된 자로 비유된 두 번째 사람은 ‘경기하는 자’입니다. 그는 법대로 경기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인 말씀에 정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말씀을 애매하게 알면 끊임없이 사탄에게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하는데 사탄은 말씀을 비틀어서 악으로 악을 이기라고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평상시 생활에서 늘 말씀에 착념하여 하나님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이 충성된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수고하는 농부’입니다. ‘수고한다’는 말은 그리스어로 ‘코피온타’인데 마치 ‘코피나도록 수고한다’는 의미로 재미있게 기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성경적인 수고는 능률적이고 효과적인 수고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다는 말씀은 효과적으로 일한 사람이 먼저 보상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먼저 생각하는 것을 통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이러한 사람을 충성스러운 농부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은유를 기억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운동 경기 할 때는 “항상 법대로 해야겠다”, 혹은 농촌 봉사를 할 때는 “효율성을 생각하면서 해야겠다”, 만약 군대 경험을 못 하신 분이라면 관련 영화라도 보시면서 “군인의 태도를 갖고 훈련해야겠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광스러운 영적 4세대를 이루는 주역이 될 것입니다. 우주적인 가족을 이루는 분들이 되어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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