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섭 교수(총신대학교 중독재활상담학과, 강서아이윌센터장, 심리학 박사)

▲ 조현섭 교수- 총신대학교 중독재활상담학과- 강서아이윌센터장- 심리학 박사

서울시 거주시설담당 주무관으로부터 급하게 들어오라는 전화가 왔다. 가서 보니 민원서류가 그 주무관 책상 높이만큼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우리가 ○○○구에 산 집의 동 주민들이 거주시설설치를 반대하며 서명한 서류라고 했다. 참으로 황당했다. 어떻게 마련한 집인가?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거주시설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을 때 어렵게 복지부와 서울시를 설득하여 만든 시설인데 말이다.

이 전화는 여름휴가가 막 시작하던 8월 초 쯤, 000구 보건소 소장님이 여름휴가를 간 사이 담당과장이 동장에게 공문을 발송하여 그 지역주민들에게 의견을 물으라고 지시한 후 발생한 일이다. 결국 3개월간 000구 지역 주민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곳에서 철수해야 했다. 그 일로 필자가 얼마나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탈진하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오랫동안 고생해야 했다.

국가 예산은 그 해 12월 안에 사용하지 않으면 다음 해로 이월해서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발이 부르트도록 서울시 온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거주시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아무 집이나 살 수가 없다. 치료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적합한 구조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적당한 집을 찾았다. 그 집의 대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추운 겨울 내내 따지 않아 시들은 주황색 감이 흰 눈에 쌓인 채로 나를 반겼다. 마치 몹시 지쳐있는 나와 흡사한 모습 같아 가슴이 찡하면서도 몹시 정겨웠다. 이 거주시설을 ‘감나무집’이라고 명명한 이유다.

그러나 또 난관에 부딪혔다. 새로 집을 산 지역의 보건소장님은 이 거주시설 설치를 찬성했지만 이미 우리가 다른 구로부터 쫓겨난 사실을 안 직원들은 찬성할 리가 없었다. 12월 말일은 가까워지는데 해결에 기미가 보이지 않던 어느 날 보건소장님이 향후 생기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며 전결을 하셨다. 그 이후에도 이 보건소장님은 그 지역에 여성 거주시설 ‘향나무집’을 설치하도록 허락하셨고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감나무집 리모델링을 다 끝낸 후 조촐하게 개소식을 하였다. 필자는 그동안 감나무집을 설치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드디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거주시설을 설치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 등 만감이 교차되어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누가 공무원들을 복지부동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폄하하는가?.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국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책임을 지는데 앞장섰고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이 자리를 빌려 감나무집 설치에 도움을 주신 그 당시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담당자, 그리고 마포구 보건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역사를 쓴다는 것은 단 몇 사람만의 확신과 의지만으로도 가능한 것 같다. 아직도 중독분야에는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 일이 많다. 그 자리에 중독에 관심 있는 여러분의 이름을 꼭 올리기 바란다. 그 이름이 교회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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