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주필

‘주여 일어나소서(Exsurge Domine) 멧돼지가 거룩한 포도원을 파괴하고 있나이다’ 위의 말은 당시 멧돼지 사냥을 즐기며 자신의 본분에서 이탈한 타락한 교황 레오 10세가 루터에게 보낸 파문장의 서두이다. 타락한 교황 레오 10세의 눈에는 루터가 멧돼지로 보였지만 루터의 눈에는 교황이 포도원을 허는 여우처럼 보였던 것이다. 최후 통첩장 앞에서도 철회할 뜻을 보이지 않는 루터에 대하여 교황 레오 10세는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찰스V)에게 루터 재판을 위한 제국회의를 요청한다.

이 회의가 1521년 4월 16일에 열린 보름스(Worms)회의였다. 당시 21세의 카룰 5세는 스페인의 전설 같은 여왕 이사벨라의 외손자였다. 이사벨라는 자신의 딸 후안나(Joanna the Mad)에게 자신의 나라를 물려주었고 이 나라는 그의 아들 카룰 5세에게 대물림된다. 스페인 국왕이었던 카룰 5세는 할아버지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으로부터 독일과 유럽의 드넓은 영지를 물려받는다.

당시 카룰 5세는 자신의 제국이 일개 수도사인 루터로 인하여 분란에 휩싸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루터는 카룰 5세로부터 신변 보장에 대한 확약을 받은 후 제국회의에 참여했다. 당시 루터의 나이 37세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21세의 유럽 최고의 군주 카룰 5세와 대면한다. 이 만남은 중세를 상징하는 인물과 근대를 상징하는 인물의 만남이었다.

카톨릭 수호자와 개신교 개혁자의 이 만남에서 카룰 5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문서에 나온 그대의 주장들을 철회하는가” 루터는 이 질문의 답변을 위해 하루의 시간을 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이튿날 루터는 제국회의장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폐하! 제 대답은 이것입니다. 저는 수없이 오류를 범한 교황과 공의회를 믿고 따르지 않습니다. 제 양심과 성경에서 직접 가르쳐 주지 않는 한 저는 철회할 수도 없고 철회하지도 않겠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제가 여기 있나이다.”

일주일 후 황제는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루터와 그의 동조자들도 사형과 재산 몰수로 벌하겠다는 내용의 보름스 칙령(Edict of Worms)을 발표한다. 이후 루터는 비텐베르그로 돌아가던 중 일군의 병사들에게 납치되어 발트부르크(Waldburg)성에 연금된다. 그리고 고백한 내용이 “내주는 강한 성이시다”(Eine Feste burg ist unser Gott: Our God is mighty fortress)였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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