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회 총회 최고의 히트 작품 중 하나는 ‘새로운 100년을 향한 우리의 기도’란 제목으로 열린 희망음악회였다. 목사부총회장 입후보자 낙마, 천서제한, 총회기구개혁안 통과, 선거규정 개정, 종교개혁500주년 사업계획 등 굵직굵직한 안건들이 많이 다뤄졌지만 희망음악회만큼 신선한 소망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총회시 수요예배는 늘 선교나 전도 등 특별한 사안을 기념하여 추진해 오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번 희망음악회는 정치적 요소를 배제해서 그런지 준비단계부터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솔직히 성공여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충현교회 본당을 가득 메운 총대와 성도들은 순서자들이 축복의 찬가를 부를 때마다 아멘으로 화답하거나 소리내어 기도를 하고 나아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간단간단한 메시지 또한 강렬하게 남았다. 어린이부터 청소년 그리고 청년에 이르기까지 온 세대가 한 자리에서 모여 비전을 고백하던 장면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감동의 도가니였다. 한 마디로 희망음악회는 대성공이었다. 희망음악회는 말 그대로 또다른 100년을 새롭게 출발하기를 바라며 기획됐다. 지금까지 지내온 100년을 감사하고 다가올 100년은 어둡고 속이 상한 일보다 희망을 노래하는 일들만 도래하기를 바라며 준비했다.

그렇다면 총회는 어떻게 100년을 맞이해야 될까? 7개 노회 70여 명의 총대가 천서를 받지 못하고, 5명은 총회결의 이행 방해와 교단 혼란 및 분열 등의 이유로 공직정지 및 제명 심지어 교단영구 출교까지 당하기도 했다. 파회 직전에 해당자를 제외하고 천서금지가 풀렸다지만 개운한 총회는 정말 아니었다. 그리고 치리를 당한 자들을 총회화해위원회에서 해결해주도록 ‘정치적 여지’를 남겨두었다.

이와 같은 아픈 총회는 더 이상 재연되어서는 안된다. 해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기획총회’는 구태로 묻어두고 이제는 희망음악회처럼 신선하게 희망을 주는 총회로 전환해야 한다. 몇몇 총대들만의 잔치가 되는 그런 총회는 버리고 1600여 명의 온 총대가 축제를 누리는 기쁨의 총회가 돼야 한다. 은혜로운 성총회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급회의만도 못한 총회가 되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새로운 100년을 향한 회기에는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반성하고, 노회 또한 총대를 선출할 때 공의로운 자를 바로 뽑아 총회에 보내길 바란다. 희망을 주는 총회를 기대한다는 것은 정말 망상(妄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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