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은혜와 심판의 불이 공존했던 제사, 영적 긴장 늦춰선 안된다

최고의 영적 체험을 맞본 후 최악의 불법을 행한 제사장들은 비극적 죽음을 당해야 했다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아론에게 오늘은 그의 삶에서 가장 엄숙한 날이다. 아니 그의 아들들과 나아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참으로 중대한 날이기도 하다. 그가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고 자신의 집안의 남자, 곧 자신의 아들들은 제사장으로 세워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앞서 출애굽기 29장에서 모세를 통해 <제사장 위임식 행사> 전반의 예식 절차를 이미 가르쳐주셨다. 이제 그 절차대로 모세와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위임되는 것이다(레 8장). 또한 레위기 1~7장에서 모든 제사법이 주어졌으니 이제 그 제사들을 집행할 제사장을 임명할 순서인 것이다. 더불어 제단은 성막 건축이 완료되면서 이미 준비되었는데 이제 그 위에 제물들을 태워 제사를 시작하기 위해 제단을 봉헌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이 날은 제사장들이 위임되면서 동시에 제단이 봉헌되는 날이었다.

당일 아침 모세와 아론은 오래도록 그날 행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특히 모세는 제사장 위임식의 총책임자로 행사가 차질이 없도록 모든 제물과 필요한 물품을 철저히 준비해야했다. 아론은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자신과 아들들이 행여라도 죄를 짓거나 부정을 탄 일은 없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제사장들이 누군가! 그들은 하나님과 백성들이 사이에서 양쪽을 중재하는 중대한 사명을 감당해야했다. 즉, 백성들은 제사장을 통해 성소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며 그분께 나아갈 수 있었다. 성막이 세워진 후 이제 제사장의 중재없이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위임은 백성들에게도 얼마나 중요했던가!

위임식을 위한 준비물들

제사장 위임식의 준비물로는 제사장 관복과 특수한 관유, 속죄제를 위한 수송아지와 번제용 숫양, 그리고 위임식 화목제를 위한 숫양과 무교병 한 광주리가 필요했다. 이때 광주리에는 세 종류의 소제물이 들어있었다(8:26). 위임식을 위해 모든 백성들이 회막 주변에 운집했다.

모세는 위임식에 임하기 전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목욕시킨 다음 아론에게는 대제사장 관복을, 아들들에게는 일반 제사장의 예복을 입힌다. 그들의 거룩한 직분의 구별됨은 우선 거룩한 옷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다시 말해 제사장의 복장, 특히 대제사장의 복장은 하나님의 거룩의 현시다. 일반 제사장의 옷은 간단했다. 그들은 속옷을 입고 허리띠를 맨 다음 머리에는 관을 쓴다(8:13). 그러나 대제사장의 의복은 많은 보석과 더불어 매우 복잡하고 화려했으며 대단히 비쌌다. 속옷, 겉옷, 에봇, 흉패, 관(제사장들이 제단에 오를 때 입는 속바지는 정규 복장은 아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상징적으로 입는 ‘그리스도의 옷’은 바로 대제사장의 거룩한 옷을 가리킬 것이다(롬 13:14; 갈 3:27).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영화로운 존재이며 또한 얼마나 구별되어야할 존재인가!

이어서 진행되는 기름부음 의례(10~13)에서는 값비싼 재료로 만든 관유를 사용했다. 모세는 먼저 관유를 성막에 뿌리고 성막의 비품들과 마당에 놓인 놋제단과 물두멍 등의 도구들에 발라 거룩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모세는 아론의 머리에 관유를 부어 그를 거룩하게 만들었다. 아론의 아들들도 동일한 절차를 따랐다(출 28:41). 제사장 내정자들이 이렇게 준비를 마친 후 위임식을 위한 일련의 제사들이 바쳐진다: 수소의 속죄제; 숫양의 번제; 숫양의 위임식 화목제(위임식 숫양은 형식으로 볼 때 일종의 화목제로 볼 수 있다).

가장 특이한 의례는 짐승의 피를 바로 제사장 내정자들의 신체 말단, 즉 오른쪽 귓불, 오른손 엄지, 오른발 엄지에 바르는 의례다. 그렇다면 머리부터 발끝에 이르는 신체 말단 부위에 피를 바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동일한 의식이 레위기 14장에서 진 밖으로 추방된 문둥병 환자가 치유된 뒤 진영 안으로 복귀 절차를 밟을 때 발견된다. 차이점은 단지 거기서는 화목제의 숫양 대신 속건제의 숫양을 잡는다는 점이다. 이 행위에는 분명 몸을 씻는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그렇다면 왜 신체 말단에 피를 발랐을까? 아마도 그 배후에는 사물의 뿔이나 끝이 빈번한 접촉에 의해 쉽게 더럽혀진다는 관념이 있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또한 몸 전체를 대표하는 신체 말단을 씻는 것은 곧 몸 전체를 씻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피를 제단 뿔에 바른 이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어서 모세는 제단에 묻은 피가 섞인 관유를 일부 취해 제사장 옷에 뿌린다. 이 또한 매우 독특한 의례다. 관유와 피를 따로 뿌린 것이 아니라 섞어 뿌린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해서 그 옷들이 비로소 완전히 거룩해진다.

제사장 위임식과 더불어 제단 봉헌식은 하루가 아닌 7일 연속 진행된다. 이 기간 동안 매일 수송아지 한 마리를 속죄제로 바쳐 그 피로 제단을 씻어냈다(출 29:35-37). 더불어 이때부터 시작된 제사장들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일년생 양을 한 마리씩 상번제로 바치는 일이다(출 29:38-40). 저녁의 번제물은 아침까지 두었으며 아침에 새롭게 장작을 추가하여 또 다시 번제의 양을 올렸다. 그로 인해 제단 불은 꺼지는 법이 없었다(레 6:9). 매일의 번제를 칠일의 위임식 기간 동안 드림으로써 8장의 ‘제사장 위임식’과 ‘제단 봉헌식’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된다.

제단 가동식(레위기 9장)

제사장이 위임되고 제단이 봉헌된 이후 제 8일째에 제단 가동식이 진행된다. 이 제단 가동식의 날에 최초로 레위기 1~7장에 규정된 모든 제사들-속죄제, 번제, 소제, 그리고 화목제-을 드린다. 속건제가 빠진 이유는 그것이 속죄제의 쌍둥이 제사라 둘 중 하나만 드려도 충분했을 뿐더러 재산상의 피해를 배상하는 제사가 공적 제사에는 부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단 가동식에는 모두 제의적 가치가 더 높은 수컷들(수소, 숫염소, 숫양)을 바쳤다. 제사장 위임식과 마찬가지로 이때도 온 회중이 성막 주변에 모였다.

엄밀히 말하면 제 팔일의 제단 가동식에서 드린 제사는 회막의 제단에서 바쳐진 최초의 제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이미 칠일 간의 제단 봉헌식과 제사장 위임식에서 제사장들을 위한 속죄제(수송아지)와 번제(숫양)와 위임식의 화목제(숫양) 및 소제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선 이러한 제사들이 제단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봉헌하기 위한 절차였음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제단은 비로소 향후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를 바치기에 합당한 기물이 되었다. 제 팔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최초의 공적 제사들이 집행되면서 제단이 사용되기 시작되는 것이다.

속죄제에 이어 번제를 드리고 이때 소제가 함께 드려진다. 원칙상 제사장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번제의 숫양을 바칠 때 소제를 곁들였다. 그 규칙에 따라 제단 가동식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화목제를 드릴 때는 백성이 준비한 수소와 숫양을 잡는다. 모든 절차는 레위기 3장의 화목제 규례 그대로다. 요제로 흔든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는 제단에 태우지 않고 제사장들의 몫으로 돌린다. 나머지 고기 부위는 백성의 몫이므로 장로들의 화목제 식탁을 위해 주어졌을 것이다.

아론은 모든 제사를 마친 뒤 백성을 축복하고는 제단에서 내려온다. 제단에서 내려온 아론은 모세와 함께 회막으로 들어갔다. 이때가 임명받은 대제사장 아론이 최초로 회막에 들어간 순간이다. 그 전에는 모세 홀로 회막에 출입했다. 모세와 아론은 회막을 나온 뒤 한번 더 백성을 축복한다. 이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 그분으로부터 내려온 불이 내려와 제단 위에서 타고 있던 모든 제물들을 순식간에 살랐다. 백성들은 이 장면에 압도되어 소리를 지르며 엎드렸다. 히브리어 동사 라난(ranan)이라는 단어의 뜻에 비추어 볼 때 이는 기쁨의 외침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세가 제단 봉헌식 때 최초로 제단에 불을 지폈고(레 8:16), 아론이 그 불 위에 최초의 제사들을 드렸지만, 위에서 하나님의 불이 엄습해서 그 제물들을 태웠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제단 불은 이제 절대로 꺼트려서는 안 되는 신적 불로 그 위상이 승격되었다.

실패한 제사와 징벌(레위기 10장)

레위기 8-10장은 같이 읽어야 한다. 8장에서 제사장이 위임되고, 9장에서 제사장들에 의해 최초로 제사들이 드려지면서 제단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그 제사는 하나님의 불이 위에서 내려와 제물을 태울 때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10장에는 곧바로 실패한 제사가 보고된다. 아론의 두 아들 중 나답과 아비후가 자신의 방식대로 제사를 드리다가 죽임을 당하는데 9~10장은 모두 같은 날 발생한 사건들을 다룬다.

성막에서 제사를 드릴 때 형식적 측면에서는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내적 측면에서는 제사자의 태도가 제사의 효과를 결정했다. 성막 내에는 제의를 위해 구비된 여러 비품들이 각각의 자리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 배치가 흐트러져선 안 되며, 제사 목적으로 특수하게 제작된 거룩한 비품들 외에 다른 물품은 허용되지 않았다. 또한 성막 내에 쓰이는 제의용 불은 제단에서 가져온다(레 16:12). 이러한 제사 규정들을 위반한 제사는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아론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다(출 28:1):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이중 나답과 아비후, 즉 첫째와 둘째 아들이 제의적 잘못을 저지른다. 제단 가동식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적인 방식으로 제사를 드리려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들은 결정적으로 제단에서 취하지 않은 불법적인 ‘다른 불’을 담아 옮겨 내성소의 향단에 향을 피웠다. 이어지는 포도주와 독주 금지에 대한 진술은 이런 잘못을 범하게 된 배경을 암시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술에 취해 신중하지 못했으며, 규칙을 무시한 채 자의적인 방법으로 제의를 수행하려 했는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매번의 예배 때마다 성전된 우리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우리 마음의 배치가 바르게 되었는지,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는 성전된 우리의 공동체는 흐트러짐이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예배의 순서와 준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것인지, 우리도 행여 ‘다른 불,’ ‘이방의 불,’ ‘세속의 불’을 들고 향을 피우려 하진 않는지 살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놀라운 은혜와 무서운 심판이 하룻 사이에 번갈아 내려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매 순간 영적 긴장을 늦추어선 안된다. 그날 바로 직전에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최고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은 이에 그야말로 극적으로 응답하셨다. 백성들은 전율을 느끼며 그분을 경외함으로 엎드려 기쁨의 탄성을 내뱉었다(9장).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은 절정의 은혜를 맛본 후에도 곧장 타락의 길로 떨어질 수 있다. 본문은 바로 그것을 잘 말해준다. 극과 극의 사건이 연달아 벌어진다. 제사장들은 최고의 영적 체험 직후에 최악의 불법을 행하여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다(10장). 제단 위에 내려 모든 제물을 순식간에 태운 바로 그 불이 잘못된 불로 분향을 한 나답과 아비후에게 떨어져 그들을 태웠다. 동일한 불이 한번은 은혜의 불로, 다른 한번은 심판의 불로 임했다.

두 아들의 죽음 직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레 10:3). 이것은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 그분을 위해 성막의 직무를 다하는 제사장들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오늘날 제사장 나라인 교회는 바른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서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충만히 드러내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를 위한 유일한 제사장 중재자는 바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원한 유일하신 중보자로 중재와 중보의 일을 감당하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