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진광 목사 부부가 환자들에게 대접할 호박죽을 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오진광 목사, 19년 동안 예수병원서 봉사 사역
직접 쑤어온 호박죽 대접, 회복의 은혜를 나눠

“호박죽 목사님이 요즘 안 보이시네요? 무슨 일 있으실까?”

수요일이면 호박죽을 한 솥 가득 끓여와 병실마다 돌면서 나누어주던 오진광 목사(완주 마치교회)가 몇 주 모습을 보이지 않자, 환자와 보호자들이 그의 안부를 궁금해 한다. 호박죽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을 항상 챙겨주던 친구가 그리워서이다.

▲ 환우들에게 호박죽을 대접하며 위로하는 오진광 목사 부부.

오진광 목사는 아내 이애순 사모와 함께 무려 19년 동안 예수병원에서 호박죽 봉사를 해왔다. 거의 매주 거르지 않고 손수 집에서 쑤어온 호박죽을 병실 환자들에게 대접해온 게 횟수로 따지면 1000번이 넘고, 그릇으로 계산하면 무려 2만여 개에 이른다.

두 사람이 호박죽 봉사를 시작한 계기는 호스피스 사역과 연관이 있다. 오래 전 예수병원에 입원해 탈장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오 목사는 당시 여러모로 배려해 준 병원에 신세를 갚겠다는 마음으로 자원봉사자들의 호스피스 사역에 동참했다.

그러던 중 어느 병실에서 만난 환자가 입맛이 떨어져 죽이라도 먹고 싶다고 하자,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했던 보호자가 매점에서 캔에 담긴 죽 한 통을 사다주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모습이 유난히 눈에 밟혔던 오 목사 부부는 궁리 끝에 직접 늙은 호박을 구해다 죽을 쑤었다.

호박죽을 쑤는 일은 한 번 해 본 사람들은 알다시피 여간 고단한 작업이 아니다. 덩치 크고 무거운 호박을 들어 나르는 것부터가 일이며, 두꺼운 껍질을 벗겨 속을 파내고 오랜 시간 뜨거운 불 앞에서 휘휘 저어 끓여내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 무거운 죽을 차에 실어, 행여 한 모금이라도 흘릴세라 조심스레 전주의 병원까지 운반하는 건 또 얼마나 성가신 일일까. 하지만 오 목사 부부에게는 그 성가심마저도 기쁨이고 은혜였다.

호박죽 한 그릇씩을 받아들며 마냥 즐거워하는 환우의 표정을 마주치면 힘들었던 기억들이 죄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는 두고두고 절친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한 번은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앞자리에 아주머니들이 아는 체를 하시는 거예요. 자신들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 저희 부부가 대접해드린 호박죽을 먹고 입맛이 돌아왔다며, 정말 고마웠다는 인사를 해주셨지요.”

반대로 난처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를테면 매주 호박죽을 쑤어다주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오 목사의 형편이 넉넉하리라 짐작한 어느 환자가 연락처를 알아내서는 금전적으로 도와달라며 전화를 건 일 같은 경우였다.

하지만 그 환자의 짐작과 달리 오 목사는 교인 수가 열 손가락으로 금방 헤아릴 수 있는 정도의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시골 목사였다. 그나마도 현재는 은퇴한 지 3년이나 된 처지이다.

▲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찬양단을 이끌며 지휘하는 오진광 목사.

그동안은 노회와 교회의 배려로 현역시절 시무한 마치교회에 남아있을 수 있었지만, 약속한 기한이 다해 이젠 정말로 강단을 떠나야 한다. 게다가 지난 연말 늑막염으로 입원하던 중에도 무리하며 설교와 봉사를 계속했던 게 다시 탈이나, 요즘 몇 주는 꼼짝 못하고 병치레를 했다.

오진광 목사의 회복과 재회를 병원 관계자들 역시 고대하고 있다. 호박죽 봉사뿐만 아니라 호스피스 사역에도 누구보다 열심이고, 예전 고등학교 음악교사 시절의 경력을 살려 자원봉사자 찬양단의 지휘도 맡는 등 병원 내에서 오 목사의 활약은 가히 전방위적이었다. 심지어 없는 살림을 쪼개 올해에만도 두 차례나 후원금을 기부한 고마운 존재이다.

때문에 지난 5월 예수병원 호스피스 창립 38주년 기념예배에서 오진광 목사가 전한 설교를 아직도 예수병원 식구들은 생생히 기억한다.

“봉사는 헌신의 각오와 사랑의 수고를 쉬지 않는, 변함없고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있는 분들을 정성 다해 소중히 보살피며, 함께 아픔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봉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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