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 교수(총신대·역사신학)

진실한 합법적 맹세여야 한다

 

기독교인이 걸릴 수 있는 영적 질병은 무엇일까? 아니, 거짓되고 병든 기독교인의 증상은 무엇일까? 참된 기독교인과 거짓된 기독교인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수학의 방정식처럼 풀 수 있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2000년 동안 교회 역사를 통해 보면, 항상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거짓 신앙의 모습이 있는데 그것은 ‘교만’이다. 이것은 심정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겉으로 들어난 행위로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기도 하지만 혼동되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신학적으로 말하면, 분명해지는데 바로 ‘단성론’이란 병균이다. 단성론이란 그리스도의 신성 또는 인성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기독신문> 2016년 5월 9일자). 이 이단성이 등장하는 형태에 대해 ‘칼케돈신조’(451년)는 이미 잘 밝히고 있다.

그 신조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와 교훈은 이러하다. 세상에서 기독교인의 삶이 혼동, 변화, 섞임 또는 혼합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과 경고이다. 이 의미는 기독교인이 하나님께서 주신 혜택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교통위반을 했는데 경찰관에게 “내가 누군지 아냐? 난 ○○ 사람이야!”라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직위를 이용해 특권을 남용한 것이다. 교통위반을 했다면 특권을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잘못을 인정하고 벌금을 낸다면 떳떳할 것이다. 이렇듯 무슨 직함이 그의 인격을 대변하는 줄 알고 착각하는 자가 있다면 단성론자라 규정할 수 있다.

신조는 우리의 구체적인 많은 경우에 대한 교훈적 요약이다. 단순한 이론상의 이단성이 아니라 실제로 교리를 삶에 적용하면 정말 이해하기 쉽다. 아무튼 거짓되고 외식적인 기독교인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교리를 통해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다른 편에서 보면, 부족해서 이런 행위를 자행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 판단 기준이 될 순 없다. 10계명의 3계명은 방금 앞에서 실례를 들어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표명하려는 행위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3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이렇다. 저주, 거짓 맹세, 불필요한 맹세 등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을 떠올리면 이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우리의 침묵과 묵인으로 무서운 죄의 참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어려움과 곤경에 처해 있는데 레위지파나 제사장처럼 무시하고 지나친다면, 3계명을 어긴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과 존경 외에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분을 두려워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 책임과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가 올바로 고백하고 경배하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모든 말과 행위로 영광 돌리기를 원하심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99문). 이런 자들에 대해 하나님은 죄 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죽음의 형벌을 받을 것이라 엄히 경고한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100문).

맹세나 서원을 금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55문). 또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대해 투덜대고 언쟁하는 것, 호기심을 가지고 꼬치꼬치 캐묻는 것과 잘못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신다. 뿐만 아니라 말씀 또는 그 말씀의 어떤 부분이라도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왜곡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113문).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의 계명은 순종에 있지 자신의 형편을 핑계대면서 요령과 재간으로 회피하려고 언쟁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맹세나 서원도 하지 말아야 하나? 그렇지 않다. 세례식, 결혼식, 임직식 등에서 기독교인은 맹세한다. 단 합법적 맹세이어야 한다. 그 맹세로 심정 또는 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진실함을 나타낸다. 동시에 만일 어기거나 거짓이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102문). 영이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속이는 경우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처럼 죽음을 예상해야 한다.

이것을 의미하는 질문은 이렇게 나타난다. “3계명에 부속된 이유는?” 그분의 속성에 대해 함부로 업신여겨 행동하는 것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지금 당장 하나님께 벌을 받지 않았다고 경거망동하는 행동은 금물이다. 이것을 성경에선 ‘오만’이라고 규명한다. 맹세나 서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런 의미로 자신의 인격으로 자신의 진실성을 나타내지 않고 자신의 지위나 신분으로 그것도 교회의 직책을 이용하여 함부로 자신의 진실성을 증명하려 한다면, 3계명을 어기는 것이고 이것에 대한 처벌은 처절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장소, 순간, 대상에서든 그것에 알맞은 행동을 행해야지 자신의 신분이나 직위를 이용해서 함부로 행동하는 자는 3계명을 범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자는 신학적으로 단성론자이다. 늘 겸손하게 어떤 자세로 행동할 것인지 알지 못하는 자이므로 미련한 자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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