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훈 목사(익산 고현교회)

먼저 ‘오직 하나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도우심 구할 때 강력하게 쓰임받아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후 12:5)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우리에게 있는 고정관념이 많이 깨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은 약한 자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27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여기 ‘택하사’라는 말씀은 ‘주님이 고의적으로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약한 자를 고의적으로 택하여 쓰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능력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제일 좋은 사람은 인간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가망성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약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바 되면 쓰임 받지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 여러분도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1. 자신의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로마서를 보면 ‘우리 인간은 완전한 죄인이다. 따라서 소망이 없는 존재다’라고 우리의 자아를 초토화시켜버립니다. 다시 말해서 ‘무능한 인간이라는 한계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자각하기 전에는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보면 고난 중에 있는 분들도, 위기 가운데 빠져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과 위기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은 굉장히 겸손해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그런 위기를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능력으로 채우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어떤 면에서 자신감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자기 약점을 자꾸 숨기려고 합니다. 약함을 토로하면 아무 것도 자기를 가려줄 수 없고 채워질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약점을 자꾸 숨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버려진 고아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채워주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큰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 구주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내게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를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따라서 내 신앙의 연조가 길지 못해도, 내 경험이 크지 못해도, 내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 해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믿음을 사용하면 태산이라도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한계와 약점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을 위해 나아가는 첫 번째 발걸음입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8~9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에게 심각한 고난이 임하도록 하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난이 임할 때 무조건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대부분 언제 기도하게 됩니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을 의지할 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는 게을러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말고 다른 것을 믿는 교만함이 있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는 마음이 제일 좋은 마음인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상한 심령이란 주님 외에는 채워지지 않는 심령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이런 상한 심령을 가장 기뻐하실까요? 상한 심령을 가져야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수 있는 자세, 기도할 수 있는 환경,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 최고의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도 바울은 이렇게 소리치며 말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다!” 모든 연약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해서, 약하지만 강하게 쓰임 받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대부분 강하다는 사람들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독선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을 무시하고, 남들과 협력하려고 하지 않고 “나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다, 나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약한 자를 통해서 주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의 약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약함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손을 잡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이런 약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루어 가는 것이 바로 교회공동체인 것입니다. 약한 자 위에 주님의 능력이 부어질 때 얼마나 큰일을 하게 되는가를 경험하고 깨닫는 것이 바로 교회공동체입니다. 그런 동역의 능력과 기쁨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독교의 뿌리를 이루는 두 가지 중요한 고백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고백과, 사도행전 14장 14~15절의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는 고백입니다.

이 두 고백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연약함을 토로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만이 최고라는 고백 위에서, 그들은 가장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 앞에서 쓰임 받기 위해서 이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연약한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약함 중에 주님으로부터 강력하게 쓰임을 받읍시다. 내 주변의 연약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는 저들도 능력 있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협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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