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주필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된 장수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리학적 명분사회였기 때문이다. 덕치를 우선하는 성리학적 통치철학이 조선왕조 500년을 지속시킨 힘이었다. 법치의 패도정치가 강제적인 법의 집행에 의지하는 것이라면 덕치의 왕도정치는 인간의 자율성에 크게 의지하는 정치였다.

덕치로서 백성을 포용하려는 조선왕조는 인간화 작업을 소중히 여겼다. 바로 이 인간화 작업의 모범 인간형이 학예일치의 사람이었다. 즉 학문과 예술을 겸비한 이상적 인간을 지도자로 설정하였던 것이다. 조선사회는 학문으로 문장, 역사, 철학을 필수로 이성훈련을 받게 하였다. 문(文) 사(史) 철(哲)로 이성훈련을 체득케 한 후 감성 훈련을 병행시켰는데, 이것이 시(詩) 서(書) 화(畵)였다. 즉 저들은 시를 쓰고 서도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감성훈련을 받게 하여 이성과 감성이 조화 된 학예일치의 이상적 인간화 작업을 하였던 것이다.

조선왕조의 인간화 작업이 탄생시킨 이상적 인간형이 선비이다. 지금도 조선 지식인 하면 우리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선비이다. 선비 하면 올곧은 지식인이 떠오른다. 선비는 꼿꼿한 지조를 지닌 강인한 사람이었기에 선비의 이러한 기개를 사기라고 했다. 즉 죽음도 불사하던 불굴의 정신력과 항상 청정한 마음가짐으로 특징지워진 것이 조선의 올곧은 선비상이었다.

이 선비들은 공맹의 도리를 배우면서 공맹의 도리 실천을 삶의 덕목으로 삼았다. 주전공인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하는 학인, 즉 배우는 자인 선비(士)의 단계에서 수기(修己) 즉 자신의 인격과 학문을 닦음으로 치인(治人) 곧 남을 다스리는 대부(大夫)의 단계로 나아가 학자 관료인 사대부(士大夫)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이들이 구성한 사회가 선비의 복수개념인 사림(士林)이었다. 문사철의 전공필수과목을 체득하고 시서화의 교양필수과목을 체질화함으로서 이성과 감성이 잘 조화 된 인간, 바로 이들이 조선왕조가 추구한 이상형 인간인 선비였던 것이다. 바로 이 두 가지를 잘 조화시킨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중용적 인성론이다.

사실 오늘 우리들이 잘 못 이해한 선비상 가운데 꼬장꼬장하고 깐깐한 사람 혹은 꽁생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선이 패망하던 시절의 망국 지식인이 된 편향적 지식인들, 즉 자신감을 상실한 선비들 때문에 생긴 오해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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