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홍 교수(백석대학교)

2016년 8월 중순 북한의 엘리트 외교관 태영호 공사의 한국행은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소식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태영호 공사의 망명 소식은 기대보다는 빠르게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10일 전 언론의 열기가 상당히 뜨거웠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을 날씨처럼 내려가 있다. 시간을 갖고 차분히 생각할수록 그렇게 호들갑을 떨 문제가 아니라는 언론의 인식 때문일 것이다. 한국 정부는 자신들의 대북 제재정책이 어느 정도 결실로 나타나기를 기대하겠지만, 과거의 예를 보면서 조심스러운 분석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사실 북한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늘 기대 쪽에 기울인 적이 많아 정확한 소식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북한문제에 있어 언론은 마치 추리소설을 쓰는 것처럼 첩보영화 수준의 추측기사를 어쩔 수 없이 내보게 된다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정부와 언론은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소식을 전하는 것이 요구되는데, 아는 것만큼만 쓰고 말해야 할 것이다.

태영호 공사의 한국행은 많은 추측성 이야기들이 있지만, 왜 그가 망명길에 올랐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소식은 인터넷을 뒤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정보기관의 나름의 속사정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태영호 공사 자신의 이야기가 보이지 않음이 아쉽다. 있다면 그를 둘러싼 제 삼자의 소식이다.

한 예로 주 북한 영국 대사의 발언이 태영호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 주재 영국 대사였던 데이비드 슬린은 작년 2015년 11월 태공사와의 대화를 소개했다.

“10년 전 평양에서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태 공사는 예의 바른 전형적인 외교관이지만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맹목적이었고 영국에 대해선 비난만 했었는데, 이번에 만나니 영국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자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영국 교육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태 공사가 2016년 북한에 복귀하면 어떻게 될 거냐고 물었을 때, “나도 내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그건 부서에서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답했다 한다.

BBC 전 서울 특파원 스티브 에반스는 태 공사가 “서울에서의 삶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서울은 엄청나게 번잡한 도시로서 평양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답했다 한다.

당시 태 공사는 마치 영국 사람처럼 보였으며, 영국 중산층처럼 보였고, 보수적이고 도시 교외의 생활방식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에반스는 말했다. 두 영국인의 태 공사를 향한 발언은 왜 그가 북한을 버리고 한국을 택했는지를 추측하게 한다.

첫째, 북한 복귀 후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태 공사에게는 있었다. 특히 김정은의 포악정치가 자신의 미래를 향해 두려움을 갖게 했다.

둘째, 영국 교육의 탁월성을 경험한 아버지로서 자녀 교육을 위한 한국 부모의 마음이 충분히 작용했다. 특히 최근 북한에서 일어나는 사교육 열기가 태 공사에게도 역시 예외적이지 않았다.

셋째, 한국에서의 삶이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보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그는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특히 영국의 높은 삶의 질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북한 복귀 후 전개될 삶을 상상할 때이다.

그들의 조국이 비록 가난할지라도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었겠지만, 가난한데다 미래가 안 보이고 게다가 두렵고 무섭다면 어찌 다시 돌아갈 수 있었겠는가.

이를 향한 북한 정권의 태도는 더욱 강경일변도로 나갈 수 있겠지만, 그러한 조치가 해답이 아님을 안다면,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구사할 것으로 추측이 된다. 또한 이러한 북한의 현실을 바라보며 한국교회가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북한이 스스로 변화의 길을 택할 수 있도록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비록 내일 북한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오늘 한국교회는 통일한국을 위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