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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교회를 위한 헌장, 레위기 제대로 읽기 (11) 성전의 오염과 속죄제의 기능

그리스도의 피만이 성전된 성도의 죄를 사한다

구약, 성전과 백성 양자가 언약의 피로 결속 …
신약, 그리스도 통해 두 실체가 통합 ‘백성이 곧 성전’

요아킴은 몇 달 전 실수로 ‘무심코’ 안식일을 범한 뒤 하나님께 속죄제를 바쳐 용서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 비고의적으로 계명을 위반한 경우 속죄제가 요구되었다. 하지만 만일 그가 고의적으로 안식일을 범했다면 그는 즉각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투석형의 사형을 당했을 것이다. 이런 극악한 반역죄는 사형이 원칙이었던 것이다.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요아킴은 먼 여행길에서 마을로 돌아와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성전으로 속죄제 암양을 가지고 올라갔다. 그는 레위기 4장에 나온 속죄제 절차대로 암양을 정성스럽게 바쳤다. 우리가 이미 제 <7편>의 글의 도표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사장과 회중은 수소를, 백성의 지도자는 숫염소를 바치나 평신도는 암양이나 암염소를 바쳤던 것이다.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요아킴은 규정을 따라 양의 머리에 안수했으며 더불어 자신이 안식일을 무심코 범해 계명을 위반했다고 죄를 고백했다. 이때 요아킴의 죄는 안수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암양에게 전가되었다. 그 후 요아킴은 암양의 목을 땄다. 피가 목에서 뿜어 나오자 옆에서 거들던 레위인이 양푼으로 피를 받았다. 양이 요아킴 자신의 죄 값을 대신 치르고 피를 흘려 죽은 것이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바 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비고의적’ 계명 위반을 위한 속죄제를 규정하는 레위기 4장에는 ‘자백’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으므로 ‘비고의적’ 죄의 경우 자백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레위기 5장의 네 가지 범죄 사례는 약간의 ‘고의성’이 있는 것들로서 이 때는 명시적으로 ‘자백’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즉 비고의적인 죄는 ‘자백’이 불필요했고 고의적인 죄만 그것이 요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요아킴의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레위기 4장에서 자백 없는 속죄제가 과연 가능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다.

제의 본문들에서는 흔하게 특정한 행위들이 언급되지 않고 생략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런 절차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단정지어선 안된다. 그 절차가 자명하거나 당연시 되는 경우 언급이 불필요해서 간략하게 기록할 뿐이다. 예를 들어 여러 번제와 속죄제 사례들에서 ‘안수’가 생략되어 있으며(예 레 5장, 9장, 10장), 남은 고기와 잔존물의 뒤처리 또한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발 달린 짐승의 제사에서 ‘안수’는 필수적이고 남은 고기와 잔존물의 뒤처리 또한 레위기 1~7장에 나온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만 한다. 자백의 요구가 레위기 5장에만 나오나, 정황상 그리고 정서적으로 무심코 지은 죄를 위해 속죄제를 드린 현장에서 죄가 자백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유를 들자면, 만일 어떤 운전자가 운전 중에 무심코 중앙선을 침범했는데 교통경찰에게 현장에서 적발되었다면, 그는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명하면서도 즉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할 것이다. 이때 위반은 위반이므로 교통경찰은 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속죄제의 특이한 피뿌리기와 성전의 오염

속죄제 암양의 피가 담긴 양푼을 건네받은 제사장은 번제단 위로 올라가 양푼에 손가락을 담궈 피를 묻힌 뒤 제단 네 뿔에 한번 씩 네 차례 발랐다(레 4:25, 30). 그리고 많은 남은 피를 모두 제단 밑에 쏟았다. 제사장과 회중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내성소 안으로 들어가 손가락에 피를 묻혀 거기 놓인 향단 주변에 일곱 차례 뿌린 뒤 이어서 다시 손가락에 피를 묻혀 향단 뿔 네 개에 피를 발랐다. 역시 남은 피는 다시 마당으로 들고 나와 번제단 밑에 쏟아서 처리했다. 이때 주목해야할 것은 속죄제의 피 뿌리기와 피 바르기는 속죄제에서만 시행하는 특유의 피 의례라는 것이다. 이때 이렇게 피를 뿌리고 바른 다음에 나타나는 효과는 제단의 씻음, 즉 제단 정화였다. 이 또한 레위기 4~5장의 속죄일 규정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속죄제 본문인 레위기 8장 15절과 16장 19절에서 분명하게 증거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제단이나 향단이 이미 오염된 상태에 놓여 있었기에 속죄제의 피가 그것들을 씻어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제단과 향단을 비롯한 성전의 기물과 아마 나아가 성전 자체가 더럽혀져 있는가?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인간의 죄와 부정결이 그렇게 성전의 오염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 군데의 추가적 증거를 통해 뒷받침된다. 첫째, 레위기 20장 1~2절은 몰렉신에게 자녀를 바치면 그것이 성전 오염을 발생시킨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은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한다. 둘째, 레위기 15장 31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부정결이 하나님의 성막을 더럽힌다고 진술한다. 셋째, 민수기 19장 20절은 만일 사람이 부정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깨끗하게 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규정 위반, 곧 심각한 범죄 행위가 되어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히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한다. 어떤 학자는 인간의 죄/부정결이 멀리 놓여 있는 성전을 ‘원거리 오염’시킨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증거들을 토대로 우리는 인간의 죄와 부정결이 성전을 ‘원거리 오염’시키는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인간에게 뿌려지지 않는 희생 짐승의 피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이상한 의문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약 어디를 보아도 희생으로 바쳐진 짐승의 피가 인간에게 뿌려지는 법이 없다. 단 한번 예외가 있는데 바로 출애굽기 24장의 시내산 언약에서 짐승을 바칠 때다. 그 외 두 번의 사례에서 짐승의 피의 극히 미량을 손가락으로 제사자의 오른쪽 신체 말단, 즉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발가락, 그리고 귓불에 바른다. 제사장 위임식(레 8장)과 나병 환자의 복귀 의례(레 14장)에서다. 그러나 이것이 피가 원래는 인간에게 발라진다는 희미한 암시일 수도 있지만, 자명한 증거는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출애굽기 24장이다. 시내산 언약에 대한 출애굽기 24장은 곧이어 설명할 것이다.

어쨌든 모든 제사들, 심지어 죄를 위한 제사인 속죄제와 속건제에서도 그 짐승의 피를 죄인에게 뿌리는 법이 없다. 이것은 신약의 증거와 분명히 상충된다. 신약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신자들에게 뿌려지고 신자들의 옷에 뿌려져 신자들의 죄를 깨끗케 하고 그들을 희게 한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벧전 1:2; 히 10:22; 계 7:14). 도리어 구약의 제사들에서 피는 주로 ‘제단 벽’에 끼얹어 뿌려진다. 속죄제의 경우에는 제단 벽에 끼얹는 대신 ‘제단’이나 ‘향단,’ 일년 한 차례 속죄일에는 지성소 내의 법궤 뚜껑 부분인 ‘속죄소’에 손가락으로 피가 뿌려지고 발라질 뿐이다. 이렇게 제단과 성전에 피가 뿌려진 뒤 놀랍게도 제사자를 향해 ‘죄사함’과 ‘정결함’이 선언된다. 결론적으로 속죄제의 절차들과 그에 따른 속죄제의 속죄 메커니즘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죄인이 짐승의 머리에 안수할 때 자백과 더불어 죄가 짐승에게 넘어간다.
2. 짐승이 도살될 때 그 짐승이 죄값을 치르고 피를 흘리고 죽는다.
3. 제사장이 피를 성전의 기물(제단이나 향단)에 뿌리고 바른다.
4. 이때 기물과 성전이 깨끗이 청소된다.
5. 피를 통해 기물의 오염이 흡수되어 짐승의 고기로 넘어온다.
6. 속죄제 짐승의 고기에는 제사자의 죄와 성전의 오염이 옮겨져 있다.
7. 오염되어 있는 짐승의 고기를 태우거나 제사장이 먹어서 처리한다.
8. 오염이 심한 고기는 진밖의 재버리는 곳에서 태워서 없앴다.
9. 오염이 경미한 고기는 먹을만 했기에 하나님이 먹도록 조치했다.
10. 최종적으로 속죄가 성취되고 죄사함이 선언된다.

 
우리는 앞선 글에서 속죄제가 ‘태우는 속죄제’와 ‘먹는 속죄제’ 두 종류로 나뉜다는 것을 살펴본 바 있다. 요약하자면 제사장과 회중을 위해 바친 수소의 속죄제는 그 신분의 위상으로 인해 죄로 인한 오염도가 높아 먹을 수 없었으며 반드시 진 밖으로 반출시켜 태웠다. 그러나 일반 평민을 위한 속죄제의 짐승은 오염도가 낮아 먹을만 했기에 일종의 제사장 수고비로 건네져 그들이 먹었다. 이렇게 태우거나 먹을 때 고기에 묻어 있던 ‘죄’가 완전히 말살되는 것은 물론이다. 어쨌든 위의 10가지 절차를 거친 속죄의 메커니즘을 볼 때 피가 인간에게 뿌려지지 않고 성전의 기물들에 뿌려진 뒤 인간이 속죄를 얻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피가 제단에 뿌려져 정화될 때 인간이 죄로부터 깨끗케 된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구약에서는 성전과 성전의 기물이 청소되면 인간이 속죄가 되어 죄사함을 얻게 될까? 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지만, 필자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문이었다. 필자는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출애굽기 24장에서 발견하였으며 이것은 신구약의 구속사의 흐름과 성전과 교회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새롭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피로 범벅된 시내산 언약: 출애굽기 24장

출애굽기 24장은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시킨 백성과 ‘시내산 언약’을 맺는 장면이다. 이때 시내산은 하나님께서 정상에 임재하고 계신 거대한 ‘성전’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막/성전이 마당, 내성소, 지성소로 삼중 구분되어 있듯이 시내산 또한 경계선이 삼중 구분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백성들은 멀리 산 아래에 배치하고 백성의 대표들인 70장로들 및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중간에 자리잡게 하셨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 앞에 가장 가까이 나아오도록 하셨다. 이때 시내산은 삼중 구분되어 모세는 지성소 진입이 가능했던 대제사장과 같았고 백성의 대표들은 내성소에 출입했던 제사장들과 비교된다. 일반 백성들은 마치 마당까지만 진입하는 것처럼 산 아래 서 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번제와 화목제를 위한 ‘소들’을 준비하게 하신다. 한글개역성경은 ‘소’지만 히브리어는 ‘소들’이다. 몇 마리였을까? 추측컨대 아마 지파별로 열 두 기둥을 증거석으로 세웠던 것으로 보아(4절) 번제용 소 12마리와 화목제용 소 12마리, 도합 24마리의 소가 각 지파에서 각출되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소가 번제와 화목제용으로 두 마리가 아니라 매우 많았다는 것은 여러 양푼이 사용되어 피를 받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6절). 만일 이 추론이 옳다면 피의 양은 엄청났을 것이다. 모세는 먼저 12마리 분량의 소 피를 제단에 뿌렸다(6절). 이어서 모세는 ‘언약서’(출 21~23장에 선포된 율법들)를 낭독하고 백성들은 ‘말씀을 준행하겠습니다’고 다짐한다(7절). 그런 다음 모세는 나머지 12마리 분량의 소 피를 백성들에게 뿌린다(8절). 이때 백성들이란 백성의 대표들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모세가 선언한다. ‘이것은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8절).

바로 이 시내산 언약식 장면에서 유일하게 짐승의 피가 인간에게 뿌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피다. 제단은 성소를 대표하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비롯한 장로들은 백성을 대표한다. 막대한 피가 제단과 백성 양쪽에 뿌려지고 중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다. 성전을 대표하는 제단도 백성의 대표들도 피로 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즉 성전과 백성 양자 모두가 피로 흠뻑 적셔졌다. 이로써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언약이 체결되었다. 이때 피로 양자가 언약적 관계로 결속되었다. 양자는 뗄 수 없는 관계인 연합체가 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백성이 죄를 짓거나 부정을 타면 성전이 더럽혀졌다. 반대로 바로 이러한 이유로 더럽혀진 성전에 속죄제 짐승의 피를 뿌리면 성전이 깨끗케 되었고 이때 백성이 동시에 깨끗케 되었다. 요컨대, 오염력은 백성으로부터 성전으로 작용하였고 정화력은 반대로 성전으로부터 백성에게로 발효되면서 유기적 관계로 연결된 두 실체 사이에서 일종의 선순환이 발생했다.

이제 백성이 곧 성전, 성전이 곧 백성

구약에서는 성전과 백성이 별개의 실체로 존재하면서 양자가 언약의 피로 결속되어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통해 두 실체가 하나로 통합되었다. 건물 성전은 폐하여지고 이제 사람 성전 시대가 왔다. 곧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가 성전이다. 더 이상 성전 따로 백성 따로가 아니다. 백성이 곧 성전이고 성전이 곧 백성이다. 따라서 백성들을 위해 뿌려진 그리스도의 피는 곧 성전에 뿌려진 피가 된다. 이로써 앞서 제기한 수수께끼가 풀린다.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빵에 이어 잔을 나누신 뒤 모세가 ‘이것은 언약의 피다’고 하신 것과 똑같이 ‘이것은 곧 나의 언약의 피다’라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지닌 중대한 교회론 의미와 목회적 의의는 다음 호에서 추가로 설명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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