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립 110주년을 맞은 고현교회 가족들이 케이크 커팅식을 하고 있다.

고현교회, 작은교회 돌봄·이웃돕기는 당연한 ‘몫’
보수 터전 위에 변화·혁신 받아드려 부흥 도모해

첫째에게는 늘 부담이 따른다. 집안의 대표로서 모두의 주목과 기대를 받으며,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사가 된다. 그 만큼 책임감과 사명감을 견뎌내어야 하고, 잠시라도 방심할라치면 매서운 질타가 뒤따른다. ‘맏이가 되어서 어찌!’

▲ 고현교회 청년들이 제작한 역사 발자취 흐름도가 예배당 벽면을 장식한 모습.

고현교회(최창훈 목사)가 익산지역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이와 비슷하다. 오덕근 김자윤씨 등이 하위렴 선교사의 지도로 1906년 6월 1일 익산 시내권에서는 최초로 교회를 설립하면서 ‘첫째’는 마치 숙명처럼 따라오게 된 짐이나 마찬가지이다. 좋은 일도, 궂은 일도 고현교회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금세 솜리 전체에 널리 회자가 됐다.

그럼에도 고현교회는 그 부담을 기꺼이 감내하며 110주년 세월을 훌륭하게 버텨왔다. 이리제일교회와 신광교회를 비롯한 수많은 지역교회들의 모태가 됐고, 독립운동가로도 널리 알려진 박연세 목사 시무 중에는 경신학교를 설립해 민족의 독립을 꿈꾸는 젊은 인재들을 길러냈다.

일제치하에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경신학교가 폐쇄되는 수난을 당했고, 6·25 당시에는 전쟁 중에 예배당이 파괴되는 바람에 당시 교회를 담임하던 도양술 목사의 사택에서 예배하며 복구 작업을 벌이는 고통도 겪었다. 이처럼 격동기마다 먼저 나서서 대표로 매를 맞는 모습으로 고현교회는 ‘첫째’ 타이틀에 걸맞은 의연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1990년대는 고현교회의 사역 지경이 크게 확대되는 시기였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교회들일수록 대체로 보수적이고 수세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반해, 고현교회는 역으로 먼저 변화와 혁신을 받아들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취했다.

제17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최창훈 목사는 그 선봉에 있었다. ‘전진 그리고 또 전진’이라는 표어 아래 제자훈련 시스템을 도입하고,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국내외 곳곳에서 전방위적인 사역을 펼쳤다. 맏이로서 작은 교회들을 돌보고, 이웃돕기와 장학사업을 펼치는데 앞장섰다.

특히 당회원 의료인들 청년들을 중심으로 해외선교팀과 에벤에셀찬양선교단을 조직하여 첫해 필리핀을 시작으로 해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섬기는 사역은 올해까지 22회나 이어졌다. 그 사이에 최종호(인도) 채종석(캄보디아) 선교사 등 헌신된 일꾼들을 배출해 파송하기도 했다.

▲ 감사의 찬양을 올리며 교회의 생일을 축하하는 고현교회 어린이들.

올해 들어 고현교회는 뜻 깊은 행사들로 설립 11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6월 5일 거행된 감사예배를 시작으로 역사사진전, 찬양제, 한마당대회 등이 잇달아 열렸으며, 전교인들의 참여로 캄보디아 선교지에 축구화보내기 운동이 펼쳐졌다. 10월 중에는 한 뿌리를 가진 교회들을 초청해 금마축구공원에서 축구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110년사 발간작업에도 곧 착수한다.

또한 교회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다음세대들이 공유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차세대교육팀을 중심으로 다양한 캠페인과 이벤트를 전개한다. 그 결실이 학생들 스스로 제작한 교회 발자취 흐름도나 포스터 엽서게시판 등의 형태로 교회당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두 날개 훈련을 중심으로 교리교육 성경통독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접목해 성도들을 양육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각기 다른 정서와 문화를 가진 세대들을 적절한 방식으로 세우고, 서로 조화시켜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최창훈 목사가 여전히 고민하고 도전하는 숙제이다.

“평신도를 깨워 동역하는 교회, 선교명령을 순종하는 교회, 천국일꾼을 양성하는 교회, 지역사회에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라는 비전은 저희 세대 뿐 아니라 다음세대에도 계승할 사명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방랑자가 아닌 순례자로 세상을 살아가며, 공동체의 비전에 동참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혼신을 다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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