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홍 목사(서문교회)

영화 <암살>에서 약산 김원봉이 백범 김구를 만났다. 임시정부의 공간이 좁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고 백범이 소개한다. 이 장면은 1919년에 시작된 실존한 역사의 현장이다. 박 대통령은 회한이 가득 찬 민족의 이런 역사적 현장을 지난 광복절에 부정했다. “건국 68주년”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1948에 건국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1919년 3·1 독립운동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시점을 건국으로 알고 있다. 이 사실은 헌법에도 명시되었고 역사학계에서도 이의가 없는 정설이다. 이런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대통령이 나서서 정면으로 부정하는 데는 저의가 있을 것이다. 이날 대통령이 안중근 장군의 죽음을 하얼빈이라고 한 것은 무지에 의한 실수지만, 건국절 발언은 모종의 음모가 숨어있는 의도적인 행위다.

좋게 말하면 소신발언, 나쁘게 말하면 헌법을 유린하고 역사를 왜곡시키는 폭거다. 지난 정부부터 뉴라이트 집단의 건국절 이론을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이 계획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최근 우리 교단은 주기철 목사의 명예 회복을 위한 의미 있는 일을 했다. 늦었지만 77년 만에 주기철 목사의 ‘파직무효 및 복권’을 결의했다. 신사참배거부는 올곧은 신앙인의 당연한 행위였지만 결국 항일투쟁으로 연결되었다. 국가에서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그만큼 그분의 순교는 우리에게 울림이 큰 사건이다. 3·1 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개신교인이라는 것도 우리 한국교회의 긍지였다.

그러나 1948년에 건국절이 되면 이런 영예롭고 감격스러운 한국교회의 희생과 순교가 일거에 무시되고 소멸되는 것이다. 이승만이 앞장서서 항일 독립투사들을 외면했고 친일파를 처결하려는 반민특위를 무력화시켰다. 미 군정과 손잡고 45년 해방에서 48년까지 3년 어간에 친일분자 아니 민족반역자들을 대거 발탁해서 정부를 수립했다. 따라서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바꾸면 당시의 수많은 친일파들이 일거에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가 되는 것이다. 즉 신분세탁을 하게 된다. 이런 속내를 가볍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슬쩍슬쩍 분위기를 탐색중인 박 대통령을 쉽게 보면 안 된다. 힘만 주어지면 당연히 헌법을 고치고 친일분자들을 건국의 공로자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로부터 1차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굽히지 아니하고 또다시 이런 반헌법적이고 반역사적인 속마음을 보였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그분을 추종하는 것과 반민족적 반역사적인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달라야한다. 이승만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연설에서 “대한민국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취임 후 정부의 관보와 공식문서에도 1919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썼다. 이승만을 정녕 존중한다면 이런 반이승만적인 행위도 거둬야 한다.

뉴라이트 인사 중에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우리를 근대화시켰다는 비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자들도 있다. 이들은 1919년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항일 독립운동을 무시한다. 결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경제 대통령 박정희로 이어지고 친일 행적은 사라지게 된다.

더욱 기막힌 일은 1948년을 건국일로 하면 대한민국은 38선 이남만을 영토로 북한은 38선 이북을 영토로 정부를 세운 국가가 되는 것이다. 북한을 다른 나라로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1919년을 건국일로 해야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를 무단점거하고 괴뢰정부를 세운 이적단체가 된다. 이렇게 해야 우리는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우고 통일 과업을 성취 할 수 있다. 결국 1948년 건국절 주장은 평화통일의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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