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목사(동산교회)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21세기에 펼쳐질 새로운 프로페셔널리즘의 시대를 예견하면서 프로페셔널의 네 가지 조건으로 선견력, 구상력, 토론력, 적응력을 제시하였다. 복잡·다변화 하는 오늘의 사회나 교계에서 중요한 한 초점은 프로페셔널한 사람이며, 그런 면에서 ‘인사가 곧 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것은 결국 적절한 인재(人材)가 어떻게 최적의 자리에서 전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효과적인 능력을 발휘할 것이며, 그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열정과 더불어 전문성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인사는 인맥 관리의 수단이거나 낙하산이 될 수 없다. 부적절한 사람이, 전문성도 없이, 불합당한 자리에 머물러있는 것만큼 마이너스는 없다.

우리에게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은 세 가지 특징을 요구한다. 첫째는 정체성의 확인과 분화(分化)로서 시대적 요구를 소명적 한계와 더불어 분별하는 것이다. 둘째는 다양한 상식과 관심보다는 필요한 부분에 대해 가지는 집중력과 깊이와 정교함이다.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지만, 선한 디테일에는 성경도 당위성을 부여한다. 셋째는 예측성이다. 미래를 보는 만큼 승자가 되고, 이런 예측성이 없으면 오늘의 최고(最高)도 내일 시대의 루저가 되고 만다. 이 프로페셔널리즘은 장인주의(expertism)나 직업주의(vocationalism)와는 의미상 구별된다. 그런 것들이 있어도 만약 프로페셔널리즘이 없으면 기능적 수준과 경제적 활동에 머무른다.

교회의 프로페셔널리즘은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과 더불어 생각 되어야 한다. 그것은 교회의 세속화와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리액션으로 나왔다. 프로테스탄티즘이 없는 프로페셔널리즘은 관료주의나 독선주의로 흐른다. 개혁자들이 외친 ‘만인제사장주의’도 신앙적 프로페셔널리즘을 포괄하고 있다. 최고의 프로페셔널리스트였던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지금도 읽는 이들의 탄복을 자아낸다. 언제나 이런 리더들이 있는 시대는 무엇인가를 해내고, 그렇지 못한 시대는 위기를 맞는다. ‘20명이 80명을 살린다’거나 ‘한 사람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 기업인의 말은 과장성과 사실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교회와 교단과 교계는 시대 안에서 사회와 더불어 문화와 상황을 공유한다. 여기에 교회와 사회 간에 보조(步調)와 균형의 유지가 요구된다. 교회는 교인들을 수동적 예배참석자가 아닌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성숙하게 목양하여 나가면서, 그들이 몸담고 겪는 사회적 발전과 심화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교인들은 교회에 와서 예배할 때 교계의 프로페셔널리스트들이 최선을 다하여 마련하고 다져놓은 시스템과 환경의 틀 안에서 풍성하게 은혜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선 찬송가와 성경은 보다 훌륭하고 안정스럽게 정비되고 번역되어 제공되어야 한다. 성경과 찬송가는 그 나라 교계의 예배 경쟁력을 보여준다. 비록 옥의 티라도 문제점이 포함된 채 출간되면 상당 기간 동안 피해는 예배현장에서 그만큼 발생한다. 여기에 이권(利權) 같은 개념은 추호도 발붙일 수 없어야 한다.

제101회 총회에서 허락받기를 기대하는 헌법과 규칙 개정작업도 보다 책임 있게 전문적 역량이 잘 집약됨으로 이전보다 확실히 발전하여 신앙적 의식(意識)과 시대적 법 정신이 조화롭게 구현된 결정판으로 공포될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집단적 포퓰리즘도 그 순조로운 진행을 이유 없이 지연시켜서도 안 된다. 총회정책연구위원회와 총회기구혁신위원회가 함께 상호적으로 협력하며 본질을 향해 발돋움하는 모습은 감사할 일이다. 많은 공청회도 필요하겠지만 아울러 중요한 점은 경륜과 통찰력이 함께하는 전문성이다.

신학교는 목회자 배출을 위한 제도권적 과정으로만 머무르면 안 된다. 배출되는 신학생 한 명 한 명이 시대를 살릴 영적 프로페셔널리스트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끊임없는 개혁신앙적 마인드로 생각하고 연구하며 섬김의 삶과 사역을 통해 세상과 영혼들을 밝히는 지역의 지도적 등불들이 되어야 한다.

총신은 그렇게 하기 위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진리 연구와 나눔의 본산이어야 한다. 총신은 목적으로 존재해야 하고 어떠한 정치적 수단의 현장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 교회와 함께 상회도 더 성숙해져야 하고, 특별히 천서를 받은 총대들도 책임 있는 프로페셔널리스트들이 되어야 한다. 총대들은 효과적으로 의사를 개진할 수 있어야 하고, 총회는 그것들을 수렴해서 교단적 발전에 바르게 기여케 할 수 있도록 모든 제도적, 내용적 준비와 정비에 진지한 성의를 기울여야 한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