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 교수(총신대·역사신학)

보호하시는 약속은 불변하다

 

그리스도는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는 습관을 가지셨다. 그분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도셨다. 특별히 요한복음 17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기도의 내용을 자세히 읽을 수 있다. 그 내용은 사랑하는 제자들, 선택된 자들 그리고 세상을 위한 기도였다. 지금도 우리를 위한 중보의 기도를 어떻게 행하시는지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내용이다. 그분이 육신적으로 떠나는 것은 제자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승천한 후 본래의 직업으로 돌아가거나 유대인들의 시선을 피해 갈릴리로 가곤 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 이 기도 속에 그리스도의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는데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단어는 ‘보전’이란 단어이다.

이단자 아르미니우스파 또는 항의파는 그들의 지도자인 아르미니우스가 죽은 후 10년가량 되었을 때 ‘5개 항목’을 제시하며 자신들의 신조를 요약했다. 그 가운데 5번째 항목은 ‘성도의 견인’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들에 의하면, 지상에서 바른 삶을 사는 것에 따라 선택되든지 그렇지 않은 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구원의 확신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열심히, 최선을 다해 힘껏 노력하고 활동하면 누구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억지 주장이었다. 열심을 내서 살게 하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그릇된 동기 부여는 그릇된 결과를 낳고 만다. 그러면 개혁신학에서는 이것에 관해 어떻게 설명할까?

보존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고,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 변호하거나 대언하고 계신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46, 49문).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크나 큰 위로며 축복이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신 그분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또 삼위일체의 제2위격이신 성자 하나님은 육신적으로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제3위격이신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보존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은 곧 성자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같은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기독신문 2월 15일자 ‘라은성 교수의 쉬운 교리 해설’(5) 참고). 더욱이 재림은 최후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선택된 자에겐 큰 위로가 된다. 모든 저주를 제거하고, 모든 적에게 저주를 내리고, 신부인 성도를 데리러 온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52문).

견인의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변하는 속성이다. 선택한 자들을 끝까지 보존하고 보호하시는 약속은 불변하다. 영원 전에 예정된 것을 취소나 폐지도 없고, 버림이나 감소도 있을 수 없다(<돌드레히트 신조> 1장 11항, 5장 8항). 영원 전에 작정한 것은 영원 후에라도 불변하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은 우리의 믿음의 근거와 소망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확신이 분명하고 확실하지만 그 확신은 신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를 수 있다(<돌드레히트 신조> 5장 9항). 큰 믿음과 작은 믿음이란 의미가 아니라 강화된 믿음의 정도를 의미한다. 그렇다고 견인이 각자의 자유의지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의 정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7장 2항). 왕이신 그리스도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보호한다(기독신문 5월 26일자 ‘라은성 교수의 쉬운 교리 해설’(20) 참고).

견인의 방법은?

견인은 칭의, 양자됨 및 성화와 함께 믿음의 혜택 중 하나이다(<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36문). 하나님의 전적인 믿음을 가진 자는 그분의 보호의 혜택을 받는다. 어떤 경우엔 선택된 자라도 의지가 약해 행하지 못할 수 있고, 갈등할 수도 있고, 범죄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더라도 성령 훼방 죄에 빠지지 않도록 성령 하나님은 그에게 역사하여 보호하신다(<돌드레히트 신조> 5장 6항). 유혹에 넘어지는 이유는 죄의 잔재들이 남아 있어 은혜에 늘 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깨어있기 위해선 하나님의 부성애를 체험해야 한다. 이 사랑을 체험토록 하기 위해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격려, 경고 또는 경계토록 하신다. 이 사랑으로 인해 탕자처럼 언제든 돌아와서 회개하며 은혜에 거하려고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돌드레히트 신조> 5장 5항). 또 칭의를 받은 자들을 지속적으로 용서하며 사유하심을 베푼다. 이것이 신자에게 주어진 큰 혜택인 것이다. 이러는 가운데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즉 인자하심을 깊이 체험하게 이른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쳤다. 마지막 6번째 청원은 시험에 빠지지 않고 악으로부터 건져달라는 내용이다. 이것은 곧 견인을 의미한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127문). 신자들에게 세 부류의 적이 있는데 마귀, 세상 및 육체이다. 이 적들은 끊임없이 신자로 하여금 지상에서 참된 기쁨을 즐기지 못하도록 괴롭힐 것이다. 구원을 취소시키거나 무효화 시키지 못하는 마귀는 우리에게 위협을 가해 구원의 참된 감격을 맛보지 못하도록 다양하게 힘들게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끝까지, 변함없이, 함께 하시며 지키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오늘도 힘차게 일어서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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