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욱 목사(새안양교회)

삶의 이유는 하나님 사랑의 힘 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성도의 재산이며 자랑이 되어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우리의 인생은 사랑이란 단어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풋풋한 첫 사랑의 기억,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던 뜨거운 사랑의 추억,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기억 등 사랑 없이는 인생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빼고 인생을 설명하려고 해도 결국은 분노, 절망, 복수만이 남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들 역시 사랑의 잘못되고 왜곡된 표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사랑 없이는 인생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과 같이 기독교 또한 사랑이란 단어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성경 전체의 공통된 주제는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처럼 성경에서도 사랑을 빼면 그 무엇도 남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구약 전체의 중심 요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의 정도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자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의 독생자보다 이 세상을 더욱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하나님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십니다(God is Love).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사랑이라는 추상적 감정이나 하나의 관념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충만하신 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한 가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랑은 따로 떼어놓으려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는 것은 모두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닌 실제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본문 말씀 첫 머리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7절)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의 간절한 바람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가 살았던 초대교회의 최고의 자산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상상할 수 없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 받은 사랑을 묵상하며 전파하는 곳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9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 죽음에서 살려주신 사랑을 가지고 아직도 죽음의 권세 아래에 있는 영혼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또한 내 옆에 있는 지체는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 얄밉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또한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는데 내가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면 나 또한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사랑은 내가 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10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의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처럼 사랑을 하면 우선순위가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죄인의 모습이었던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우선순위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하는가를 따져보면 내가 무엇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나의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재산이고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이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들어야 하는 최고의 칭찬은 “기독교인들은 하나같이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다”라는 칭찬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십니다. 한센병 환자들의 환부를 빨아 피고름을 짜주었던 손양원 목사님의 모습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됩니다. 사랑을 몸소 실천한 그 모습이 우리에게 큰 감동과 은혜가 됩니다. 더군다나 1948년 여수순천 반란사건 때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던 안재선에 의해서 자신의 두 아들을 동시에 잃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는 안재선에게 복수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참된 사랑은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속사람이 성령으로 변화되고 말씀으로 거듭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야만 온전한 사랑을 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사랑을 한다면 그것을 겉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죽음을 맞이할 때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것은 돈에 대한 욕심도, 외모에 대한 미련도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가족들을 더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 그들을 향해 사랑한다고 한 마디 더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속에만 품고 있으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도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세상의 사랑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사랑은 변하고 떠나고 움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에 대한 반응이므로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에 근본이시니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똑바로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의 존재자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표현할 때 하나님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표현된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그의 삶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한 가지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옛 삶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국에 가는 방법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시작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런데 죄를 깨닫는 사람이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죄를 깨닫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 앞에 드러나면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죄를 씻어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희들에게 임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속히 깨닫고 받아들이라는 구원의 요청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힘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우리는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11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조건 없는 사랑, 끝이 없는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랑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마땅히 기독교인들이 살아야 하는 삶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품고 다른 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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