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지금 한국교회에 그리고 전주에도 메시아닉운동(Messianic Movement)이 침투해 정통교회들이 메시아닉 운동의 영향을 받아 변질되어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연 실색했습니다. 짧은 지면에 메시아닉교회의 주장을 다 반박할 수 없어서 가장 문제시 되는 ‘사도신경’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합니다.

메시아닉교회에서는 의도적으로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채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초대교회, 즉 그들이 말하는 유대적 교회로 돌아가자는 데서 비롯됩니다. 사도행전에 소개된 초대교회는 ‘사도신경’ 없이 예배를 드렸고, 교회는 유대적이었다는 주장입니다. 교회가 언제부터 유대적 뿌리에서 갈라졌는가를 질문하면서, 그 시기를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치세 때였다고 답합니다.

특히 그 배경에는 사도신경과, 니케아신앙고백(A.D 325)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유대교적 뿌리, 메시아닉교회의 신앙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아니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사도신경을 ‘마귀적 고백’으로까지 표현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렇게 사도신경을 부정하는 자체가 이단이요, 마귀적입니다. 사실상 신앙고백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이 물음에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대답합니다. 교회는 이 신앙고백 위에 세워집니다.

초대교회 신앙고백은 세례를 받고자 하는 모든 자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는 데 교회역사가들은 의견을 같이 합니다. 특히 초대교회의 시대에는 여러 이단들의 주장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의 신앙을 유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앙을 분명히 하고, 미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교리적 조항들이 첨가되면서 사도신경은 주후 500년 경에 가서야 우리가 고백했던 것과 같이 성립되었습니다. 그 뒤 1500년이 넘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개신교나 천주교 모두 다 신앙고백으로 사용해왔습니다.

마티 월드만은 메시아닉교회가 주장하는 이중언약 신학에 대해 “이중언약 신학은 유대인들이 예슈아(예수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것이다”고 설명합니다. 메시아닉교회가 사도신경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진정한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되는 신앙고백을 무시하게 하려는 의도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희생을 통한 구원이 복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의 역할만 할 뿐이라고 합니다.

메시아닉교회 지도자인 댄 저스터는 진정한 복음은 우리 안에 대적의 권세에 대항하는 복음으로서 치유와 축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신앙을 반지성적인 것, 비이성적인 것으로 은연 중에 이해하는 풍토가 깔려 있습니다. 자기 편리한대로 믿으려고 하는 미신적, 무속적 신앙도 작용합니다.

이단과 이교의 신앙을 분별하는 사도신경이야말로 우리의 신앙이 느낌으로 가고, 맹목이나 형식·의식으로 가려는 것을 막아 줍니다. 참된 신앙,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반지성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비인격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교회의 역사 속에서 고백하여 드러내는 신앙고백이 사도신경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의 고백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우리 속에 있는 전통주의는 어둠을 몰아내는 정통이 되며, 이 정통의 신앙고백은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살게 할 것입니다. 교회의 교회됨, 바른 신앙의 모습은 사도적 신앙의 계승에 있고, 이 사도적 신앙을 성경에서 요약해 놓은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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