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 목사(안산 섬기는교회)

‘영원’을 선택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거절의 용기가 필요…성령 인도따라 선택해야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5)

인생이란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택의 결과가 오늘의 나이며, 지금의 우리입니다. 방탕한 두 청년이 함께 도박장으로 가다가 길가에 있는 예배당 정문 곁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설교 제목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는 강한 죄 의식과 함께 교회로 가고 싶었습니다. 한 친구가 교회로 가자고 했으나, 다른 친구는 뿌리치고 도박장으로 갔습니다. 그 후 30년이 지났습니다. 감옥에서 신문을 보던 한 친구가 울고 있었습니다. 신문에 실린 기사는 그날 대통령에 취임한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30년 전, 도박장으로 가다가 교회로 간 그 친구였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합니다. 사소한 결정이 운명을 결정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깊이 잘 선택해야 합니다.

거절하는 믿음

모세의 삶을 기록한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믿음의 특징을 거절하는 삶이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24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 많은 것을 누리며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공주 아들이 진정한 자기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으로 애굽의 왕궁에서 사는 것은 히브리인으로서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의 후계자의 자리를 거절했습니다. 보장된 미래와 세상의 성공을 거절한 것입니다. 모세는 심지어 나일강에서 구해 길러준 양어머니의 정까지도 거절하였습니다. 인간의 본능적인 정까지 거절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생활에서 훈련해야 할 것은 바로 거절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과거의 것을 버리지 않는 한 새로운 미래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내가 누리고 취하고 소유할 수 있지만,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구원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버려야 하고 거절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선택의 첫 번째 단계는 거절입니다. 거절을 배우지 않고는 참된 선택을 배울 수 없습니다.

오래 전 유명한 도예가의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습니다. 도예가는 도자기 하나하나를 혼을 다해 빚고 그림을 그린 후 유약을 발라 가마에 굽습니다. 100개를 구우면 90여개를 깨트려버립니다. 기자가 묻습니다. “왜 이리 멀쩡한 도자기를 정성껏 구워서 깨트립니까?” 그는 100개 중에 열 개만 건져도 대단한 성과라고 말합니다. 어떤 때는 100개를 구워 한 개도 못 건지기도 한답니다. 곁에 있던 그의 부인은 남편이 멀쩡한 그릇들을 사정없이 깨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시장에 내어다가 하나라도 팔면 얼마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멀쩡한 도자기를 모조리 깨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남편을 원망합니다.

그 도예가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은 것이 있습니다. 덜 좋은 것을 과감하게 깨버리지 않는 한 가장 좋은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것을 얻기 위해서 덜 좋은 것을 거절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차선은 최선의 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덜 좋은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도 세상의 많은 것들을 누리면서 자랑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가장 먼저 우선순위가 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발견한 후에 그동안 추구했던 모든 가치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하게 여겨진 것입니다. 가치가 없어지고 심지어는 배설물로까지 여겨집니다.(빌 3:7~8)

오늘 내가 놓아야 하고 거절해야 할 것을 붙들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더 놀라운 일을 계획하시는데 놓기를 미루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모세는 믿음으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자기의 사명과 맞지 않는 세상의 신분을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거절할 것을 거절해야 믿음의 사람입니다.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더 좋은 것을 선택

히브리서 11장 25절,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차선을 거절하고 더 좋은 최선을 선택하였습니다. 애굽의 왕궁은 차선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최선이었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왕자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을 잠시 누리는 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세는 권력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물질의 풍요함이 주는 달콤함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이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주의 아들로서 누리는 인생보다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그저 선택하는 것뿐 아니라 더 좋아했습니다.

‘더 좋아하고’의 헬라어 ‘말론 헬로메노스’는 “~보다 ~을 택하다”는 의미로, 모세가 그 일을 판단하여 선택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왕궁에서 일시적인 안락함을 누리는 것보다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일을 더 가치 있게 여긴 것입니다. 모세는 보통사람이 바라볼 수 없었던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본 것입니다. 애굽의 왕궁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었습니다. 진짜 명품을 가진 사람은 짝퉁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진짜 다이아몬드를 가진 사람은 가짜 보석에 조금의 돈도 지불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맛본 사람에게 이 땅의 영광은 조금의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늘의 영광을 체험한 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직도 모르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간곡히 기도합니다.(엡 1:17~19)

바울 사도는 성도들의 마음의 눈과 영을 열어서 우리의 소망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풍성함과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는 이유를 아십니까? 마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를 한 번만이라도 보는 믿음의 단계가 한 단계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미국의 윌리엄 허스트는 언론인이면서 고미술품 수집광이었습니다. 그는 유럽 왕가에서만 사용했다는 신기한 도자기 하나가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유럽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추적했습니다. 그 도자기를 꼭 소유하고 싶은 열망 때문에 여러 해 많은 돈과 힘을 기울이며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도자기가 이미 미국의 돈 많은 한 언론인의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그 사람을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한참을 헤맨 끝에 도자기를 산 사람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여러 물건과 함께 광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있더랍니다. 이미 오래 전에 사서 자기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엄청난 가치의 보화가 이미 자기에게 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그것을 찾아 헤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비극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고미술품 수집상들과 같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 엄청난 하늘의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이 된 것입니다. 만국의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소유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새로운 보물을 찾아 정신없이 헤매고 있습니다.

모세는 선택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무엇을 거절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과 화, 생명과 죽음을 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세계에 가치를 두고 세상 것을 버리면서 과감하게 믿음의 길을 갑니다. 어떤 이는 세상 것에 매여서 영원한 것을 버리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떤 것을 선택하며 어떤 길을 걷고 계십니까? 그리고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경험과 상식, 지식으로 선택하지 마십시오. 오직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서 선택하십시오. 우리의 경험이 반드시 옳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의 느낌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