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트랙강의 ③ 임종구 목사(푸른초장교회)

스위스는 개혁도시들마다 이미 각각의 목사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제네바 목사회는 1541년 교회법령에 의해 제네바와 시골교구의 모든 목사들이 매주 하루를 회집할 것이 규정하였다. 16세기 제네바에서 목사회, 즉 콩그레가시옹(congrégation)은 치리회, 콩지스투와르(consistoire)와 함께 두 개의 축을 형성하면서 치리회의 목요일의 회합과 목사회의 금요일의 회합이 도시의 개혁을 이끌었다.

제네바 목사회는 제네바 지역은 물론 제네바 인근의 모든 목회자들이 매주 금요일에 모여 오전과 오후에 걸쳐 성경 토론 및 발제와 신학논쟁을 실시하였다. 설교자들은 돌아가면서 성경 본문에 대해 해설을 했고 계속된 읽기의 본문을 연구하고 이후에 동료들 사이에서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 모임의 사회자였던 칼뱅은 토론을 시작하고, 요약하고, 폐회 기도를 함으로써 형제들을 이끌었다. 목사회 회합의 결과물이 칼뱅의 방대한 주석의 배경이 되었고, 취리히 협약을 비롯한 교리의 일치와 발전을 이뤄냈다.

목사회는 제네바 각 의회에 접촉했고, 각 기관에 적임자를 추천했으며 각 종교개혁도시들과 서신을 교환하며 각 교구의 파송할 목회자를 선발추천하고, 그들을 견책하고 관리했다.

이처럼 조직과 기구로서 목사회(compagnye)는 입법 기관이면서, 목회자의 자정기구였고, 신임목회자를 검증하고 선발 추천했으며, 교구목회의 실무를 결정하는 목양행정적 차원이었고, 대내외적인 교리의 연구와 일치의 창구였다. 이렇듯 제네바 목사회는 제네바의 개선과 발전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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