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랑학교 아이들은 흙을 사랑하는 마음과 땀의 가치를 배운다. 필리핀에서 빈민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은 학생들이 나무심기, 모내기, 김장 등으로 노작교육에 참여하는 모습.

똘똘 뭉쳐 키워온 ‘선교정신’ 열방을 품는다
‘창조 구속 선교’ 3가지 신학원리 교육에 녹여 … 섬김 진력하는 소수정예로 ‘파송’


이랑학교(교장:정용갑 목사)에서는 졸업식 대신 ‘파송식’이라는 말을 쓴다. 졸업은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시작이며, 그 동안 배움과 훈련을 통해 키운 능력을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기 위해 출발한다는 뜻이 거기에 담겨있다.

파송식의 하이라이트는 시상식이다. 졸업생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자리에서 담임교사로부터 특별한 상장 하나씩을 수여받는다. 성적우수상, 개근상처럼 평범한 상장이 아니다.

수업시간에 가장 열심히 질문하는 태도를 칭찬하는 상, 선생님을 도와 열심히 뒷정리를 해 준 모습을 격려하는 상,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을 즐겁게 하며 분위기를 띄워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상 등등 이랑학교에서 아이들의 6년 세월을 오롯이 녹여낸 상장이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거나 방임하지 않으며 정성을 다해온 교사들의 마음도 거기 숨어있다.

▲ 사진은 학생들이 나무심기, 모내기, 김장 등으로 노작교육에 참여하는 모습.

파송식은 무려 2시간 넘게 진행된다. 매해 졸업생이 15명 정도로 작은 학교임에도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데는, 학교와 아이들 사이의 유대가 단번에 싹둑 잘라낼 수 있을 만큼 어수룩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업생들은 이랑학교에서 교사 친구 선후배들과 참 동지애를 키워왔다.

이랑학교 계단 벽면을 장식하는 커다란 협동화는 이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언뜻 보면 예수님 모습을 서투른 솜씨로 그려낸 흔한 성화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에 들어가는 선이며 장식들이 죄다 성경구절로 되어있다. 그것은 학생들 모두의 신앙고백이자, 동역의 열매이다.

무엇보다 이랑학교 학생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힘은 ‘선교정신’이다. 아이들은 반별로 혹은 동아리별로 미전도 종족과 선교사 하나씩을 품는다. 용돈을 아껴 이들을 위해 헌금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들을 생각하며 기도한다. 전체 채플의 헌금도 전액 선교비로 보낸다.

다른 학교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이 같은 모습은 창조, 구속, 선교라는 세 가지 신학적 원리를 교육의 배경으로 삼는 이랑학교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모든 교육과정은 학생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존재임을 배우고, 복음을 통해 구속받은 존재임을 확인하며, 세상에 십자가를 들고 나아가야 할 사명을 깨우치는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이랑학교의 모체를 이루는 이랑둥지와 컴미션을 통해 수많은 선교사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지면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인생을 바칠 꿈을 발견하고, 절실하게 공부할 이유를 확인하곤 한다. 예를 들어 영어 하나를 배우는데도, 그것이 개인의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살아갈 때 필요한 도구가 된다는 점이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 선교정신은 이랑학교를 움직이는 커다란 동력이다. 이랑학교 졸업식은 학생들이 복음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파송식이다. 담임교사로부터 자신만의 특별한 상장을 수여받는 졸업생들.

단지 책이나 이론으로만 ‘선교’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기간에는 필리핀에 설립된 이랑아카데미에서 생활한다. 1년간 선교현장을 경험하면서 노숙자 급식, 고아원 봉사, 한센인 섬김 등등 세상의 낮은 곳을 섬기는 기회를 갖는다.

평상시 교육과정을 통해서도 손수 농사를 짓고, 나무를 심고, 김장을 하며 흙을 사랑하고 땀의 가치를 체험하도록 배워왔기에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또래들보다 평균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이처럼 인생관과 세계관이 확고히 자리 잡힌 상태에서 학생들은 고교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단계에는 선교학 퍼스펙티브스과정이 커리큘럼에 정식으로 포함된다. 이 과정을 거쳐 졸업생 중에는 벌써 선교사로 헌신해 현재 모리타니에서 사역하는 사례도 있다.

“공부는 열심히 해서 남 주는 것이라고 어려서부터 배워야 합니다. 사실 기독학교의 존재 이유가 바로 복음과 선교를 위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학생들이 복음을 위해 존립하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제자도 공동체의식 선교정신 이 세 가지를 탄탄히 세워주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정용갑 목사의 ‘이끔이장’ 사무실에는 졸업생들이 남긴 ‘논문집’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논문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여성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살펴 본 조선개화기 선교사역’ ‘인체의 조직과 기관을 통한 하나님의 창조설계에 대한 고찰’ ‘제사장적 역할로서의 요한 세바스찬 바흐 음악에 대한 연구’ 등 제목들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논문들에는 무수한 시간의 학습과 독서의 결과, 훌륭하게 다진 신앙고백과 기독교세계관,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자신 있게 펼쳐 보일 수 있는 포부와 비전들이 담겨있다. 파송식을 마친 졸업생들이 떠난 후에도 교사들에게는 소중한 보람이며, 후배들에게 두고두고 물려줄 최고의 유산이다.

계절학교 토양서 쑥쑥 큰 이랑학교

2009년 개교해 이제 고작 5회째 졸업생을 배출한 이랑학교가 여느 학교에 비해 충실하고 안정된 면모를 갖췄다는 주변의 평가를 받는 이유는 개교 훨씬 전부터 운영해 온 ‘청소년 선교 계절학교’(이하 계절학교)라는 토양이 존재하는 덕분이다.

계절학교는 1982년 정용갑 목사 부부가 전북 진안군 부귀면에 개척한 농촌공동체 이랑둥지가 출범과 함께 시작한 사역이기도 하다. 농어촌과 산간지대의 청소년들을 모아 부진한 기초학습을 보충해주고, 성경 및 기독교세계관 교육을 집중한 것이 계절학교의 시작이었다.

어느덧 60기째를 맞이한 계절학교를 운영하면서 쌓인 노하우와 사례들이 오늘날 이랑학교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실제로 학교를 움직이는 주축인 교직원 이사 멘토들 중에는 이랑학교에서 학생으로 혹은 교사로 경험을 쌓은 인물들이 다수 포진되어 그 정신을 계승한다.

선교꿈나무를 키우는 학교, 하나님과 이웃과 흙을 사랑하는 학교, 민족과 열방을 품고 자라나는 학교라는 이념 또한 이랑둥지와 계절학교에서 고스란히 이랑학교에 이어지고 있다. 이랑학교가 학년별 12명의 정원 외에 선교사자녀, 다문화가족, 농어촌지역 학생 등을 특별전형으로 3명씩 선발하는 이유도 이런 전통에 닿아있다.

이랑둥지와 계절학교의 정신은 해외로도 확산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계절학교와 청소년아카데미를 통해 현지 아이들, 특히 코피노 자녀들을 돌보는데 힘쓰는 중이며, 조만간 네팔에도 교육기관을 설립할 예정이다. 정용갑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교육적 환경이나 문화적 저변이 열악한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에 헌신하도록 인도하려고 해왔습니다. 그래서 저희 학교는 대안학교가 아닌 참된 의미에서의 기독학교라고 생각하며, 바른 교육을 위해 계속 헌신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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