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나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완치 어려운 평생의 병 … “교회가 희귀난치병 환우들을 품어 주었으면”

“사실 그게 제일 걱정이죠.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될까…”

항상 씩씩하기만 하던 선우 엄마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활기차게 선우를 챙기던 엄마였다. 그 덕에 엔젤만 증후군인 선우도 증상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경미했다. 선우 엄마는 엔젤만 환우들에게 흔히 나타난다는 증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선우에게 하지 않은 교육이 없었다.

“기어갈 때는 허리에 힘이 필요하다고 해서 허리운동을 집중적으로 시켰죠. 치아가 나고서 부터는 씹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엔젤만 아이들이 씹는 힘이 약해서 입이 돌출되거나 혀를 길게 빼놓는 경향이 있거든요. 척추 측만증도 쉽게 오는 편이라 저희 집에서는 선우를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마사지를 해요.”

▲ 엔젤만 증후군 환우 부모들에게 아이들은 쉽사리 손을 놓고 떠날 수 없는 무거운 책임이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천사이기도 하다.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쉬는 시간, 간식을 먹고 해맑은 표정을 보이는 선우.

선우 엄마는 엔젤만 아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고 했다. 증상이 어느 때 갑자기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증상을 미리 예방하거나 최대한 지연시키고, 혹은 최소한으로 나타나게 하기 위해 혹독할 정도로 선우를 바로 잡았다. 아이가 아파 울 때면 엄마의 마음은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악물었다. 좋다는 음식과 약을 찾아다니며 식단을 짰다. 엄마의 이런 노력을 알았는지 선우는 혼자 일어나 몇 발짝 걸을 수도 있고, 지금은 말문을 닫았지만 한 두 마디를 할 줄 알기도 했다. 하지만 엔젤만 증후군이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엄마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른 아이보다 조금 덜하다는 것,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 안 나타난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는 거죠. 이렇게 노력해서 언젠가 인지를 한다든지 혼자 걸어 다닐 수 있다든지 한다면 희망이 있을 텐데 그런 게 없는 게 가장 힘들어요.”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게 엄마 마음. 보험이 되지 않아 한 달에 수십 수백만 원은 우습게 들어가는 재활, 워낙 희귀해서 외국 논문을 찾아보고 의사들에게 부모가 설명을 해줘야 하는 상황, 엄마의 인생이란 전혀 없이 100% 아이에게 맞춰야 하는 일상 모두가 힘겹지만 ‘내가 고생해서 아이가 잘 자란다면’ 못할 것이 없다. 다만 걱정은 이제 엄마가 없을 때 아이가 겪어야 할 일이다. 엔젤만 아이들은 평생 돕는 이가 없이는 살아가기가 어렵다.

“열 살 차이나는 선우 언니가 있는데 거의 세뇌하다시피 ‘선우는 네가 책임져야 돼’라고 말해요. 언니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죠. 사실 선우를 돌보느라 큰 애한테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써준 것도 미안한데 이런 짐까지 맡겨야 돼서 안쓰러운 마음은 말 할 수 없어요.”

▲ 정민이는 엄마와 함께 체육활동을 하러 와서 신이 났다.

이런 미래는 네 살 선우는 물론이고 이제 열세 살이 된 정민이에게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 고민이다. 정민이 엄마는 아이가 어린이집과 학교를 옮길 때마다 죄인이 됐다고 말했다. 통합어린이집, 복지시설에서도 증상이 나쁘지 않은 장애우들만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이곳을 졸업하면 정민이를 어디로 보내야 할 지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하다.

“다운증후군 같이 직업재활이 가능한 아이들을 보면 부럽죠. 엔젤만 아이들은 독립은커녕 본인 신변처리마저도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결국 가족들밖에 없어요. 그런데 정부에서 특별히 지원받는 것도 없으니 이민을 가는 가족들도 많아요. 얼마 전에는 동반자살을 하려고 했던 가족도 만났어요.”

엔젤만 환우 가족들끼리 힘을 모아 작은 그룹홈 같은 것을 만들어볼까 하는 게 정민이 엄마가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있는 꿈이다. 하지만 딱히 자금도, 방법도 만만치 않아 막연하기만 하다. 교회와 같은 곳에서 이런 희귀난치병 환우들을 돌보고 품어주면 좋겠다는 기대도 있다.

“이 아이들도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선물인데 가족들에게 짐이 되거나 방치되면 안 되잖아요. 엔젤만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도 기쁘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현실에 부딪쳐 소망이 없는 가족들도 복음으로 치유되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갖가지 걱정 속에서도 특수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정민이를 보자 엄마의 얼굴이 환해진다. “너무 귀여워요. 너무 예뻐요.” 함께 교회로 장애인 체육활동을 하러 가는 길,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눈 한 번 맞춰주지 않는 정민이지만 엄마는 정민이에게 사랑의 눈길을 한 순간도 떼지 못한다. 부모들에게 엔젤만 아이는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지만 바라만 봐도 힘과 기쁨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정민아, 이 땅에서 못 한 이야기 모두 아픔 없고 장애 없는 하늘나라에 가서 다 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렴. 사랑한다, 우리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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