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복 목사(남현교회)

문제를 만나면 먼저 찾아가 양보하세요
조카 롯에게 다 양보하고 포기한 아브라함은 더 큰 축복을 누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 13:8)

초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염소 두 마리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납니다. 본래 염소는 고집 세기로 유명합니다. 한쪽 염소가 말합니다. “내가 너무 바빠서 먼저 건너야 한다. 당신이 엎드리면 내가 위로 건너가고 그 후에 당신이 건너가면 된다.” 그러나 다른 염소는 양보하지 않습니다. “왜 내가 당신 앞에 굴욕적으로 엎드려! 당신이 먼저 엎드리면 내가 먼저 건너가면 되지.” 두 염소는 외나무다리에서 뿔을 들이대며 서로 싸웁니다. 마침내는 두 마리 염소는 같이 물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양보하면 문제가 풀리는데 양보하지 않아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의 아브라함은 어려운 문제를 만납니다. 그의 사랑하는 조카 롯과 분쟁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혜롭게 해결합니다. 바로 양보하는 방법입니다.
 
1.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나요?(7절)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다투고’의 문제의 발단은 당사자로부터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롯, 두 사람은 다툴만한 사이가 아닙니다. 문제는 목자들 간에 다툼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사자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삼자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관계만 해도 두 사람은 아무 문제 없는데 삼자 때문에 불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시부모 문제, 친정 문제, 자녀 문제, 이웃 문제 등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시험할 때 고차원적 작전을 씁니다. 당사자끼리 직접 부딪치지 않고 간접적으로 부딪치게 합니다. 삼자의 문제로 감정을 상하게 만들고, 그 후에 당사자까지 등을 돌리게 만듭니다. 삼자 때문에 생기는 분쟁이나 불화는 어떤 경우든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사탄의 작전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첫째, 먼저 찾아갑니다.(8절)
목자들 간에 분쟁이 생긴 것을 아브라함도 알고 롯도 알았습니다. 틀림없이 아랫사람들이 보고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들 입장에서 상대방을 나쁘게 말해서 주인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중간에서 하는 말을 듣고 오해하면 더 오해가 깊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먼저 조카를 찾아가 의논하기로 결심합니다. 대화야말로 문제해결의 열쇠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네가 올챙이 시절 생각하지 못하고 그럴수 있냐? 고아와 같은 너를 누가 키웠으며, 누구 때문에 부자가 되었는데. 아주 괘씸하구나! 너 같은 것은 이제 상대도 하지 않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롯을 먼저 찾아갑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인격입니다. 찾아가지 못할 사람을 찾아간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분은 찾아가지 못할 사람을 먼저 찾아가는 신앙인격을 가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예수님도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지 않았다면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롬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먼저 찾아 오셨고, 조건 없이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먼저 찾아가지 못할까요? 자존심을 세우고 이것저것 따지다가 감정만 더 깊어지게 만듭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배반하는 사람이 있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결코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내가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사랑하고 변함 없이 대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도와주는 사람이 나를 배반했다고 해서 나도 돌아선다면 배반한 사람이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

또한 상대방이 나를 미워한다고 나도 그 사람을 미워하면 나도 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 믿음의 힘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나를 배반한 사람을 변함없이 대해 줍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런 인격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먼저 찾아가는 사람, 먼저 대화하는 사람, 먼저 용서하는 사람이 큰 사람이요 복 받을 사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먼저 양보합니다.(9절)
아브라함이 먼저 찾아가서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찾아간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쌍방에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찾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찾아가서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잘못을 따지러 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목적으로 찾아가는 것은 안 찾아가는 것만 못합니다. 어떤 경우든 따지려고 찾아가려면 절대 찾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롯을 그런 목적으로 찾아갔다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롯아 너 그럴수 있는거냐? 고아 같은 너를 데려다 키워서 결혼까지 시켰는데 재산 좀 모았다고 나를 배신하는 거냐? 내가 꼭 먼저 찾아와야 하겠냐?” 아마 심하면 욕하고 때리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먼저 찾아가서 모든 것을 양보합니다. “롯아 이제는 너와 내가 헤어질 때가 된 것 같구나! 이제 네가 먼저 결정했으면 좋겠다. 네가 먼저 좋은 곳을 택하여 우하면 내가 좌할 것이요,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마.” 얼마나 멋진 인격입니까? 자기의 이권을 완전히 포기합니다. 그 당시 좋은 땅은 재산을 늘릴 수 있는 최고의 방편입니다. 정말 하기 어려운 양보입니다. 사람들이 양보하기 제일 어려운 것이 물질인데 아브라함은 기꺼이 양보하고 자기가 손해를 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나 하나 희생하여 화평을 이룰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하겠다. 내가 손해 보고 화평 이룰 수 있다면 얼마든지 손해 보겠다. 내가 먼저 양보해서 화평을 이룰 수 있다면 먼저 양보하겠다.” 물론 다 지키며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데 왜 우리는 못합니까? 그러면서도 문제가 해결되길 원하고 화평을 원하는 것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3.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요?(11~13절)

롯은 아브라함이 먼저 찾아가 좋은 땅을 선택하라고 할 때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큰 아버지 제가 먼저 찾아 가지 못한 것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큰아버지가 저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이만큼 부자 된 것 누구 덕분인데요. 큰아버지가 먼저 선택하세요.” 그러나 롯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뻔뻔하게도 먼저 좋은 땅을 차지합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끝까지 양보하고 덮어줍니다. 아브라함의 훌륭한 신앙인격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신앙인격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롯아! 너 보자보자 하니까 너무 하는구나! 어떻게 그럴게 당당할 수 있냐? 먼저 좋은 땅 선택하라 했다고 사양 한번 않고 차지하다니 정말 괘씸하구나!” 그러나 아브라함은 끝까지 인내합니다. 양보는 끝까지 해야 양보요, 사랑도 끝까지 해야 사랑입니다. 그러나 양보하는 자가 결국 승리하고 축복 받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14~15절)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 기름진 소돔 땅으로 간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마음껏 축복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 봐라. 네게 보이는 땅은 다 너와 네 자손에게 다 주겠다.” 아브라함은 과연 축복 받을 만합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이런 아브라함을 축복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양보할 때 내가 먼저 손해볼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소돔 땅을 치지한 롯은 결국 망합니다. 그러나 다 포기하고 다 양보한 아브라함은 큰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누구나 문제를 만납니다.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먼저 찾아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양보합니다. 모쪼록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실천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 받는 역사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