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된 신학교육 현장에 강력한 소명이 착근해야 한다
신학은 성경계시의 빛 위에 세워진 학문 … 통합적 사상과 실천의 힘 회복해야

 

▲ 김남준 목사(열린교회·총신대 교수)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신학이 학문일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들은 ‘학문’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신앙 없는 이성으로 발견한 지식의 체계’로 생각하기에 신학을 학문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한다. 신학을 학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크게 다음과 같이 두 견해로 나뉜다. 첫째로, 신학은 이성의 자명한 원리가 아니라 신앙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학문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견해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는 그 신앙의 지식이 인간을 지복(至福)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학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로, 신학은 확실히 학문이라는 견해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 Aquinas)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계승하면서, 학문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자연이성의 빛으로 알게 된 원리에서 출발하는 학문과 더 상위의 빛으로 알게 되는 학문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기하학의 토대 위에 세워진 광학, 수학 위에 세워진 음악과 같이, 신학은 성경계시의 빛 위에 세워진 학문이다.
 
신학이란 무엇인가

17세기 제네바의 개혁자 프란시스 튜레틴(F. Turretin)은 신학이 객관적으로 학문의 분야이지만 주관적으로 지성에 내재하는 성향인데, 이 성향은 지식의 성향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믿고자 하는 성향’(habitus credendi), 곧 믿음(fides)이며 이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진 초자연적 성향으로서 이론적인 동시에 실천적인 것이라고 정리했다.

신학공부의 목적은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다. 마스트리히트(P. Mastricht)의 유명한 문장을 응용하여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학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한 것이다.” 원래 기독교 전통에서 신학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해 온 인류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했다. 그런 점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이미 신학자로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참된 신학은 세상 학문이 아니라 성경 진리와 신앙으로 세워져 간다. 프란시스쿠스 유니우스(F. Junius)가 신학이 어떤 학문보다 높고 고상할 뿐 아니라 통합적인 사상과 철저한 윤리의 실천으로서 습득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학은 이러한 통합적인 성격을 상실함으로 정통 기독교 역사의 유구한 지성적 전통을 상실하고 근현대의 사조에 맞설 수 있는 사상의 힘과 윤리의 힘은 물론 현대사회를 다룰 적실성을 상실하였다.
 
신학지식의 파편화

어떤 평신도가 로마서 9장을 읽다가 어떤 구절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목사는 “성도님, 그런 내용들은 우리 목회자들은 잘 모르고, 신학교 교수들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 평신도는 유명한 신학교 교수를 찾아가, 자신이 읽던 성경본문을 보여주며 의미를 물었다. 그러자 그 신학자는 “죄송합니다. 저는 전공이 조직신학이기 때문에 성경은 잘 모릅니다. 성경신학을 전공한 교수를 찾아가 보시지요.”라고 대답했다. 수소문 끝에 가까스로 로마서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신학교 교수가 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지만, 평신도가 들은 대답은 이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로마서 8장 전공자이기 때문에 9장은 잘 모릅니다.”

18세기 쓰나미처럼 유럽을 덮친 계몽주의와 이후 불어닥친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오늘날의 신학은 전통적인 신학이 가지고 있었던 통합적인 성격을 상실하고 학제간의 높은 벽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전통적으로 교의학은 ‘논제들’(loci)이라는 이름으로 중세부터 발전했고 개혁자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신학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이들에게 석의(釋義)를 통한 성경해석과 고리는 떼어놓을 수 없었고, 거기서 얻은 신앙의 지식은 사상에 입각한 경건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계몽주의는 역사적 방법론과 비평적 원리로써 이 둘을 갈라놓았다. 역사적으로 독일 경건주의는 신학연구에 있어서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겼다. 프랑케나 슈페너, 진젠도르프 백작과 같은 경건주의자들은 개인 경건과 목회실천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체계적인 신학지식과의 연관성을 경시하는 풍조를 가져왔고, 이로써 신학은 성직자가 될 사람들을 위한 전문적 연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 Schulehermacher)의 제자인 칼 하겐바흐(K. R. Hagenbach)를 거치면서 사중구조의 신학이 제기되었는데, (1)성경주석 (2)교회역사 (3)조직신학 (4)실천신학으로의 구분이 바로 그것이다. 에드워드 페어리(E. Farley)에 따르면 19세기 신학에 대한 견해는 대체로 이러했다. “신학이란 교회 지도자들을 교육하려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기독교 신앙에 관한 지식을 생산해 내는 자료들을 조직화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그 후에는 신학의 분과는 더욱 세분화되었고, 분과 안에서의 통합성조차 거의 상실하고 일반학문의 경우처럼 독립화, 전문화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학함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신학함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조국교회가 겪고 있는 신학교육의 파편화 현상도 예외는 아니다.

더욱이 신학교수로 임용되는 기준에 있어서 경건한 인격과 신앙보다는 일반학문에서와 같이, 학문적 경쟁력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현실은 신학교육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화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신학교육에 있어서도 지식의 몰지혜화(沒智慧化) 현상이 일반적이 되고 있다. 신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은 교육 내용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육방식의 문제이다. 신학 지식이 거룩한 감화를 동반하여 전수되지 않기에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처럼 그들의 의식세계에 어지럽게 떠다닐 뿐 자신들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러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불타는 진리의 증언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신학교육과 교회의 역할

어떤 변화가 도입되지 않는 한, 20~30년 후 조국교회는 개혁신학의 전통을 이을만한 목회자들을 공급받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에 교단의 미래를 염려하며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로, 신학교 지망생들의 소명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로이드 존스의 지적과 같이 “설교자는 단지 설교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복음 진리를 증거하지 않을 수 없는 ‘신적강제력’에 사로잡힌 사람이어야 한다. 단지 “환경에 의해서 신학교에 오게 되었다”는 고백은 목회와 설교의 소명일 수 없다. 목회자로 부르신 소명 여부는 사역에 대한 비전이나 희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에 대한 통절한 경험이다. 이 소명을 몇 십분 간의 신학교 입학면접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목회자로서의 소명 여부는 지역교회에서 공동체에 의해 확인되어야 하며 어느 목회자가 그를 신학교 입학하도록 추천했는지가 일생동안 실명으로 모든 서류에 따라다니게 하여야 한다.

둘째로, 영적 생명력을 경험할 수 있는 신학교육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신학교채플에 대한 개혁(설교자의 신중한 선정과 충분한 시간의 확보)이다. 신학교 채플에서 학생들은 신학과 경건, 그리고 목회가 사상적으로 어우러지고, 기독교의 진리가 영적 생명력을 가지고 전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신학교는 교계인물이나 금전기부자에 대한 예우 차원의 강사 선정을 지양하고 신학 교육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채플 설교자를 목회자들과 신학교수들 가운데 발굴하여 말씀으로 봉사하게 하여야 한다.

셋째로,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의 리더십을 완전 분리하는 것이다. 지방 신학교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비교적 그렇게 할 필요성이 적다. 그러나 총신은 조속히 결단을 하여야 한다. 학부의 총장이 반드시 목사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처럼, 학문성과 대학경영의 전문성을 가진 평신도에게 리더십을 주어 경쟁력 있는 대학교를 만들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신학대학원의 총장은 독립적 리더십을 가지고 신학대학원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를 본격적으로 양성하는 기관이기에 총장은 목사로서 학교경영능력이나 모금능력보다는 학문과 경건, 목회와 설교, 리더십 등에 있어서 목회자가 될 신학생들의 사표가 될 만한 사람이 맡아야 할 것이다.

넷째로 신학대학원 총장을 비롯하여 교수들 전원이 학교 캠퍼스안에 충분한 넓이의 사택에서 생활하도록 의무화하고 방과후에는 학생들과의 성경공부나 교제로써 삶을 나눌 수 있게 해야 한다. 개혁 신학의 교육역사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큰 영향을 끼진 대표적 인물이 ‘탁상담화’로서 제자와 동료들을 대화하며 가르쳤으며 자신의 집에 이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던 마르틴 루터(M. Luther)와 17세기 화란 위트레흐트 대학에서 청교도적인 영향력으로 감화를 끼쳤던 기스베르투스 보에티우스(G. Voetius)였다. 우리 교단의 신학대학원은 이러한 방식의 신학교육에 적합한 교수들을 초빙하고 그분들이 후고의 염려없이 미래 조국교회의 목회자를 만드는 일에 온전히 헌신할 수 있도록 충분한 보수와 연구 및 주거환경을 마련하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로 교회는 신학대학원을 지원하는 일에 더 많이 헌신하여야 한다. 아무리 적은 규모의 교회라 할지라도 교단에 가입되어 있는 교회는 설립 초기년도부터 경상예산의 일정한 비율(0.5~1%)을 신학대학원을 위한 의무금으로 내도록 법을 제정하여야 한다. 일정기간 동안 충분히 홍보하고 그 기간이 지난 후 부터는 의무금을 내지 않는 교회에서 추천하는 입학생은 받지 않는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신학대학원 학생들은 일체의 기숙사 생활과 등록금은 물론 기초교재까지 학교에서 무상으로 지원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학장학재단을 만들어 학문과 경건을 갖춘 신학생들 중에서 엄정하게 유학생들을 선발하여 그 재단의 후원을 받아 학비에 대한 염려없이 외국에서 개혁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에 소재하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사례는 좋은 예이다. 그 신학교는 매킨지라는 컨설턴트 회사에 학교경영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용역을 주었는데, 그 중 재정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충고가 이채롭다.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학교가 본연의 가치에 보다 더 충실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목회자를 길러낼 수 있는 교회적 토양을 갖추어야 한다. 좋은 목회자는 교회와 신학교의 합작품이고 이것이 완성되게 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지역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존경할만한 목회자에게서 목양을 받으면서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이 교회 공동체의 인정을 받아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고, 그 후 2년 정도는 학업에만 전념하며 평신도로서 영혼을 돌보는 사역을 돕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 후 3학년 정도부터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본격적으로 목회수업을 받게 해야 하는데, 이렇게 조국교회를 위해 좋은 목회자를 길러내는데 협력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신학생들에게 바람직한 목회를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교회가 많이 생겨나야 한다. 신학생은 조국교회라는 산에 심겨지는 묘목이다. 그 묘목은 거목들의 신세를 지며 숲을 이루게 될 나무로서 생을 시작한다. 그 묘목들은 큰 나무의 보호를 받으며 풍상과 싸우며, 거기서 떨어지는 낙엽으로 생성되는 기름진 부엽토의 양분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묘목이었을 때는 산의 신세를 지던 그들도, 거목이 된 후에는 산으로 하여금 나무의 신세를 지도록 한다. 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거목같은 목회자들로 자랄 좋은 묘목과 같은 신학생들이 배출되고, 훌륭한 스승들에 의해 ‘경건과 학문’(pietas et scientia)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채 제자들에게 사랑으로 전수되는 신학교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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