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면 더 크게 웃는 천사같은 아이”

병원에서 병원으로 힘겨운 일상 … 작은 희망 믿고 오늘도 일어서요

국내에만 최소 50만 명이 2000여 종의 특이 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다. 하루하루 병을 견뎌내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 의문부호 가득한 사람들의 시선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교회가 먼저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엔젤만 증후군 환우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희귀난치병 환우들의 현황과 어려움,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AM 07:30
다섯 살 용성이의 하루는 아침 일찍 병원에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말도, 의미 있는 활동도 할 수 없는 용성이를 위해 엄마는 옷을 입히고 간단한 아침을 먹이면서 분주하게 병원에 갈 준비를 한다. 매일같이 가는 병원이지만 용성이는 지금 무슨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른다. 그나마 오늘은 용성이가 오랫동안 잠을 자서 엄마 입장에서 준비가 수월하다. “어제 밤 12시에 잠들어서 오늘 아침 7시에 일어났어요. 평상시 같으면 하룻밤에 수도 없이 일어나요. 엔젤만 아이들은 간질환자보다도 뇌파가 불안정해서 깊게 잠을 자지 못하거든요.” 겉보기에는 또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용성이는 정신 발달과 신체 발달이 느린 엔젤만 증후군 환우다.

 AM 09:30
가까스로 시간 맞춰 도착한 재활병원에서 용성이는 분 단위로 움직인다. 오늘은 물리, 인지, 작업치료를 받는 수요일이다. 잠을 많이 자서 컨디션이 좋은 용성이는 엄마에게서 금방 떨어져 치료사 품에 안긴다. 아이를 맡기고 치료실을 나온 엄마는 잠시 작은 방에 앉아 숨을 고른다. 용성이는 늦게 결혼해 벌써 50줄에 접어든 엄마가 안고 움직이기엔 이미 많이 컸다. 꿀 같은 휴식도 고작 30분. 하나의 치료가 끝나면 또 다른 치료를 위해 방을 옮겨야 하는데, 엄마가 직접 나서야 한다. “병원에서 아이를 데려다주다가 무슨 사고가 날 수도 있고요. 아무래도 제가 하는 게 더 마음이 놓여서요.”
자리에 앉아서도 연신 시계를 바라보던 엄마는 30분이 지나자 치료실로 들어가 용성이를 데리고 나온다. “용성이가 손으로 장난감을 꼭 움켜쥐었다”는 치료사의 한 마디에 엄마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어이구, 우리 용성이 오늘 그렇게 잘 놀았어요?” 엄마는 땀을 흘리면서도 용성이를 번쩍 안아 유모차에 태우고, 다시 다른 건물로 빠르게 이동한다. 용성이는 물리치료실에 들어가 다시 한 번 엄마와 헤어진다.
아직 혼자 일어나거나 서 있을 수 없는 용성이는 치료사의 도움으로 자세를 바꾸면서 다리에 체중을 싣는 연습을 한다. 아직 서툴기 때문에 금방 넘어지고, 치료사의 손을 피해 도망가기도 한다. 아프고 힘들 법도 한데 울거나 떼를 쓰지 않는다. 치료사는 “용성이는 힘들면 더 크게 웃는다”며 용성이를 쓰다듬었다. 항상 웃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이 엔젤만 증후군의 특징이다. 시도 때도 없이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에 아이의 진짜 마음을 알 수가 없어 가족들은 속절없이 애를 태운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아픈 건지 괜찮은 건지 도통 모르니 매 순간이 답답하죠. 말도 할 수 없는데 감정 표현도 되지 않아 어떤 때는 벽과 이야기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PM 12:30
오전 치료가 끝나고, 병원에서 준비한 점심 메뉴는 돈까스다. 장난감에 온 신경이 팔려 밥에는 관심도 없는 용성이에게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의 분투가 시작된다. 열 번 수저를 내밀면 한두 번 쳐다보며 먹는다. 용성이는 엔젤만 환우 중 나은 케이스다. 많은 환우들은 음식을 빨거나 삼키기 어려워 식사를 잘 하지 못하고, 영양제로 겨우 체력을 유지한다.
오후가 되자 병원 밖 주차장으로 장애인 콜택시가 차례로 들어온다. 용성이도 엄마와 함께 서둘러 콜택시에 오른다. 다음 병원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수시로 용성이를 안고 옮겼던 엄마도, 여러 치료를 받느라 고생한 용성이도 진이 빠졌다. 그래도 장애등급을 받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엔젤만 환우들은 장애등급을 받기가 쉽지 않아 국가 보조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유모차를 끌고 대중교통으로 다녔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지금은 이동이라도 편하게 할 수 있어 감사하죠.”

 

엔젤만 증후군이란?
엔젤만 증후군은 발달이 지연되고 말이 없거나 부적절하게 장시간 웃으며, 독특한 얼굴 이상이나 발작과 경련이 나타나는 희귀질환이다. 미국에서도 700여 명만 보고되었고 국내에는 100명이 채 안 될 정도로 드물게 발병한다.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며, 아직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아 엔젤만 증후군인지 모른 채 단순한 정신지체를 병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환우들도 많다.

 PM 15:00
진료를 마친 대학병원에서 용성이의 아토피가 좋아졌다는 말을 듣자, 엄마는 “이제 다닐 병원이 하나 줄었네요”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도 그럴 것이 용성이의 하루는 병원만 다녀도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린다. 엄마의 하루도 마찬가지. 오늘은 대학병원에 오느라 어린이집도 건너뛰었다. 2시간 남짓 다니는 어린이집이지만 늘 엄마하고만 있던 용성이가 또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엄마가 잠시 용성이에게 눈을 떼고 밀린 집안일을 할 수 있는 겨를이다.

 PM 17:00
저녁 시간,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온 용성이와 엄마를 아빠가 반긴다. 사실 용성이는 일본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가 일본에서 입양한 아이. 유난히 발달이 느려 혹시나 찾아간 병원에서 엔젤만 증후군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아빠는 몇 달간 용성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용성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 ‘아빠’일 정도로 부자 사이는 각별하다.
“용성이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천사 같은 아들이죠. 잠시라도 떨어져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 분 일 초도 눈에서 떼고 싶지 않은 아이에요.” 엄마 아빠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성이는 가만히 누워 리모컨으로 TV 채널 바꾸기에 여념이 없다. 내일은 용성이가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고 한 마디 대답이라도 해줄 수 있을까. 용성이와 엄마 아빠의 하루는 그 작은 희망에 기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