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교대광교회는 자랑스러운 110년 역사 위에 또 다시 위대한 족적을 남기고자 분투하는 중이다. 사진은 성례식이 거행되는 모습.

벌교대광교회, 재부임 조경묵 목사 지휘아래
다음세대 사역·해외선교비전 지경 넓혀간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는 ‘회정리교회’가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와 6·25동란기를 온 몸으로 겪었던 교회, 언덕배기에 돌로 지은 예배당, 가난한 아이들의 야학이 이루어지던 자리. 소설 속에는 이 교회가 당시 이념의 갈등 속에서 고뇌하던 지식인들의 활동무대로 그려진다.

벌교대광교회(조경묵 목사)는 바로 이 교회의 현재 이름이다. 처음 이름은 광주에 여행 갔던 김일현이 복음을 듣고 결신해 김재조 정태인 등과 함께 1905년 벌교읍 장좌리에 설립한 무만리교회. 그러니 교회의 역사는 무려 1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무만리교회에서 1920년 벌교리교회가 분립하고, 설립자였던 정태인 목사가 초대 담임목사가 되어 열띤 전도로 교회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김정복 김상두 이기풍 김형모 방화일 고재덕 목사 등 한국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이 교회 강단을 거쳐갔다.

한국장로교회 최초의 선교사이자 훗날 순교자로 생을 마감한 이기풍 목사가 담임하던 시절, 회정리 672번지에 건축한 60평 석조예배당이 바로 소설 속 회정리교회이다.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는 이 예배당은 홍교, 소화다리, 현부자네 집 등과 함께 문학기행 차 벌교를 찾는 관광객들의 방문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해방 이후 WCC 논쟁이 한창이던 시절 51인 신앙동지회를 이끌던 정규오 목사의 활동 거점 중 하나였고, 2000년대 들어 김종한 목사 재임 중에는 신천지 등 이단세력에 앞장서 맞서는 교회로 주목받는 등 벌교대광교회의 행보에는 늘 남다른 면모가 있었다.

현재의 예배당은 1985년 벌교시장 옆에 건축한 후 최근에 리모델링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건물을 처음 건축한 것도, 30년만의 리모델링 공사를 맡은 것도 모두 조경묵 목사이다. 조 목사는 30년 전 벌교대광교회 제14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4년간 사역한 후 이임했다가, 지난해 다시 제19대 목사로 부임하는 진기록을 남기게 됐다.

“한 번 담임했던 교회에서 다시 사역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교우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부임을 결심했습니다. 단지 담임목사로만 아니라 마치 하나님의 사자처럼 대접해 주는 듯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덕분에 목회자로서 현역 마무리를 뜻 깊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조경묵 목사(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남전도회원들이 찬양하는 모습.

조경묵 목사는 야학을 통해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에 매진했던 벌교대광교회의 오랜 전통이 현재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역 전체의 어린이·청소년 인구가 크게 줄어 주일학교 운영에 어려움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도, 전담 교역자들을 세우고 활발한 장학사업을 펼쳐 교육에 힘쓰는 모습은 여전하다. 회정리의 옛 예배당은 지금도 어린이집으로 활용 중이고, 신축한 교육관 1층은 탁구장 등 운동시설로 지역청소년들에게 늘 개방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문화가족들을 대상으로 사역의 지경을 크게 넓히고 있고, 미얀마의 최은득 선교사를 통해 선교센터를 건축하고 우물파기 사업을 전개하는 등 해외 복음사역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올해에는 특히 설립 110주년을 기념해 증경총회장 최기채 목사를 강사로 초청한 가운데, 4월 30일 기념예배와 박경 김종곤 김수석 구제옥 장로 등 직원 20명의 임직식을 거행한다. 또한 광신대 김호욱 교수 집필로 110년사를 발간하고, 아프리카에 기념교회당을 건축하는 사업도 열심히 추진하는 중이다. 조 목사는 이렇게 각오를 밝힌다.

“매일매일 뜨겁게 진행되는 새벽기도의 동력을 바탕으로, 300여명의 교우들과 함께 지역사회는 물론 해외로까지 향하는 선교비전을 힘차게 추구하려고 합니다. 후임자가 더욱 든든한 기틀 위에서 목회할 수 있도록,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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