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이 아닌 ‘비움의 영성’에서 진정한 목회가치 나와
교회는 목사가 돈을 타기 가장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야
하나님 때문에 나를 비울 때 감사와 자유함 얻을 수 있어
 

조병우 목사가 13년 전에 교회로부터 받은 자동차의 주행거리가 현재 5만㎞에 불과하다. 인터뷰 당시 그가 입은 옷도 10년이 넘었으며, 총각 시절 입던 외투를 입고 심방을 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좋은 것을 몰라서도 아니다. 교회가 목사를 대접할 여력이나 의지가 없어서도 아니며, 남과 다르게 보이려는 의도성을 가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조 목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 그저 편하고 좋기 때문이란다. 그의 포기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편하고 즐긴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이 있다.

조병우 목사는 인터뷰 내내 김천제일교회 목회자라서 감사하다고 심심찮게 고백했다. 인격적 신뢰가 있고, 서로 사랑해 주고, 성숙한 모습을 가진 교회에서 실수가 많은 자신이 목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30년 가까이 목회하면서 어찌 고운정만 있었겠냐마는 그의 고백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다.

비움에서 출발하는 목회가 사랑과 신뢰로 가득한 열매로 보상되는 조병우 목사의 목회세계로 함께 들어가 보자.

그동안 목회 여정은 어떠했나.
=목사안수를 받은 후 단 두 곳에서만 사역했다. 거창의 웅양교회에서 전도사로 시작해 목사안수까지 받았다. 김천제일교회에는 1988년도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당시 36세였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은총이었다. 시골 목사가 김천에 영향력 있는 교회에 오게 하신 것은 감사한 일이다.

▲62년 역사의 김천제일교회는 어떤 특징을 가진 교회인가.
=기장측과 분열되는 과정에서 평화동교회에서 합법적으로 분리되어 설립된 교회다. 과거 총회총무였던 박승만 목사님께서 목회를 하다가 총무를 하셨다. 우리 교회는 성도들이 인격적으로 성숙한 것이 제일 자랑거리다. 이것은 목회자로서 굉장히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성도들의 말이나 생활, 교인 상호관계에서 갈등을 본 적이 없다.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노력, 남의 이야기에 대해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목회하기 정말 좋은 교회다.
 

▲ 급변하는 시대에 비움의 영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조병우 목사. 그 비움에서 진정한 목회적 가치가 나오며, 영적인 열매가 형성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 때문에 나를 비울 때 목회적 본질을 추구하는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28년간 김천제일교회를 담임하면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지내왔을 뿐이다. 특정 해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없었다. 해마다 점진적으로 성장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라 볼 수밖에 없다. 교회가 인격적이고, 교회를 존중하고, 자신이 교회를 통해 존중받는 것을 느끼는 분위기 속에서 인위적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신뢰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시내 중심에 있다가 외곽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예배당 건축 중 IMF 사태를 맞아 말 못할 어려움이 많았지만 서로가 격려하고 건축을 마쳤고, 성도들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회자가 일을 잘해서가 결코 아니다.

돌아보면 목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과정이다. 목회자가 실수하고 잘못 판단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이 선을 이루시는 것을 목도했다. 다시 말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기에 잘 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돌아보면 실수도 많았다.

그럼에도 목사가 잘못 판단했어도 성도들이 고의적인 잘못이 아니라 생각하고, 이를 수용하고 이해해주는 모습이 김천제일교회에 분명 있다. 이런 것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 확신한다. 성도들이 정말 오래 인내하고, 참아주고, 기다려주었다. 그동안 교인들에게 시달림을 받아서 고통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사례로 이를 설명해 달라.
=90년도에 교회 건축을 위해 당시 2억 8000만원으로 땅을 샀다. 그런데 건축할 수 없는 땅을 사는 바람에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때 국회의원이나 기관장 등의 힘을 빌려 해결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기도와 믿음으로 기다렸다. 그 결과 IMF사태 이후 지금 교회가 세워진 땅을 굉장히 쉽게 마련할 수 있었다. 지금의 교회는 성도들의 기다림과 기도의 선물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교회란 어렵고 힘들고 약함이 보일 때 기다리고 용납하고 참아주는 것이 오히려 귀한 힘이라 생각한다. 많이 성장해 놓고도 쉽게 어려움을 겪는 교회의 사례를 보면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건축 뿐 아니라 목회사역에서 여러 실수가 있었다. 남들이 보는 것처럼 빈틈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단언컨대 예나 지금이나 교회에서 내가 가장 부족하고, 믿음이 연약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목사와 성도 관계가 가족이라 확신한다. 이해하고 받아주는 관계라 생각한다. 나는 카리스마적인 목회를 성격상 하지 못했다. 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지금까지 왔다. 성도들도 나를 사랑하지만, 나 역시 성도들을 귀하게 생각한다. 성도를 속이거나 이용해서 목회성공하려는 마음은 일절 없었다.
 
▲규모가 크면 목회자의 주도권이 자연스레 커지기 마련이다. 조절하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
=카리스마는 없어도 신앙적이지 않는 것과는 정말 타협하지 않았다.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개인적으로 설득하거나 조율하거나 청탁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목사가 성도들을 지도하고 인격적으로 성숙시켜야 하는 것이 본연의 사명이다. 그런데 일을 진행함에 있어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숫자나 목적지향적인 설교는 하지 않았다. 주님의 기쁨과 사회에 신뢰를 회복하자는 측면에서 우리의 변화를 강조해 왔다.

개인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인격적인 도전을 해보고 싶다. 중직자와 제직들 역시도 인격이 성숙해지는데 목회 방향성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들이 깊어지고 이해심과 배려가 과거보다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김천제일교회는 지역의 가장 큰 교회가 되었다. 대표적인 교회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방향성은 무엇일까.
=목회연륜이 갈수록, 그리고 큰 교회일수록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도들에게는 목사를 향해 보통 두 가지 기대가 있다. 하나는 능력을 보여 달라는 기대치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보여 달라는 기대치가 있다.

나는 능력이 없다. 능력 부분에는 자신도 없고, 나 역시 추구하지 않는다. 부족하지만 목사를 통해 예수님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분의 인격과 기쁨과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성도들과 공유하기를 원했다.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목사가 성도들 사랑하는 마음이 들 때는 그 자체로 감사이고, 목회의 전부라 생각한다. 그 사랑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 목회다.

큰 교회의 담임목회자가 되면 상위 10%의 사람에 초점을 맞춰 목회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제일 어려운 계층에게 목회자로서 관심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명절이면 늘 20가정에 전해줄 선물을 준비한다. 그 선물은 교인 중 가장 어려운 분들에게 전달한다. 선물이라 해봐야 아주 가벼운 것이다. 그런데 굉장히 고마워한다. 선물 때문이 아니라 목사가 자신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런 반응이 온다고 본다.

항암치료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해 담임목사가 식사 대접하는 것이 어떠냐는 부교역자의 제안에 자연식을 하는 식당을 신중하게 골라 최고로 대접을 한 적이 있다. 그때에 고난을 받는 이들이 서로 처음 만났지만 쉽게 친구가 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것이 행복이다. 목사를 보고 행복해하고 감사해 하는 성도 앞에 서 있는 목사가 얼마나 행복한가?

큰 교회가 큰일을 해주는 것보다 작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지역의 교회가 건축을 하면 교단을 초월해 언제나 헌금하고 있다. 작은 것이지만 격려가 된다고 한다.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에 고마움의 표현일 것이다.

큰 교회가 대외적으로 일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교회가 연합하는데 중심에 서면 좋겠다. 이때 중심이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다른 교회들과 우리 교회 콘셉트가 맞지 않을 수 있다.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다름이다. 가치관의 차이라 여기면 좋겠다. 명절이 되면 성도들이 많이 빠져나가는 것을 본다. 결국 농촌 등 다른 교회에서 양육한 교인들이 우리 교회에 오는 것이기에 배려와 감사의 마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 조병우 목사(김천제일교회)

▲목회환경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경험적으로 느끼는 변화상이 있나.
=우리 교회는 별로 바뀐 것이 없는 것 같다. 세상은 바뀌어도 가족과 가정은 기본적인 관계성이 있기 때문에 크게 변화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별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장로님 열 분이 계시는데, 나에게 신뢰와 인격적 존경심을 갖고 대해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나 역시 장로님들에 대해서도 인격적 신뢰와 존경심을 갖는다. 우리 교회 부교역자들이 한결같이 장로님들에 대해 칭찬한다. 타교회와 다른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의 힘듦은 환경이 바뀌더라도 관계성이 괜찮다면 문제없다. 하지만 환경은 좋더라도 관계가 틀어지면 힘든 것이다. 따라서 목회는 관계의 성숙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성숙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관계가 좋아지는 교회라 자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진다.

불가항력적인 변화라 하더라도 목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한 고백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느끼는 변화가 있다. 우선 주일학교가 가장 크게 힘들어졌다. 이곳에 올 때는 주일학교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교사대학이나 수련회 등을 타교회와 연합으로 가졌다. 그런데 수적으로 줄어든 것은 아직 없는데, 아이들을 다루기가 힘들어진 것은 확실하다. 예배에서 은혜를 받는 모습이 사라졌다. 이것이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이다. 주일학교가 심각한 문제라 생각한다. 교회가 아이들의 갈대상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집중력을 잃었다. 외부의 집회나 예배에 나가보면 예배 집중력에 한계를 많이 느낀다. 원인은 얕은 것에 너무 많이 마음을 뺐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깊은 것에 들어가는 심리적 에너지가 약화된다. 가족조차 깊은 대화가 없다. 그저 먹고 입고 자동차 골프 이야기 수준에서 그친다. 따라서 대화에서 영적 주제나 깊은 대화가 사라졌다. 사욕을 좇는 것을 스승으로 삼는 말세의 징조다.

그런 측면에서 교회는 예배에 집중력을 높여야 한다. 예배 중에도 감성적인 찬송이 아니라 고백적인 찬송이 약화됐다. 하나님을 만나는 인격적 찬송이 없다. 이를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인들이 좋은 환경을 가지면서 감사를 잃었다. 가정이든 교회든 동일하다. 과거보다 더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감사는 사라졌다. 이러면서 교회가 상업화되어 가기 시작했다고 본다. 예배가 신앙고백이 아니라 콘서트 관람하듯이 변질됐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교회의 침체와 교세 감소가 현실화 되고 있는 것 같다. 예상되는 사회 환경의 변화 속에 교회는 어떤 준비와 대비가 필요할까.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비움이다. 세례요한과 같은 비움의 결단과 삶이 요구되는 시대가 왔다. 우리가 어릴 때만해도 사역자들이 가진 것 없이 시작해도 영적 열매가 있었다. 세속적인 것을 누리며 성직자로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교회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비움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교세와 상관없이 본질을 추구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이 모인다. 그러나 환란과 핍박의 때에 믿음을 지켜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지 많이 생각게 한다. 군중화된 성도를 두고 복음화를 따지면 곤란하다. 어려울 때이든, 잘 나갈 때이든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있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난 2000년 역사에서 보듯이 교회를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따라서 아무리 교회가 타락했다고 해도 교회만이 교회를 대신 할 수 있다. 교회는 교회대로 문제가 반드시 있다. 건강한 교회를 세워 어려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교회에서 깊은 영성을 느끼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다시 말해 교회는 많은데 다닐 만한 교회를 쉽게 찾기 힘들다고 한다. 어떻게 이해를 이해하나.
=교회가 무엇이며, 목회가 무엇이냐는 정체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목회 성공은 얼마나 많은 것으로 채우느냐로 판단하는 것 같다. 성경의 인물을 보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비우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자기 의도를 채우는 모습이었다. 한국교회가 치유되려면 우선 목회자부터 비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님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비웠다고 하신 것처럼 말이다.

비움에서 영성이 나온다. 채움에 집착하게 되면 영적인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지게 되고 결국은 영성은 사라지게 된다. 넓은 길을 가면서도 좁은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 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부자이면서 나사로의 복을 원하는 이중성을 버려야 한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두렵다. 나 역시도 그 이중성에 자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도 이 부분에 자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비움의 영적 욕구가 절실하게 있다. 많이 가진 것에 부러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면에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성실하는 삶을 살 필요가 있다.
 
▲그 자체로 높은 도덕성이 요청되는 자리이지만, 근래 목회자의 윤리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며, 대책은 없는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목회자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일에 집착할 만큼 자기를 다스려 나가야 하고 채찍질해야 한다. 다윗이 여자를 취하는 방법이 그렇게 야비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도덕성이 높다 해도 누구나 도덕적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넘어지기 쉬운 존재다. 목회자의 경우는 이성과의 접촉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일에 더 노력해야 한다. 성적 에너지와 관심을 배우자 외에 발산시킨다면 강단에서 영적 자신감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 아내가 미울 때 의도적으로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좋을 때야 무심할 수 있다. 반면 나쁠 때 온갖 시험이 들기 쉽기 때문이다. 아내를 사랑하게 되면 많은 부분 극복하게 된다. 육신의 정욕을 이길 힘은 의지가 아니다. 영적인 부분이다.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교회는 목사가 돈을 타기 가장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재정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명분이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교회는 상임위원회를 거쳐 재정이 나오도록 하고 있다. 돈이 들어가는 자리에 어지간해서는 목사가 나서지 않는다. 돈 문제에 얽혀 좋을 일은 없다. 선교비의 경우에도 당사자간 직접 건네도록 하거나, 영수증과 같은 전달할 증빙을 갖도록 해 투명하게 처리한다.

목사는 부자가 되기 위해 살지 않겠다는 결단과 서원이 필요하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선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적인 면은 반드시 공금통장을 만들어 사용한다면 욕심이 사라지게 된다. 무엇보다 목사가 되려는 자는 부자가 되는 것을 포기한다면 재정문제는 시험거리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오랫동안 담임목회를 하면서 한계를 느낀 적은 없었나.
=설교에 대한 한계가 많다. 어느 순간 설교를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의 격년으로 찾아오는 것 같다. 교인들이 설교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올 때 한계를 느낀다. 성도가 설교 기대치가 없다면 어떻게 목회할 수 있나? 그러나 경험상 그것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루가 안 되면, 이틀 사흘 계속 집중하게 되면 은혜가 있다. 성도들이 드리는 감사헌금의 내용을 보면 말씀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것이 많아 감사하다.

예전 같으면 세미나나 방식을 도입하려 했지만, 그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목회의 실족은 언어에서 많이 발생하게 된다. 부부 간에도 공과 사를 잘 구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교인에 대해 실망하거나 실족할 경우가 적다. 목회자는 스스로 상처를 받을 수 있는 문을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지혜가 필요하다.
 
▲목회의 보람과 가치로 삼는 것이 있는가.
=목회의 보람과 가치는 개인의 도덕성에 두고 싶다. 자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게 되면 그것이 가장 힘든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주님을 위해 어떤 일을 했을 때, 목사 되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보편적이다. 따라서 상황보다는 목회적 도덕성이 살아 있을 때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성장은 했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때가 있다면 그것은 보람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의 보람과 가치는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목회적 도덕성이다. 하나님 때문에 나를 내려놓고 비우는 것이 내 인생의 가치로 삼고 싶다.
 
▲김천제일교회는 ‘제로(zero) 재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유는.
=연말이 되면 교회 재정을 무조건 제로(0원)로 만든다. 남는 재정이 있다면 적든 많든 적재적소에 섬길 부분에 사용하고 0으로 만든다. 제로 재정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운다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건축 때문에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원칙이 중요하다. 헌금은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역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교인들도 교회가 무엇인가 쌓기를 바란다. 그러나 육신적으로 좋을지 모르나 영적 부담감이 있을 수 있다.

반면 제로 재정을 하게 되면 어떤 목적을 두고 교회 재정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기쁨이 있다. 헌금이 우리의 것이라는 소유욕을 없앨 수 있다는 의미다. 간혹 돈으로 목회자를 비참하게 만드는 경우를 보는데 상호 불행한 일이다. 요즘 교회들마다 돈의 논리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가급적 교회 재정을 함부로 쓰는 권리 행사를 스스로 덜 하도록 체질화 시켜야 한다.
 
▲최근 설교란 사랑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어떤 의미인가.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수준의 영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없는 설교도 할 수 있다. 또한 사랑을 갖고도 설교를 죽쑬 수 있다. 또한 의도를 갖고 설교할 수도 있다. 설교는 실패하더라도, 설교에서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실패하고 싶지 않다. 요즘은 설교원고보다 손수건을 들지 않고 강단에 오르는 불안이 더 크다. 자주는 아니지만 나를 감당 못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지는 경우가 있다.

설교는 음식과 같다.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1등식이다. 모든 생명은 어미가 주는 음식을 먹을 때 면역력이 높고 영양가가 있다. 그것은 사랑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설교를 통해 성도들과 공감을 나누는 것은 분명 있는 것 같다. 설교라는 영역에 설교자와 성도가 상호 공감하고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득하기 보다는 은혜 받은 세계를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
 
▲성도를 사랑하는 나름의 방법은 있나.
=공평하게 대하는 원칙이 있다. 절대로 목사 편을 만들지 말도록 권하고 싶다. 그동안 그렇게 실천하려 노력해 왔다. 목사편을 만들면 그 사람이 불행해진다. 시기를 받게 되고, 반대편을 만들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마음속은 다르더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공평해야 한다.

목회를 하다보면 독점적으로 목사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마음이 기울게 되면 조절 능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감정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목회자 은퇴로 인한 갈등이 심심찮게 불거지고 있다. 바람직한 은퇴의 모습은 무엇일까.
=지금 나이가 63세다. 목회자의 은퇴시기를 함부로 확정짓는 것은 목사가 갖는 가장 오만함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사명보다 우선되는 것은 안 되는 말이다. 자기의 거취문제는 주님이 정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은퇴에 있어 어려움은 삶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준비해야겠지만 진심으로 주님께 맡기고 싶다. 은퇴 후에 경건에 도전해보고 싶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충만한 개인적인 영성을 가져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다. 목회하면서 날라리 같은 생활을 많이 했다.(웃음) 그래서 은퇴하고 볼 영상을 많이 모으고 있다. 내 마음을 채울 수 있고, 어떤 상황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영상이기 때문이다.

목회의 보상은 목회 과정에서 누리는 행복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는 것이다. 한 평생 교회와 성도들의 사랑을 받고 살았는데,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평소 검소한 삶을 산다고 들었다.
=휴양을 위해 좋은 곳에 공짜로 보내준다 해도 단언컨대 가지 않는다. 목회의 가장 큰 보상은 목회 뒤에 오는 것이 아니다. 목회 그 자체가 가장 큰 보상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진심이다. 나는 목회가 너무 행복이고 감사다.

근래 10년간 여름휴가를 못 갔다.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일중독이 아니라 사역 그 자체가 쉼이다. 즐겁다.

13년 전에 나온 차의 주행거리가 고작 5만 킬로미터다. 평소 경차를 타고 다닌다. 옷도 10년 넘거나 총각 때 입던 외투를 입고 심방을 간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좋은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저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누릴 수 있는 것을 안 누렸다는 것은 내가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천제일교회 목회자라서 감사하다고 심심찮게 고백한다. 무엇을 해도 불쌍하게 보지 않고, 무엇을 입고 다녀도 흉보지 않기에 감사하다. 청빈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게 있어 이것이 자연스럽고 자유하기 때문에 절대 다른 분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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