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수 원장(로이교육개발원)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면 ‘가치’가 빠져 있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으로 우리의 교육을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이 땅에서 행하여져 왔고 지금도 행하여지고 있는 교육이 결코 교육이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커리큘럼이 가치관 형성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데 집중해야 한다. 도덕 교과서에 일부 가치관에 관한 언급이 있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기도 하거니와 그나마 지식으로만 전달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지혜에 이르지 못 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지식은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아주 기본적인 문제부터 시작하여 인간은 수없이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지식이 있어야만 한다. 당면한 문제나 기본적 생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이라면 단순한 지식으로도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말씀으로 지어진 존재이므로 단지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사람들이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더 편리한 삶을 꿈꾸었다. 사람들이 개인의 삶에 몰두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공평과 정의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다.

인간의 생각은 본시 하나님이 심어두신 높은 것이므로, 어떤 사람들은 그 높은 생각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보다 가치 있어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골몰한다. 공부는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지식이 지혜에 이르러 선한 강력이 될 때 비로소 공부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과목이 선한 가치에 대한 표준을 전제하고 또 목표로 해야 한다. 체육수업으로 각종 경기에 대해 배울 때 게임의 룰과 기술만을 배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정당당한 승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승부의 결과에 즐거이 승복하는 일이 또한 얼마나 유쾌한 경험인지를 배워야 삶의 모든 부문에서 정정당당한 삶, 나를 이긴 사람을 기분 좋게 축하해주는 법을 채워갈 수 있다.

체육이 단지 체력을 기르기 위한 과목인 것처럼 여겨지고, 각종 경기의 규칙을 배우는 과목이 되어서는 부족하다. 국어에서 시를 배울 때 시의 수사법을 배우고 구조를 배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물을 새롭게 겸허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눈과 자세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지리를 배우면서 각 나라의 위치, 위도와 경도, 그 나라의 수도, 특산물 등을 외는 것으로 학습 내용을 채워서는 안 된다. 그 나라가 어떤 지리적 특성, 지형적 특색을 가졌는지, 그 지리와 지형, 기후와 환경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지리를 통해 그곳의 사람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공부가 결국은 사람을 배우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을 배운다는 것은 곧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다. 공부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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