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카르타고는 고대사회의 가장 치열한 경쟁관계였다. BC264년 저들 두 나라는 지중해 패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는데 이 전쟁이 포에니전쟁이었다. 포에니는 페니키아의 동의어였다. 고대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땅은 이집트의 나일강 하류의 델타평야 즉 삼각주였고 터키동부의 하란과 티그리스 및 유프라테스로 호칭되는 메소포타미아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였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넓은 초지 평원의 카르타고는 오늘날 튀니지이다. 두 나라의 전쟁은 세 번이나 된다. 그런데 세 번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한 것이 로마였다. 이 전쟁을 이끈 명장들이 바로 카르타고의 한니발과 로마의 스키피오였다.

BC264년의 제1차 포에니전쟁은 카르타고의 침범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카르타고의 시칠리 섬 정복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었다. 제2차 포에니전쟁은 BC219년이다. 이 전쟁은 에스파니아 즉 스페인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말 그대로 혈전이었고 이 전쟁을 이끈 장군이 한니발과 스키피오였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4만 6000의 병사와 37마리의 코끼리를 몰고 저 유명한 에스파니아의 피레네 산맥을 넘고 알프스도 넘어 로마 인근까지 진군한다. 이 때 로마는 한니발이 없는 카르타고를 바다로 건너 점령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카르타고는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니발을 소환한다. 두 영웅은 카르타고 남부의 평원 자마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이 전쟁의 승리자는 스키피오였다. 결국 카르타고는 로마에 합병되는 운명에 처한다.

그 후 BC146년 카르타고는 로마의 복속에서 벗어나려고 제3차 포에니전쟁을 일으키지만 무위에 그치고 다시는 재기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카르타고의 멸망은 로마로 하여금 세계대제국이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 북아프리카의 곡창지대를 얻은 로마는 세계제국으로 가는 길의 가장 큰 걸림돌인 카르타고를 걷어 냄으로써 정치적 안정에 경제적 안정까지 누리게 된다. 로마의 이후 승리는 계속 이어져 BC148년에는 마케도니아를 150년에는 그리스마저 복속시키기에 이른다. 한편 패배한 카르타고는 로마에 눌려 살면서 스스로 로마인이기를 거부한다. 저들은 로마교회가 AD300년대 배교했던 신자들을 용납하자 로마교회를 배격하면서 “도나투스”를 교회자도자로 삼으면서 독립교회로 로마에 저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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