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 베어드(한국명 배위량) 선교사 전도순례길을 도보로 완주한 김병희 목사가 4차 여정을 앞두고 출발지인 경북 의성의 구 의성경찰서 자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병희 목사, 베어드 선교사 전도순례길 ‘완주’
“보름간 600㎞, 고통의 여정은 오히려 큰 축복”


지난해 경상도 북부권역에 선교의 문을 열었던 베어드 선교사의 행적을 좇아 도보 여행을 시작했던 김병희 목사(서변제일교회). 그가 마침내 1월 14일 울산 중구 옛 울산관아를 종점으로 베어드 전도순례길을 완주했다.

두려움도 컸었다. 사실 엄두도 나질 않았다. 어디 가서 물 한 모금 얻어먹겠다는 말조차도 쉽게 못할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무모한 도전이 아닌지 수없이 곱씹고 되뇌었다. 마음 한 켠에서는 “그것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합당한 답을 줘야한다는 부담도 작용했다.
장고 끝에 작년 5월 4일, 드디어 첫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른바 ‘베어드 선교사 전도순례길’ 도보 행진은 올해 1월 14일에야 마침내 마무리 지었다.

▲ 베어드 선교사 전도순례길을 떠나는 김병희 목사의 뒷모습. 그가 내딛은 한 발 한 발은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길의 영성’의 여정이었다.

한국명 배위량으로 더욱 잘 알려진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예양정책 합의 직후 경상도 북부지역 선교를 위해 1893년 4월 17일 부산의 동래를 출발해 밀양, 청도, 대구, 선산, 상주, 예천, 안동, 의성, 영천, 경주, 울산 등지 돌며 선교정탐을 했다. 베어드 선교사가 남긴 자료에 의하면 한 달여간 전도순례로 400마일, 즉 600킬로미터를 다닌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거리는 김병희 목사가 매일 강행군을 통해 보름 만에 완주한 거리다. 그만큼 쉽지 않은 길이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당시를 고려하면 만만한 여정은 더더욱 아니었다.

“목회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역사학자로서 베어드 선교사님의 전도순례길 루트를 직접 걸으며 선교사님의 선교행적을 드러내면서 그분의 역사적·선교적 의미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마침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올레길처럼 걷는 것이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형성되어 있기에, 기독교문화 개발과 확산 차원에서도 꼭 완주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선교사 중에 김병희 목사가 베어드 선교사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윌리엄 베어드는 1891년에 부산을 통해 한국에 왔습니다. 이후 1차로 마산 통영지역을, 2차에는 서울까지 전도순례를 했습니다. 선교예양정책 이후 3차로 1893년 경상도 북부지역 선교기지 세우기 위해 순례길을 걷게 됩니다. 베어드 선교사님은 해방 이전 한국 땅을 밟은 1470여명의 선교사 가운데 알렌과 같이 훌륭한 선교사로 꼽히는 분입니다. 베어드 선교사님은 대구와 경북지역에 복음의 문을 열었고, 선교기지까지 구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선교사 가운데 경상도 전체를 돌아본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김병희 목사는 부산 온천장을 출발해 구 대구제일교회 예배당까지 1차로 걸었다. 이어 지난해 7월 27일 혹서기에 구 대구제일교회에서 경북 상주 낙동의 화산교회까지 행진했다. 화산교회가 있는 지역은 대구·경북 최초로 교인이 되어 조사와 장로를 거쳐 목사가 된 김재수 목사가 출생한 의미가 있는 곳이었기에 2차 종점으로 잡았다. 3차 순례는 화산교회를 출발해 경북 의성의 옛 의성경찰서까지의 여정이었다. 구 의성경찰서 역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 농우회 사건으로 유재기 목사를 비롯해 CE 관계자 등 많은 기독교인들이 구속된 곳이며, 순교자 주기철 목사도 장기간 구속 수감되기도 한 곳이다. 그리고 네 번째로 올해 1월 11일 시작한 베어드 전도순례길은 구 의성경찰서를 출발해 영천과 경주를 거쳐 울산관아가 있었던 울산 중구에서 마무리지었다.

역사학자이기에 무작정 걷기보다는 123년 전에 남겨둔 베어드 선교사의 흔적과 의미를 찾는 재미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4차에 걸쳐 전도순례길을 완주한 김병희 목사는 베어드 선교사의 순례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서양귀신이라 조롱하고 배타성이 심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베어드 이후에 지역을 방문하는 서양선교사를 받아들이는 완충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순례를 통해 수집한 지역의 길과 습관, 음식, 성향 등 지역정보를 공유해 다른 선교사들에게 선교 준비와 예측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 베어드 선교사 전도순례길을 걷다가 발톱이 빠진 김병희 목사의 발 모습.

베어드 선교사의 600킬로미터 전도순례길을 통해 김병희 목사는 ‘길의 영성’을 만났다. 초창기에는 허벅지 통증으로, 마지막에는 발목 통증과 심지어 엄지발톱이 빠질 정도로 고통과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 지금껏 깨닫거나 경험하지 못한 깊은 영성과 대면한 것은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고 고백한다.

“세상에는 길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 가운데 목회자들이 베어드의 하룻길만이라도 걸어본다면 새로운 영성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인간적인 욕심이나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을 비운 그 자리에 하나님을 채우는 영적 유익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김병희 목사는 자신이 체험한 길의 영성이 책으로,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과 목회자들이 동일한 영성을 공유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 형성으로 열매 맺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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