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헌 목사(증경총회장·대구서문교회 원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쳐 기적을 나타내십시오
가슴이 뜨거운 신자 길러내는 것이 목회, 새 술에 취해 하나님의 권능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3~14)

후회할 것이 없도록 일을 한 후에 은퇴를 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한평생 목회를 마치고 지나온 자취를 돌아볼 때 후회스러운 것이 참 많습니다. 지금까지 50년이 넘도록 전심전력을 쏟아 바쳐 교회를 섬겼습니다. 특별히 강단은 내 생명과 같이 소중히 여기며 주일에 강단을 비워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은퇴를 한 뒤에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서, 현재 목회하는 분들의 모습과 내 자신의 걸어온 길을 비교하면서 후회스러운 것 세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한 가지는 대구서문교회에서 50여년 있으면서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그 점에 제가 후회를 가졌습니다. 또한 함께 지내온 교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른 농부들이 길러놓은 곡식들은 튼튼해 보이는데, 내 목회의 결과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서 참 아쉬움을 느끼고 후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성경과 교회 역사에서 나타난 위대한 종들을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되어 제 정신으로 살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나도 그들과 같이 미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그들과 같이 새 술에 취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저들과 같이 미치지 못했기에 내 목회는 이것으로 끝마치고 마는구나!” 이런 후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 은퇴 목회자의 부탁’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동역자들아! 새 술에 취해다오

새 술에 취했다는 말은 강압적인 어떤 힘이 나를 이끌었다는 말입니다. 아쉽지만 저는 50여년 똑똑한 내 정신을 가지고 목회했었습니다. 비교적 저는 냉정한 사람이고, 아주 합리적인 사람이고,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내 정신으로 목회했다는 말은 내가 생각하고, 분석하고, 종합정리하고, 취사선택하고, 목회생활에 적용하며 한 평생 목회생활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 나름의 다섯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첫째,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려했습니다. 원인을 보면 결과를 추리하고, 결과를 보면서 원인을 소급하려했습니다. 육하원칙에 따라 원인을 규명하려는 특성이 있었습니다. 둘째, 합리적인 것입니다. 이치에 맞는 소리냐 안 맞는 소리냐, 이것이 나의 정신의 두 번째 원리였습니다. 셋째, 그것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고,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이요. 넷째, 그것이 내게 이롭겠느냐 해롭겠느냐, 득실 여부를 따졌고. 다섯째, 이것이 선하냐 악하냐, 사람들에게 욕을 먹겠느냐 칭찬을 듣겠느냐였습니다.

이런 다섯 가지 원칙을 가지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종합 정리해 취사선택하는 정신을 가지고 목회를 해왔습니다. 아주 냉정하게 따지면서 무리하거나 불합리하거나 비논리적인 비약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는 멀리하였습니다. 그래서 내 목회는 퍽 조직적이었습니다. 설교도 상당히 논리적이고 조직적이었습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 위하여 아름다운 말과 문구를 사용해 가면서 설교하려고 상당히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먼저 제 목회의 후회를 말씀드리면, 목회는 내 정신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새 술에 취한 것은 내 정신이 아니잖아요. 미친 것은 내 정신이 아니잖아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되었다는 것은 내 정신이 아니라 말이잖아요. 이 진리를 은퇴한 뒤에야 가슴 뜨겁게 깨달았습니다. 오늘 와서 반성해보면 머리가 커진 교인은 길렀어도, 가슴이 뜨거운 신자는 못 길렀습니다. 이것이 내 목회의 결론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목회에는 참 가슴 뜨거운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을 그렇게도 잘 길러내는데, 내 목회에는 머리가 굵은 교인은 길러내도 가슴이 뜨거운 신자는 못 길렀다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은퇴한 목사가 후회하는 내용을 말씀드리려는 겁니다. 나도 새 술에 취했더라면 보람 있는 목회를 할 수 있었을 테고, 나도 미쳤더라면 이보다는 더 자랑스러운 목회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내 가슴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정이 있었더라면 이보다도 더 영향력 있는 목회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이것이 은퇴한 나의 후회입니다.


동역자들아! 미쳐다오

목회는 제 정신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제 정신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세를 들어 이야기해 봅시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애굽으로 갑니다. 모세가 제정신 가지고는 애굽으로 못갑니다. 이제 그의 나이가 팔십입니다. 또 그곳은 사람을 때려죽이고 도망 온 곳입니다. 거기가면 당장 맞아 죽을텐데 제정신 가지고는 애굽에 못갑니다. 만약에 애굽의 사람들이 모세가 온다는 소문을 들었다면 뭐라 했을까요? 모세는 진정 미쳤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갑니다. 제정신이 아니라 어떤 미친 힘에 의하여 애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모세는 마른 막대기를 들고 홍해 앞에 섰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애굽 사람들이 “저놈의 영감이 미쳤구나!”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다른 어떤 힘에 의하여 막대기를 들고 고함을 쳐 홍해를 갈랐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내가 이 말씀을 드리면서 내 자신을 한없이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나를 책망하는 마음입니다.

골리앗 앞에 나타난 다윗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제정신 가지고 골리앗 앞에 다윗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골리앗은 육척 거장이요, 다윗은 20세 미만 소년입니다. 몸으로도 비교가 안 되고, 무기로도 비교가 안 되고, 고함소리로도 비교가 안 되는데 제정신 가지고는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때 골리앗이 다윗을 보고 “저 녀석 미쳤나?” 했을 겁니다. 다윗은 진짜 미쳤습니다. 다른 강력한 어떤 이유 때문에 다윗은 미쳤습니다. 골리앗이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의 무기가 겁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눕히고, 이스라엘을 위기로부터 구했습니다.

미친 사람이 사건을 일으킵니다.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칼을 갈고 있는데, 바로 그 앞에 엘리야가 나타나 “너희들의 신이 참신이냐? 우리의 신이 참신이냐?” 내기를 겁니다. 산꼭대기 제단을 쌓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홀홀단신 외롭게 싸웁니다. 엘리야는 진정 미쳤습니다. 제 정신이 아닌 다른 어떤 힘에 의하여 미쳤습니다. 미친 그는 마침내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숙청했습니다. 메마른 땅에 비를 내리는 기적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후배 동역자 여러분, 이 미친 모세와 다윗, 엘리야가 부럽지 않아요? 미치게 만들어 일을 시키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미친 사람을 통하여 기적을 나타내시려고 미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여기서 안드레와 빌립을 생각합니다. 5000명의 무리를 앞에 두고 예수님께서는 저녁을 먹이라 했습니다. 빌립은 제정신으로 아주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정확하게 계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와서는 예수님께 이것도 도움이 되겠냐고 합니다. 빌립이 안드레를 보고 조롱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정신을 가진 합리적인 빌립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미쳤다고 조롱당하는 안드레를 붙잡았습니다. 이것밖에 없지만 힘껏 주님께 드리니까 5000명의 양식을 해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한국교회에 이 미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빌립과 같은 목회를 했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교인들에게 부담될까봐 헌금을 강요하지 못하고 한 평생 목회를 해 왔으니깐 큰일 하나 해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디 안드레 같은 목회를 하시기 바랍니다. 목회는 제정신 가지고 못해요. 제정신 가지고 신앙생활 못해요. 미쳐야 되요.

사랑하는 여러분! 새 술에 취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붙잡으시고 기적을 나타내십니다. 미친 사람이라야 하나님이 붙잡고 기적을 나타내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된 사람,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붙잡으시고 기적을 나타내십니다.
 

동역자들아!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되어다오

여기서 미친다는 말은 맹목적으로 열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감정이 흥분해 열광하는 것이 아닙니다. 견고한 신앙, 확실한 교리, 정리된 목회신학 위에서 열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에 부닥쳐 미치기를 부탁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고, 하나님과 화평함을 누리고, 은혜가운데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이 영광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경지에서 “나와 세상은 간곳없고 영광의 아버지여 나를 통하여 내 영광을 받아주시옵소서.” 이럴 때에 새 술에 취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미친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부닥쳐 미칠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9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능력 때문에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불사조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에 부닥칠 때에 미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바로 이런 미친 사람이 되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 내 아버지의 권능, 지금도 나와 같이 계시는 이 권능이 나를 붙잡고 계십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는 고백 앞에 이 권능에 부닥쳐 미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해야 여러분을 통하여 한국교회에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미쳐 내 정신이 아닌 그 경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경지요, 이런 목자가 기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지 못했기에 후회를 하면서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십자가의 은총, 성령의 충만, 내가 받은 구원의 감격, 내게 맡긴 영혼들을 사랑하는 열정, 이런 것들이 전부 우리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들이 되는 겁니다. 내가 만약 미쳤더라면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었을 텐데. 내가 만일 미쳤더라면 50년 세월 동안에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따지면서 조직적으로 목회를 했지만 이 미침과 이 술 취함이 없었기에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한국교회의 내일이 암담하다고 그럽니다. 당면한 문제가 시급하다고 그럽니다. 사회적인 책임이 무겁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미치시길 바랍니다. 새 술에 취하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되어 끌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봄눈 녹듯이 녹아질 겁니다. 당면한 위험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태산을 옮겨 밭을 만들 수가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국교회 희망은 주의 종들이 미치느냐 안 미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부디 예수 사랑에 미쳐야합니다. 구원의 감격에 미쳐야합니다. 한 영혼 사랑에 미쳐야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 희망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국가와 민족의 희망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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