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삶을 그리다 라영환/가이드포스트/15,000원

긴 겨울이 벌써부터 두려운 사람들에게 할 일이 생겼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그의 그림을 모은 도록이 있으면 꺼내 옆에 둔다. 없다면 가능한 가장 큰 모니터 화면에 포털에서 검색한 고흐의 작품 이미지를 올려놓는다. 자, 준비는 됐다. <반 고흐, 삶을 그리다>를 펼치고 천천히 ‘그림부흥회’에 참석하면 된다.

<반 고흐, 삶을 그리다>(가이드포스트)는 조직신학자 라영환 교수(총신대)가 새롭게 풀어내는 반 고흐 이야기다. 책에는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나 37살 짧은 삶을 살다간 반 고흐에게서 ‘소명’을 읽어낸 신학자의 수고와 희열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대중에게 반 고흐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사나이’다. 그동안 ‘비극적인 삶을 살았지만 예술혼을 불태웠던 화가’ 정도의 말이 반 고흐를 평가하는 최대치였다. 사실 그 비극이 반 고흐에 대해 대중이 열망하는 뿌리이기도 하다. 반 고흐 사후에 이뤄진 수많은 평가와 찬사는 거의 대부분 ‘불운’과 ‘비극’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신학자 라영환 교수는 오랫동안 ‘광기어린 비운의 예술가’라는 편견의 뒤주에 갇혀있던 ‘사도’ 반 고흐를 꺼냈다. 반 고흐를 ‘소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가 평생에 걸쳐 품고 있던 열정을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차분하게 풀어나간다.

반 고흐에 대한 라 교수의 확신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간명하다. “반 고흐의 소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소명이 인생 전반부에는 성직자로서, 후반부에는 화가로서 표현된 것뿐이었다”면서 “반 고흐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설교와도 같았다”(36쪽)고 일찍부터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반 고흐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의견을 피력했던 ‘2015 크리스천 아트포럼’에서는 “특별히 고흐가 자주 그림의 소재로 사용하였던 일하는 소시민들은 직업을 하나님을 향한 소명으로 보고 최선을 다하라는 칼빈주의적 세계관이 담긴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런 확신은 ‘반 고흐를 종교적 인간으로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크다’는 공격을 받기 쉬운 지점이다. 그러나 라 교수는 ‘반 고흐는 굿 크리스천이었다’는 결론을 포기할 뜻이 없어 보인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에서 흥미 있는 지점은 라 교수가 반 고흐의 명예회복 최전선에 서있는 것이다. 아예 3부(부제: 반 고흐가 되어 반 고흐의 그림을 보다) 전체를 털어 그동안 반 고흐에 덧입혀있던 오해를 풀어나간다.

라 교수는 ‘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고 기독교에 회의를 품고 떠났으며 자살로 생을 마쳤다’는 오래된 믿음이 사실 근거가 희박한 가설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스스로 귀를 자르고 자살했다는 추측은 고흐의 불행을 강조하고 그의 삶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바로 잡아야 했다. 라 교수는 각각의 사건이 일어난 전후의 그림과 편지, 그리고 지인의 기록을 통해 오랫동안 반 고흐를 둘러싸고 있던 오해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그를 일관되게 소명의식을 그림에 투영한 신앙인으로 되돌려놓았다.

‘성실한 예술가 고흐’ 역시 라 교수가 강조하고 싶은 지점이다. 실제로 고흐는 그림에 소명을 둔 이후 끊임없이 그렸다. 그 의지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드러난다. “예술은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해. 어떤 상황에도 멈추지 않고 일하며 계속 관찰하는 거야.”(59쪽)

조직신학자의 반 고흐 그림해석은 기존 미술학계의 그것보다 보다 구체적이고 풍부하다. 그림에 표현된 상징들이 안고 있는 의미를 보다 풍부하게 해석하고 있다. 에둘러 갈 것 없이 그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별이 빛나는 밤>(1889년)을 보자.

▲ <별이 빛나는 밤>, 캔버스에 유채, 1889.

이 그림은 그가 요양원에서 그린 것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림의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이 정서적으로 굉장히 혼란스러운 당시 고흐의 상태를 표현하며 불 꺼진 교회는 소망을 잃은 교회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고흐의 또 다른 대표작인 <성경이 있는 정물화>를 통해 반 고흐가 전통 기독교에서 모더니즘으로 개종했다고 보는 견해의 연장선에 있다.

라 교수는 이 작품에 사용된 소재는 오히려 상당히 종교적이라고 말한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교회, 사이프러스 나무, 올리브 동산 그리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반 고흐의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종교적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특별히 그림 속 예배당은 반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린 남부 프랑스의 예배당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가 사역했던 누에덴의 예배당이라는 것이다. 소망없는 교회를 그리기 위해 아버지의 교회를 등장시킬리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별이 빛나는 하늘에 맞닿은 것은 왼쪽의 사이프러스 나무와 중앙의 교회 종탑이다. 반 고흐에게 별은 영원의 상징이었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힌 십자가 재료로 알려졌다. 즉 반 고흐에게 하늘 높이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는 영원을 향한 갈망이며, 교회 종탑 역시 이 세상과 영원을 잇는 가교였다. 하늘의 별이 열두 개라는 점도 상당히 흥미롭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예수의 열두 제자에서 볼 수 있듯이 열두 개의 별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는 남다르다.

사실 라 교수의 반 고흐 연구는 뼈아픈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라 교수는 영국 대학을 졸업, 직장생활을 하던 둘째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감정을 수습하던 중에 아들이 신학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알았고 그즈음 읽은 고흐의 편지 모음집에서 그 역시 성직자가 되고 싶어 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알고 있던 반 고흐의 삶이 사실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알게 된 라 교수는 집요하게 그를 파고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반 고흐의 삶을 복원하는 동시에 아들을 기억하는 결과물이다.

<반 고흐, 삶을 그리다>는 고흐가 평생 그려왔던 소명의 삶을 이해하는 좋은 입문서다. 라 교수는 고흐의 삶을 통해 한국교회가 긍휼과 연민의 눈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흐 자신이 가장 좋아했다는 <감자 먹는 사람들>에 잘 나타나듯 그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 자신이 약자이면서도 세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고흐의 삶이 조직신학자가 오랫동안 그의 그림들에 집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라 교수는 신학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반 고흐의 삶을 몰라도 신앙생활을 하는 데 아무 지장은 없다. 반 고흐 말고도 강단에는 전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러나 고흐의 삶을 알면 신앙생활은 더욱 풍부해지고 강단의 설교는 더 많은 감동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고흐의 그림이 새롭게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책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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