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섭 목사(순천만대대교회)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도전하십시오
내 자리를 충실하게 지키며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수 14:10)


현대인의 관심은 웰빙에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잘 먹고 잘사는 것에 현대인들이 삶의 목표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과연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 길일까요? 아니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사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인류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85세 갈렙의 삶에서 인생이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 해답을 얻었으면 합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충실하게 살기

우리는 흔히 ‘여호수아’와 ‘갈렙’이란 말을 동시에 사용합니다. 그런데 갈렙의 이름은 언제나 나중에 나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조금도 다를 것 없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45년 동안 철저한 2인자의 삶을 삽니다. 그는 철저하게 여호수아의 권위를 인정하고,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사는 백성 중 하나로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그는 2인자에 머무름을 자존심 상해하지 않습니다. 그는 서 있는 자리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갈렙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고, 자기 위치에서 성실과 충성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1인자의 자리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한사코 높은 자리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줌으로 낮아짐의 모범을 보여주셨고, 하나님 나라는 낮은 자의 삶을 사는 것이 진정으로 높아지는 길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리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낮은 자의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도 어떤 직분이냐 보다는 지금의 자리를 어떤 태도로 지키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직장에서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선장이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음으로 국가적 재앙을 겪었던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나는 지금 내 자리 내 위치를 잘 지키고 있습니까?
 

변함없는 마음으로 살기

본문 7절에 “40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10절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라고 했습니다. 45년간의 삶이 결코 평탄하거나 승승장구한 세월이 아닙니다. 산전수전이란 말도 그의 삶의 여정을 설명하기 부족합니다.

10절 중간에 “광야에서 방황한 이 45년 동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거칠고 고단한 삶이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힘들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거친 광야에서 45년간 모진 삶을 살았고 방황하는 중에도 그는 변함없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갈렙은 85년의 세월을 지나오며 45년의 광야를 통과하는 중에서 하나님의 변함없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사랑을 누렸기에 그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한 때의 열심을 내던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또 내 마음에 내킬 때 잘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만 잘 하는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믿음과 충성이 식기도 합니다. 가끔 격려가 부족하거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낙심하기도 하고, 열성이 식어지기도 합니다. 혹시 지금 의기소침하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본래의 충성과 성실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주께서 오늘 지금을 그 기회로 삼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런 뜻을 품은 자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말씀의 약속을 붙잡고 살기

갈렙을 85년 동안 굳게 붙잡아 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9절에 가나안 정탐 결과를 보고하였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말해주었습니다. “네가 발로 밟은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10절에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갈렙이 요구한 땅은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는, 산지는 크고 견고한 성입니다. 아무도 탐내지 않는 두려움의 땅이었습니다. 아낙 자손들은 거인들이어서 그들을 보기만 해도 공포에 질릴만합니다. 그래도 나이든 갈렙은 아낙 자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갈렙의 믿음은 매우 실제적이었습니다. 말씀을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의 약속을 믿는다면 삶으로 보여주어야 진짜 믿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아낙 자손의 땅을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했으니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그 말씀을 믿는다면 주춤거리지 않아야 믿음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액면대로 믿었기 때문에 아낙 자손의 땅을 얻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우린 어떤가요? 말로는 다 믿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는 대로 살거나 실천하지 못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지 않음은 진정으로 믿고 있지 않는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는 다면 약속한 말씀을 따라서 구체적인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기 바랍니다. 말씀의 약속을 붙잡을 때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고령인 갈렙의 힘은 순전히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으면 우리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육신의 힘이 약해지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굳게 붙잡으면 큰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남이 하지 않는 일 하기

사람마다 쉬운 길, 편한 길을 찾습니다. 갈렙은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걸었습니다. 정탐보고 때에도 다수가 따르는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불신앙과 반역의 길을 걸었어도 믿음의 길을 홀로 걸었습니다. 땅을 분배할 때에도 모든 사람이 기피하는 땅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좀 더 수월하고 편안한 곳을 요구할 권리가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아낙자손이 사는 산지를 요청하였습니다. 남이 가기 싫어하고 피하는 땅을 요구함으로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걸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 때 쉬운 일은 자기가 하고, 싫고 힘든 일은 다른 사람에게 돌린 기억은 없습니까? 교회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은 번번이 자신이 하다보면 바보가 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바보가 되면 주의 나라에서는 성공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 10계명 중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앞 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도전하는 삶을 살기

갈렙은 도전하는 삶이었습니다.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에 도전장을 던집니다. 나이로 치면 가장 쉽고 편한 일을 부탁할만합니다. 힘든 일은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슬며시 뒤로 물러서면 더 어울릴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이 들었다고 티내지 않았습니다. 85세에 아낙 자손들의 산지를 정복하겠다고 도전합니다. 쉽게 평범하게 사는 것을 목표하지 말고 도전하며 삽시다.

도전은 젊은 자들의 향유물이 아닙니다. 노년들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짧은 순간에도 도전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죽는 순간 전체 생애를 상쇄할만한 멋진 신앙고백과 간증을 할 수 있습니다. 듣는 이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거룩한 일에 도전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해주기를 기대하기보다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도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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