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섭 목사(순천만대대교회)

하나님 말씀을 믿고 소중히 여기십시오
하나님 말씀은 교회를 보존하고 하나님 백성을 보존하십니다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왕상 17:3~4)

금년은 어느 해보다 큰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영적 풍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요. 도리어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물질의 풍요가 영적 기근이 되기 쉽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배웁니다.

아합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이 그러했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있었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푸대접을 받는 시대에도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려는 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아합 시대에 못지않게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훼손당하지 않을 것을 것입니다. 도리어 말씀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열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무시됨

아합은 여호와를 팽개치고 바알을 섬기기 위해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만들고 바알을 위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또 아세라 상을 만들어 섬김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타락하였습니다.(왕상 16:32~33) 바알과 아세라를 섬김은 여호와를 버림이며,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악행입니다.

그리고 벧엘에 사는 히엘이 여리고 성을 건축한 일도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는 일이었습니다.(16:34) 여리고를 점령한 후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말하기를 누구든지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맏아들과 막내아들이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여리고를 재건축하지 못하게 한 이유는 견고한 여리고성이 무너진 현장을 그대로 보존시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증거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히엘은 여리고를 재건축함으로 여호와의 능력과 일하심을 보여주는 말씀을 지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의 흔적을 지운 히엘에게 큰 아들과 막내아들이 죽는 저주가 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본문 8절 이후에 나오는 말씀도 역시 말씀을 가볍게 여긴 시대상을 잘 보여줍니다. 말씀의 종인 엘리야를 영접하는 자가 이스라엘 중에 없어 이방여인에게 보내어 기근이 있는 동안 숙식을 해결 받도록 했습니다. 엘리야를 천대하는 이스라엘의 실상은 여호와의 말씀을 대하는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어떠한가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습니까? 우리 시대는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취급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일은 그 죄가 적지 않습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순간 모든 것이 파탄이 납니다. 말씀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말씀 선포자를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금보다 더 귀한 보물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거두심

하나님은 말씀을 무시당하는 것을 못 견뎌 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의 종 엘리야를 숨기십니다. 말씀이 귀한 줄을 모르는 자들에게 얼마동안 말씀을 감추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의 종을 숨기심으로 말씀의 가치를 깨우치기를 원하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도 아무 문제없다고 여겼습니다. 바알이 그들에게 비를 주어 풍요를 허락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치료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뭄과 기근을 보내셨습니다. 기근과 가뭄을 통해서 바알 신의 거짓됨을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진정한 풍요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가르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말씀을 거두시면서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오지 않게 될 것이라 경고한 것입니다. 과연 엘리야를 숨기시고 여호와의 말씀을 거두시니 비와 이슬이 그쳤고, 가뭄과 기근이 이스라엘의 모든 풍요를 거두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진정한 풍요는 바알 숭배가 아니라, 말씀의 넉넉함에서 오는 것임을 학습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를 좌시하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말씀을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숨기십니다. 로마서 1장 18~23절에 하나님의 진노의 방법으로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버려두셨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자에게는 말씀을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마 11장 25절 “천지의 주제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교만하여 불순종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감추시고,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에게 나타내십니다. 예수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보존하심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기셨습니다. 온 나라가 가뭄과 기근으로 고통하고 있었지만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의 맑은 물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까마귀가 가져온 떡과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셨습니다. 탐욕스런 까마귀로부터 먹을 것을 공급 받는 일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렇게 특별대우를 하셨을까요?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말씀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이었습니다. 극심한 가뭄과 기근 중에서 엘리야의 생명을 보존하심은 말씀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지킴으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방 여인을 통하여 필요를 공급하시고 생명을 지키신 이유는 엘리야가 하나님을 말씀을 담지한 자여서 그렇습니다. 말씀이 엘리야를 가뭄과 기근 중에서 지켜준 셈입니다. 엘리야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둘 수 있게 되고, 또 엘리야를 남겨 두심으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말씀이 증거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말씀에 기대어 살려고 하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비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거절당하는 시대에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소멸되지 않게 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 1장 24~25절에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영원성을 지닙니다. 그래서 수 천 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멸하려는 도전들이 있었지만 모든 시도들을 무효케 하셨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의복처럼 낡아지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것이라는 말씀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이 많고 불순종하는 자들이 많아도 하나님은 말씀은 일점일획도 떨어지거나 효력이 약해지지 않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영원함과 같이 영원합니다.
 

결론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도전 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주의 종들 역시 대접 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대를 살고 있어도 낙심하지 않음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들이 거절한다고 해서 권위가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말씀을 선포하는 자신의 종들을 향해서도 무례하게 행동하지만 그래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신실하게 선포하는 종들을 보존하실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대로 믿는 엘리야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말씀을 보존하시고 엘리야와 같은 말씀의 종들을 남겨 두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교회를 보존하시고 성도들은 보존하실 것입니다. 그분 말씀이 우리의 삶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행 20장 32절에서 장로들에게 에베소 교회를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게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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