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건강한 상생 모델 제시 (13)완주 들녘교회 친환경농업

▲ 들녘교회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인간이 건강한 생명을 누리도록 일한다. 건강하게 지은 농산물로 건강한 식탁을 차려 즐긴다.

어렵게 일군 우렁이쌀 큰 호응, 지역 공동체 삶·문화 바꿔…“교회, 재생산 구조 만들어야”

완주군 이서면 금평마을 일대는 우렁이쌀 생산단지로 지정되어있다. 우렁이가 매일 같이 논바닥을 훑고 지나며 잡초며 해충들을 처리해주니 이 동네에서는 농약을 칠 일이 따로 없다. 작황이 좋은데다, 미질까지 훌륭해 이 동네의 쌀 소득은 다른 데에 비해 훨씬 높다.

그 시작은 마을을 70년간 지켜온 들녘교회에서 이루어졌다. 전도사 시절이던 1991년 부임해 우렁이농법을 처음으로 도입한 이세우 목사는 지금도 교우들, 이웃들과 함께 한 결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목사 덕분에 교회 자립이 가능해졌고, 마을도 더 잘 살게 됐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있을까.

하지만 시작부터 모든 게 무난했던 것은 아니다. 사금이 유난히 많았던 이서면 일대에는 일제시대 채굴작업을 위해 찾아들었다가 정착한 외지 노동자들이 많았다. 전쟁 중에는 피난민들을 중심으로 한 부락도 형성되었다. 다양한 배경으로 형성된 마을에는 툭하면 마찰이 일어났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금평마을도 세 개의 작은 집단으로 나뉘어 융화를 이루지 못했고, 들녘교회의 전신인 금평교회의 목회도 자연히 힘들 수밖에 없었다. 목회자들은 부임하기 무섭게 떠나기 일쑤였다. 이 목사 부임 전까지 45년간 무려 30명의 교역자가 거쳐갔다.

그는 처음부터 준비된 농촌목회자였다. 당초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산업선교에 투신할 각오를 다지던 중, 농민들이 처한 현실이 도시 영세근로자들에 못지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사역의 방향을 전환하고 열심히 농촌사역을 대비한 훈련을 해왔던 것이다.

일단 교인들에게,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오래도록 그들과 함께 할 목회자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 이 목사는 함께 농사를 지으며 제대로 마을에 정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우선 외부에서 보내오던 후원금부터 일일이 연락해 정중하게 단절하며 재정 독립을 선언했다. 그야말로 배수진을 친 것이다.

농사지을 땅은 일단 교회에서 제공해주었다. 사례비를 제대로 지급할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던 교회 입장에서 그나마 목회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정성이자 배려였다.

“하지만 그 땅에서 소득을 창출해내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농부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보았지만, 고생에 비해 실수입은 보잘 게 없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다른 방법을 찾아보다가, 당시 조금씩 확산되고 있던 유기농 분야에 눈길이 간 것이죠.”
 

친환경 농업으로 방향을 잡게 된 데는 또 다른 사연도 있다. 이 목사가 부임한 후 몇 년 사이에 마을에서 제초제를 치던 주민이 그만 중독을 일으켜 병원에 실려 가는 사건, 가정불화로 인해 홧김에 농약을 마시고 자살소동이 벌어진 사건 등이 연달아 일어났다. 농약이 지배하는 농사구조 속에서 자연 뿐만 아니라 이미 사람들도 죽어가고 있었다.

정농회를 비롯한 친환경농법 선구자들을 찾아가 현장을 견학하고, 직접 기술을 체득했다. 이세우 목사에게 들녘교회를 소개해줬던 기장교단 소속 기독교농촌개발원도 계속해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제공해주었다. 직파농법에서부터 오리농법까지 이 목사는 갖가지 방식을 도입하고 실험했다. 그 결과 찾아낸 가장 적합한 방식이 바로 우렁이농법이었다.

우렁이농법 적용에는 장성 백운교회의 남상도 목사가 큰 도움을 주었다. 우렁이를 구하는 방법에서부터, 농사에 투입하여 활용하는 기술까지 모든 것을 전수하고, 필요한 비품들을 제공하거나 알선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렁이들이 드디어 이서의 논두렁을 누비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기존의 농법에 이골이 난 농가들은 변화와 모험을 두려워했다. 기껏 설득해 우렁이농법을 도입했던 교인 농가들마저 한두 해 시도해보고서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 싸움을 지탱할 수 있도록 응원해 준 것은 같은 교단의 도시교회들이었다. 안디옥교회를 비롯한 전주의 형제 교회들은 직접 쌀가마를 짊어지고 찾아온 시골 목사를 외면하지 않았고, 직거래장터 등에 참여하며 애써 지은 농산물의 판로가 되어주었다.

서울 향린교회와의 만남은 더 큰 날개를 달아주었다. 향린교회는 우렁이쌀의 가장 큰 소비자가 되어줄 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농활과 강단교류 등을 통해 이세우 목사의 사역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이런 응원 속에서 다른 교우들, 그리고 마을의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향린교회와의 교류를 통해 얻은 것들은 정말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상호 방문을 통해 향린교회 교우들과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나는 자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먹는 쌀을 짓는 생산자가 누구인지, 내가 지은 쌀을 먹는 소비자가 누구인지 서로 확인하면서 각자 신뢰와 책임감을 쌓게 되는 것이죠.”

우렁이농법을 도입한 지 15년째, 마침내 금평마을 일대에서 이세우 목사와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가 100가구가 넘었다. 우렁이농사단지의 형성은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우렁이쌀은 지역사회 인기 상품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렇게 생산된 농산물들은 생협을 통해 향린교회를 비롯한 도시교회에서 주로 소비되고, 나머지는 완주군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 매장을 통해 판매된다. 판로에 대한 초조함을 떨치니 농부들은 더욱 정직하고 성실한 자세로 농사에 임하게 됐다.

한편으로 이세우 목사는 농사를 통해 거둔 수익을 교회에 다시 고스란히 희사했다. 그것을 종자돈으로 들녘교회는 몇 해 전 근사한 예배당과 쉼터를 건축할 수 있었고, 많은 이들이 배움과 휴식을 얻기 위해 즐겨 찾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이 목사는 교회 사상 가장 오래 머무는 교역자가 되리라는 교우들과의 약속을 지켰고, 그 약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남은 과제는 현재의 농촌목회를 지속가능한 기반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잘 사는 농촌으로 평가받지만 마을은 계속해서 고령화되어가고, 젊은 귀농인은 찾기 어렵다. 가까운 곳에 혁신도시가 조성되면서 동네 땅값이 계속 치솟는 것도 큰 부담이다.

“교회들이 앞장서 재생산 구조를 만들어내어야 합니다. 농촌에 사랑을 품고, 농사에 희망을 거는 젊은 기독인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내 교회만 지키려하기 보다, 내가 몸담은 지역을 함께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도전한다면 교회도 살리고, 자연과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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