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읽고 기도하는 고전적 영성훈련이 위기의 시대 해법
시대를 품는 하나님의 통치신학 더욱 확립되고 확산돼야
장기목회는 겸손, 보이지 않는 교만과 거만 늘 경계한다


장영일 목사(대구 범어교회)는 ‘외유내강’형 목회자다. 장 목사는 20년간 담임목회를 하며 분쟁이나 분란을 초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드러지거나, 특색 있는 목회를 펼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100년 역사의 전통교회에 부임해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며 대구의 대표적인 교회로 이끌었다. 대외적인 활동도 그렇다. 지위나 자기주장에 대해 상당히 온건함에도 그가 이끌고 섬기는 목회자네트워크는 탄탄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렇듯 장 목사의 지난 20년의 발자취를 보면 소리 없이 강한 영향력에서 오는 열매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환갑을 목전에 둔 장영일 목사는 어느새 장기목회의 길에 접어들었다. 누가 봐도 안정적인 현장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안으로는 신앙의 대물림을, 밖으로는 지역사회와 대구지역 교회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을 두고 남다른 고민을 안고 살고 있다.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목회환경이 바뀌어 온전한 신앙전수가 어려워진 현실, 그리고 규모가 있는 교회의 담임목회자로서 지역복음화를 위한 역할에 대한 사명감을 결코 터부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리 없이 강한’ 장영일 목사의 특색 있는 영성에서 이 시대에 필요한 교회의 역할과 목회 방향성을 들어본다.
 

▲ 장영일 목사는 위기에 직면한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수영성’이라 강조한다. 시대상황에 맞지 않은 폐쇄성으로 인해 교회가 가진 무궁한 능력을 상쇄시킨다고 진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통치신학을 일상에 성육신화하는 영성을 가질 것을 요청했다.

▲범어교회에서 담임목회한지 벌써 20년이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클 것 같다.
=1995년 5월 30일, 39세에 범어교회에 부임했다. 계산해보니 어느새 21년차에 들어가는 중이다. 목사가 되고 난 이후 범어교회 담임목회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 청년 시절 신학교와 유학생활이 목사가 되는 과정이었다면, 범어교회의 20년은 목사로서 산 것의 전부다. 남들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범어교회에 올인한 인생이다.
 
▲범어교회는 어떤 특징을 가진 교회인가.
=109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다. 그런데 나쁜 의미의 주인의식(터줏대감)과 고집이 없다. 뿌리 교인들이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온유하다. 보통 기존 교인이 부서장이나 임직에서 밀리거나하면 시험에 들기 쉬운데, 우리 교회는 이 부분에서 여유가 있다. 이렇다보니 새가족 정착이 좋다.

나는 이를 ‘농심(農心)’이라 표현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의식이 있기에 뿌리 교인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남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어 너무 감사하다. 이것이 교회가 변화되고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농심의 사람은 한 번 신뢰를 하면 끝까지 신뢰하는 것이 있다. 제 자랑일지 모르나 뿌리 교인들이 저를 좋아하고 신뢰해 준 것이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힘이었다.

이런 강점을 토대로 교회가 변화되고 성장되었고, 100년이 넘은 교회, 수성구의 교회라는 자부심으로 승화됐다. 더 나아가 지역의 교회연합이나 연합사역에 재정적 헌신을 기꺼이 감당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교회연합이나 네트워킹을 전혀 못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범어교회는 상대적인 선함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본성과 함께 목회적 변화가 잘 융화된 것 같다. 나의 목회는 드러낼 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드러내는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더러 독특한 리더십이나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모습도 보게 되는데, 우리 교회는 전혀 이런 것이 없다. 나의 스타일과 맞다. 의무가 크고, 권리는 부끄러워하는 일이 크게 남아 있으니 우리 교회에 너무 감사하다.
 
▲목회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전형적으로 고전적인 목회를 한다. 예배와 설교에 중심을 두어 왔다. 10전부터 시작한 제자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 시험이 들지 않고 갈등하지 않는 화목한 교회 공동체가 되는데 중점을 두고 목회했다. 가장 클래식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세 부분이 여전히 어렵다. 젊을 때는 용감하게 했는데, 이제는 용감하지 못한 것 같다. 텍스트(말씀)보다 교인들의 콘텍스트(상황)가 눈에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설교가 과연 얼마나 성도에게 스며들까하는 고민이 더 커지고 있다. 제자훈련 역시 그렇다. 정말 온전한 신앙성장을 돕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한계성도 느낀다. 공동체의 화목에서도 불의한 것도 평화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리고 지나가는 모습은 아닐까 하는 마음의 걱정이 솔직히 공존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다른 대안은 없다. 개신교 목회의 기본인 강단설교, 제자훈련, 공동체의 교통에 힘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목회환경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가.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60년간 교회생활을 경험해오면서 피부에 와 닿는 것은 교회가 민주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20대까지는 목사를 중심으로 교인은 순종하고 따라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교인들이 수동적 자세에서 능동으로 바뀌었다. 목회자를 따라가기 보다는 관찰하고 평가하려 한다. 목회가 목사의 주도성과 전유물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제 교인 총화를 이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로 변했다. 사회적 용어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화됐다. 왜, 어떻게, 무엇을 이라는 내용이 없게 되면 감동을 받지 않는다. 또한 설득되지 않고, 따르지 않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긍부정의 요소가 다 있다. 긍정으로는 개신교회의 기본 정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상당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평신도의 사역화와 만인제사장이라는 측면에서, 은사에 따라 교회를 섬기는 주인의식, 주체성이 교회 안에 굉장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 장영일 목사(대구 범어교회)

반면에 지금은 성숙한 단계가 아니라 과도기다. 성도들의 “왜”가 목회자들에게는 반항과 불순종인 것처럼 느껴지는 분위기임에 틀림없다. 언어와 표출의 미성숙으로 인해 교회에 한 마음과 한 뜻, 한 몸이라는 공동체성이 혼돈 중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목회자가 한 걸음 앞서 성숙하지 않으면 이 혼돈에 함몰될 수 있다. 교인들을 불순종하는 집단으로 보면 분란이 난다. 변화를 수용하는 믿음과 영성을 가져야 한다. 여기 수용한다는 의미에는 성도들의 표출을 바람직하게 거를 수 있는 판단력이 요구된다. 그렇게 되면 건강하게 리더십이 형성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목마름과 빈곤함이 모자라서 그런지 이것을 수용하는데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그러면서 더 깊은 영적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통치를 인정하는 훈련이 없다면 힘들어진다. 목회자가 자기의 리더십을 내려놓으면 불안감이 사실 있다. 그러나 내려놓으면서 갖는 자신감은 흔히 ‘영빨(영성)’이다. 이 시대에 이런 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목회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고 한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목회가 힘들다는 의미는 아마도 이것이 아닌가 한다. 베이비부머 시대에는 희생을 가치와 보람으로 느꼈다. 반면 다음세대는 의무보다는 권리를 먼저 요구한다. 따라오기보다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 의무와 헌신을 수반한 요구라면 기쁘게 감당하겠는데, 그것이 없이 요구만 하는 시대가 오기 때문이라 본다. 희생, 절약, 가난의 경험이 없이 주어지는 것으로 자라왔기에 주어지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십일조다. 십일조 생활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50대 이하 연령이 내려갈수록 십일조 참여가 현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십일조 이야기하면 율법주의자, 제사장주의자 등으로 공격하는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헌금에 대한 설교와 교육이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저의 어린 시절의 경우, 학비가 없어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지만 우선순위가 십일조였다.

이제는 믿음이 아니라 돈으로 사는 불신앙적 삶이 너무 강하게 왔다. 이것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다. 고로 신앙문제를 제대로 잡지 않으면 교회는 상당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또 다른 현상은 교회 안에서 몸으로 봉사하는 것이 약화됐다. 봉사가 요구되는 교회 일에 교인들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삶의 통치의 신앙이 약화된 현상이라 본다.

근래 목회에 있어 실제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 바로 성도들의 가정문제다. 과거에는 가정문제가 있으면 직접 불러 꾸중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너무 개별화 됐다. 또 있다. 현대사회에 중독문제가 심각하다. 이 부분에서 목회적 기술이 전혀 없다. 교회 안에서는 중독문제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데,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 없으니 그냥 방치하거나, 의료기관의 치료를 권하는 정도 밖에 못하고 있다.

최근 담임목회자로서 무기력과 무능함을 느낀 사례가 있다. 얼마 전 남편이 알코올중독자인 교인이 있었다. 부부가 서로 신앙적으로 치유받기를 간절히 원하며 교회 출석했는데, 결국 다시 중독치료기관으로 돌려보내는 사례가 있었다. 병적 현상에 대해 치유할 수 있는 교회와 목회자가 없다는데 힘듦을 느낀다. 이는 메르스와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지만 현대의학이 준비되지 않아 대처하지 못하는 현상과 흡사하다. 목회적 치유가 준비되지 못한 것에 무기력을 많이 느낀다. 여전히 목사는 설교와 기도와 심방, 세 가지 패턴으로만 교인을 대하는 모습에서 사회가 만들어내는 신종 문제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이 어렵다.
 

▲목회‘함’에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가고 있나.
=앞서 이야기한 것이 교인들의 문제였다면, 이 부분에서는 나 자신을 보는 것이다. 한 교회에서 20년 목회를 하며 젊음을 보냈다. 나이가 들어보니 대사회적이고, 교회연합적인 측면에서 나의 역할과 요구,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내 교회가 아니라 외부적인 요소들이 점차 많아지는데 이를 다 수용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나를 알고 있고, 교회 크기도 어느 정도 되기에 기대하는 바가 솔직히 있다. 이 부분에서 울타리 안의 목회가 아니라 열린 공간의 목회가 되다보니 부담감이 크다. 대표적인 것이 설교다.
 
▲인구격감, 베이비부머의 은퇴, 교회를 향한 부정적 인식 등은 향후 한국교회에 영향을 크게 끼칠 사안임에 틀림없다. 목회자로서 어떤 노력과 대안이 필요하다고 보나.
=물리적인 처방은 젊은 세대에게 가정과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자녀 출산이 양육과 교육에 대한 부담감 이상의 가족의 가치를 계몽시키는 일이야말로 목회자로서할 대안이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역사의 대이음이라는 넓은 스펙트럼의 목회적 교육이 필요하다. 자녀 더 낳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출산에 있어 교회마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교회의 경우, 마더 와이즈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지역의 20~30대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다음세대 교인의 영적·신앙적 대를 잇는 것은 난제 중에 난제다. 다음세대 수가 줄어드는 문제뿐 아니다. 다음세대의 예배가 난장판이 되고 있다. 떠들거나, 폰을 만지고 예배드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을 위해 제대로 양육하고 변화시킬 젊은 사역자, 지도자 양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모범이 되는 실버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몇몇 프로그램을 시도해보지만 한계를 느낀다. 교회화된 전문적인 실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갖는다.

외부에서의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언론 등에서 드러나는 표제적인 모습이다. 그럼에도 교회가 욕을 먹고 있지만, 목회자 자신과 내 교회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다수다. 일반적인 목회 세미나나 강의보다는 목회현장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한다. 나눔을 통해 자신과 교회의 현주소를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철저한 자기인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일일이 대안을 내놓은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신학교육이 중요하다. 목회자의 이미지 메이킹은 하루아침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해 이뤄졌다. 인문적인 교육과 획일적 사고를 뛰어넘는 사전적 교육이 신학교에서 이뤄져야 한다.
 
▲대구는 목회자의 무덤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목회환경이 좋지 않다는 의미로 다가오는데, 이 말의 배경과 현실은 어떤가.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이 결혼함으로써 제도와 관계에 매이면서 사랑의 감정과 에너지가 절제되고 감추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무덤이 되는 것이다.

대구 토박이로서 제도와 관계성이 대구지역 교회에 강한 것을 느낀다. 현실적인 말로 장로 중심의 교회다. 유교 문화의 잔재가 교회에 강하게 형성돼 있다. 그러다보니 목회자가 초심을 갖고 영적 운동을 일으키려 하지만 제도와 기관에 들어오면서, 눈치와 관계 속에서 절제하게 되면 결국 운동의 에너지가 떨어져 버린다. 초심은 있는데 유교적 문화의 깊은 영향력 속에서 역동성과 능력, 사명이 강압된 절제로 인해 동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구는 여전히 장유유서, 어른 중심의 문화가 전국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곳이다. 사회적으로도 유동인구가 미미하다보니 변화 수용이 적극적이지 못하다. 새로운 목회자가 새로운 비전을 펼침에 있어 성도들이 두려워하다보니 목회자가 쉽게 상황에 함몰되는 경향이 있다.

대안이 있다. 바로 목회자 네트워킹이다. 이를 통해 목회자들이 함몰되는 상황을 벗어나 아픔과 억눌림을 나누면서 서로가 힘을 얻고 격려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건강한 목회자 네트워킹이 필요하다.(실제 장 목사는 대구에서 두 개의 목회자네트워크 모임을 이끌고 있다. 이들 모임에서 목회자간 진솔한 대화와 교제가 이뤄지고, 대구의 복음화와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활동도 펼치고 있다.)

아무튼 대구가 목회자의 무덤이라는 말에는 실패한 경험자에 의해 나온 말이라 생각한다. 대구도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위기라고 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영성은 무엇일까.
=‘예수영성’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성은 삶인데, 삶으로 체화된 영성이 필요하다. 이것이 예수영성이다. 예수의 영성을 얻기 위한 훈련이 있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오랜 전통의 영성훈련이 ‘렉시오 디비나’다. 이를 풀면 성경독서기도법이다.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가장 고전적이고, 가장 좋은 성경적 영성훈련이라 생각한다. 말씀 독서가 기도로 연결돼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큐티(QT)와는 다르다. 적용이 아니라 말씀 읽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특히 한국 개신교 목회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에서는 영성기도캠프를 1년에 한 차례 실시하고 있다. 2박 3일간 성도들과 함께 진행한다. 이것은 단순 강의로는 안 된다. 같이 밥을 먹고 지내면서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대안으로 제자훈련, 성경공부, 셀, 두날개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이것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면이 없지 않다. 쉼과 평화가 없이 훈련으로 끝나는 요소가 강하다고 평가한다. 예수님의 영성은 예수 자신에게로 오라는 초청이었다. 쉬게 한다는 것은 온유와 겸손을 배운다는 의미다. 거기서 내 멍에를 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영성을 찾는 방법은 말씀을 대면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은퇴 후 작은 리트리트 하우스를 세워 예수영성이라는 영성운동을 펼치고 싶은 것이 개인적 소망이다.
 
▲요즘 부쩍 교회의 시대정신과 사회적 역할 등을 요구하는 추세다. 왜 이런 욕구들이 나오며, 교회가 할 일은 무엇일까.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이며, 멀티(Multi) 사회다. 교회가 원웨이(Oneway)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오늘의 시대를 품을 수 없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기독교 전통 안에서 영적 전통이 많다. 그러므로 시대를 품을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편협한 시각이 문제시 되는 것이다. 시대정신에 대한 요청한다는 것은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이라면 다양한 세상과 현상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양(羊) 뿐만이 아니라 늑대와 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세상이 교회를 답답하게 보는 것이다.

칼빈의 주권적·통치적 왕권신학이 수립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상쇄할 더 큰 힘이 성경에 있다고 확신한다. 성경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신학, 변혁적인 신학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 남북통일, 노사문제 등을 왕권통치 스펙트럼 속에서 현실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역사를 보는 눈이 넓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신학이 더욱 확립되고 확산돼야 한다.
 
▲보수성이 강한 대구에서는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기존 목회방식을 탈피한 새로운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 탈전통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교회에 대한 반발이 가장 크다고 봐야 한다. 또한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젊은 신학생과 목회자들의 자리가 없다. 이들을 기성교회가 뒷받침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적인 대안이라기보다는 자기의 길을 찾는 방편이라 본다. 실험정신으로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모델이라 보지 않는다. 몸부림치는 것이 나중에 한국교회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기준이라고 보지 않는다. 기성 전통 목회 방식에서 새로운 파라처치(para church)의 움직임으로 보인다.

대형교회 교인들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인 이야기다. 교회를 개혁하려면 기존 교회 안에서 기성라인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개혁된다는 말이 아니다. 예를 든다면, 부목사가 열심을 갖고 교회를 개척했다. 5년 만에 절반이 해체되었다. 몸부림을 치지만 실험교회로서 성공이 되는 과정이 너무 어렵다. 실험정신은 높이 평가한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사람의 본성에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다. 장로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이것을 너무나 잘 녹여낸 제도라 생각한다.

기성교회의 많은 문제점을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몸부림의 표현이다. 이런 몸부림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주류를 만들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예로 작은교회운동이 교회 반발로 나오는 것은 문제다. 절대 무가치하다는 것은 아니다. 충격요법으로도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작은교회운동은 정신(스피릿)이지, 구조(스트럭처)는 되지 못한다.
 
▲장기목회에 있어 유념해야할 요소는.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겸손이다. 장기목회에는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진다. 보이지 않는 거만함과 교만함이 장기목회에 나타난다.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얼마 전에 아내에게서 나의 과거와 지금의 변화된 모습을 비교하면서 교만함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겪은 침체나 매너리즘 경험은 없었나.
=그동안 교회가 분쟁이나 분란 없이 잔잔하게 흘러왔다. 그러다보니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고 “주님 밖에 없다”는 절박한 기도의 자리가 약해지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매너리즘으로 연결될 때가 있다.

담임목회 초기 정말 기도로 나아갔다. 주님 밖에 없다는 고백이 절로 나왔다. 이것이 이제는 1년 내내 지속적으로 가지 못한다. 여기서 교만과 거만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설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설 익다기보다는 과거보다 설교의 긴장감은 분명 떨어지는 것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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